ESG는 환경(Environmental)·사회·지배구조(Governance) 세 축으로 구성된 기업 지속가능성의 국제 표준 프레임워크다. 2026년 한국은 KSSB 기준 확정과 금융위 로드맵 발표를 통해 이 체계를 의무 공시 제도로 공식 전환했다.[이미지 = 코리아비즈니스리뷰 DB]
5년의 표류, 드디어 닻을 내리다
2021년 1월, 금융위원회가 처음 "2025년부터 단계적 ESG 공시 의무화"를 예고했을 때만 해도 시장은 기대와 긴장을 동시에 품었다. 그러나 이후 일정은 두 차례 미뤄졌고, "2026년 이후로 연기"라는 말은 어느새 기업 ESG 담당자들에게 '또 미뤄질 것'이라는 암묵적 신호처럼 여겨졌다.
그 흐름이 2026년 들어 급격히 달라졌다.
2026년 2월 25일, 금융위원회는 제4차 생산적 금융을 위한 대전환 회의에서 국내 지속가능성 공시 제도의 구체적인 이행 방안을 담은 최종 로드맵을 발표했으며, 2026년 3월까지 추가 공개 의견 수렴을 거쳐 2026년 4월 중 확정될 예정이다. 2021년 의무화 논의가 처음 언급된 이후 약 5년 만에 구체적인 실행안이 공식 궤도에 오른 것이다.
2024년 4월 공개초안 발표 이후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첫 번째 세트가 마련됐으며, 2026년 2월 26일 한국회계기준원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에서 최종 확정되었다. 하루 차이로 KSSB 기준 확정과 금융위 로드맵 발표가 잇따라 이루어진 것은, 그 자체로 정책 의지의 표현이었다.
로드맵의 핵심: 2028년 30조 대기업부터, 2031년 스코프3까지
이번 로드맵의 골격은 명확하다.
2028년(2027 사업연도)부터 연결자산총액 3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기업(약 58개사)을 시작으로 ESG 공시 의무를 단계적으로 도입하며, 2029년(2028 사업연도)에는 연결자산총액 10조원 이상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제시되었다.
지배구조(G) 공시의 경우 이미 2026년부터 전면 확대가 시행된다. 2026년부터는 모든 코스피 상장사가 기업지배구조보고서를 의무 공시해야 해, 'G(지배구조) 공시'가 시장의 기본 규칙으로 자리 잡게 된다. 기존 541개 코스피 상장사에만 적용되던 의무가 842개 전체로 확대되는 것이다.
가장 논쟁이 많았던 스코프3(공급망 배출량) 공시에 대해서는 현실적인 타협점이 도출됐다. 스코프 3 배출량은 제도의 실효성을 위해 공시 항목에 포함시키되, 기업들의 준비 기간을 고려하여 의무공시 시작 이후 3년간의 유예 기간을 두기로 했다. 이에 따라 2028년 첫 의무공시 기업의 경우, 스코프3 데이터 공시는 2031년(FY2030)부터 적용된다.
공시 채널과 법적 책임 설계에서도 기업 부담을 고려한 완충 장치가 마련됐다. 제도 도입 초기에는 기업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거래소 공시 형태로 운영하되, 제도가 안착된 이후에는 점진적으로 유가증권보고서 등 법정 공시로 전환될 예정이다. 법정 공시로 전환될 경우 공시 위반 제재에 대한 기업의 우려가 커지는 만큼, 제도 운영 초기에는 예측 또는 추정 정보를 활용한 공시에 대한 면책(Safe Harbor)이 허용된다.
KSSB 기준: ISSB와 정합, 국내 산업구조 반영
새로 확정된 KSSB 공시기준은 세 축으로 구성된다. 제1호 기준은 ISSB의 IFRS S1을 반영한 '지속가능성 관련 재무정보 일반 요구사항', 제2호 기준은 IFRS S2를 토대로 한 '기후 관련 공시', 제101호는 선택적 추가공시 기준으로, 국제 기준과의 정합성을 전제로 국내 여건을 반영하는 구조다.
국내 ESG 공시 기준은 ISSB 제정 기준에 기반하되, 제조업 비중이 높은 국내 산업구조의 특수성도 함께 고려되었다. 이에 따라 기후 외의 사항에 대한 공시, 톤 당 내부탄소가격, 산업별 지표 등은 선택적 공시가 허용될 예정이다.
공시의 네 가지 핵심 요소 — 거버넌스, 전략, 위험관리, 지표 및 목표 — 는 ISSB S1/S2의 프레임워크를 그대로 채택하면서도, 국내 온실가스 측정 여건을 반영한 GWP(지구온난화지수) 값 활용 허용 등 실무적 유연성을 강화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KBR Insight
KSSB 기준 최종 확정으로 '기준 부재'라는 가장 큰 불확실성은 해소됐다. 그러나 확정된 기준과 로드맵 사이에는 여전히 메워야 할 간극이 있다. 기업들이 주목해야 할 핵심은 '의무화 시점'이 아니라, 2028년 첫 공시를 위해 지금부터 데이터 수집 체계와 내부 검증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공시는 결과물이 아니라 경영 프로세스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EU 옴니버스: "후퇴"인가 "조정"인가
한국이 공시 기반을 다지는 사이, 글로벌 최대 ESG 규제 축인 EU는 대규모 정비 작업에 들어갔다.
EU 이사회는 2026년 2월 24일 Omnibus I Simplification Package를 공식 채택하였고, 2026년 2월 26일 관보에 게재하여 입법 절차를 완료하였다. 발효일은 2026년 3월 18일. 이로써 EU의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과 기업지속가능성 실사지침(CSDDD)이 동시에 대폭 개편됐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CSRD 적용 기업 수의 급감이다. 개정 CSRD에서는 CSRD의 적용을 받는 기업의 기준을 크게 상향 조정하여, 그 수가 약 5만여 개에서 약 3,000~5,000개 내외로 약 80~90% 줄어들 전망이다. 기존 직원 250명 이상·일정 매출 초과 기업에서, 직원 1,000명 초과 및 순매출 4억5천만 유로 초과로 기준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CSDDD도 마찬가지다. 개정 CSDDD는 기준을 대폭 상향 조정하여, 적용 대상을 대규모 기업 중심으로 한정하고 있다. EU 역내에 설립된 기업의 경우, 직원 수 5,000명 초과 및 전 세계 순매출 15억 유로 초과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경우에 한하여 적용된다. 또한 EU 회원국은 2028년 7월 26일까지 CSDDD를 국내법으로 전환하여야 하며, 기업에 대한 전면 적용은 2029년 7월 26일부터 시작된다.
한국 기업에 대한 직접적 영향은 어느 정도 완화됐다. EU 내 매출이 4억5천만 유로 또는 15억 유로에 미치지 않는 다수 한국 기업은 CSRD·CSDDD의 직접적인 의무 대상에서 벗어나거나 적용 가능성이 낮아졌다.
그러나 긴장을 풀기는 이르다. 글로벌 자본시장의 '눈높이'는 여전히 높다. 주요 기관투자자·신용평가사·글로벌 공급망은 이미 스코프3 배출량·전환계획·기후 리스크 시나리오 분석 등을 사실상의 시장 표준으로 요구하고 있다. EU 법률이 일부 후퇴하더라도, 투자자와 다국적 발주처는 내부 정책을 통해 더 높은 수준의 ESG 정보를 요구할 수 있고, 이 경우 법적 의무가 아니라 거래·투자 조건으로서의 사적 규율이 현실을 규정하게 된다.
ISSB 기준, 30개국이 채택 추진 — 글로벌 표준이 된다
EU가 간소화 방향으로 조정한 반면, ISSB 기준은 오히려 세계 전역으로 확산 속도를 높이고 있다.
올해는 유럽연합(EU)의 기업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에 따른 첫 의무 공시가 본격화되고,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가 제정한 공시기준(IFRS S1·S2)을 도입·정렬하려는 국가가 30개에 이르면서 기후·ESG 정보가 사실상 '제2의 재무제표'로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ISSB는 2024~2026년 업무계획의 일환으로 SASB 기준 개정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ISSB는 2025년 11월 30일까지 개정 초안에 대한 전세계 이해관계자 의견을 수렴한 후, 이를 반영하여 2026년 중 최종 개정 기준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는 SASB의 77개 산업별 ESG 공시 표준을 IFRS S2 체계와 통합하는 작업으로, 산업별 공시 지표의 국제 표준화를 의미한다.
한국도 이 흐름에서 예외일 수 없다. 이번 로드맵 확정으로 한국은 일본, 싱가포르, 대만 등 아시아 주요국에 이어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기준에 기반한 의무공시 체계로의 전환이 공식화되었다.
기업이 지금 해야 할 것: 공시는 결과가 아니라 프로세스다
2028년 첫 의무공시 대상인 연결자산 3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 58개는 사실상 지금부터 준비에 돌입해야 한다. 공시 첫 해인 2028년 보고 대상 사업연도는 2027년이며, 그 데이터를 수집·검증하려면 2026년 하반기부터 내부 시스템 구축이 시작되어야 한다.
전문가들이 꼽는 준비 과제는 크게 다섯 가지다.
첫째, KSSB 제1·2호 기준서 숙지와 중요성 평가(Materiality Assessment) 수행. 둘째, 스코프 1·2 온실가스 배출량 데이터의 수집·검증 체계 구축. 셋째, 기후 관련 위험과 기회에 대한 시나리오 분석 방법론 수립. 넷째, 지속가능성 관련 거버넌스 구조 — 이사회와 경영진 역할 및 책임 명확화. 다섯째, 공급망 데이터 수집 기반 마련(스코프3 유예 기간 동안 선행 준비).
의무공시 대상 기업은 기후관련 위험과 재무적 영향을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공시 기준과 용어에 맞춰 합리적·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2028년 이후를 대비하는 기업에 있어 ESG 공시는 더 이상 홍보 부서의 연례 보고서가 아니다. 스코프 1·2 배출 데이터가 기업가치 평가 모델에 편입되고, 기후 전환계획이 신용등급 분석 항목이 되는 시대가 공식 도래했다. 스코프1·2·3 배출 데이터와 전환계획이 표준화되면, 탄소감축은 '이미지'가 아니라 '리스크 관리 능력'으로 평가받는 영역이 된다.
전망: 방향은 명확하다, 속도는 조정될 수 있다
글로벌 ESG 공시 흐름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 규제 강도는 조정되지만, 방향은 바뀌지 않는다.
EU 옴니버스로 CSRD 적용 기업이 90% 가까이 줄었지만, 남은 대기업들에 대한 공시 의무는 오히려 더 엄격해졌다. 미국 SEC의 기후공시 규정은 정치적 불확실성이 있지만, 기관투자자들은 이미 기후 리스크 분석을 투자 의사결정의 기본 전제로 삼고 있다. 한국은 5년의 유예 끝에 로드맵을 확정하며 글로벌 대열에 공식 합류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3~5년간 지속가능성 공시 흐름을 두고 속도는 조정되겠지만, 방향은 유지될 것으로 보고 있다. 각국이 ISSB를 기본 골격으로 삼고 세부 요구사항만 조정하는 방식이 확산될 것이며, 한국 역시 이 구조 안에서 의무공시 대상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갈 것이 유력하다.
KBR Insight
2026년은 한국 ESG 공시 역사에서 진짜 원년(元年)이 되는 해다. KSSB 기준 확정과 로드맵 발표는 단순한 규제 일정의 공표가 아니라, '기업의 비재무 정보도 재무제표와 같은 수준의 신뢰성과 비교 가능성을 가져야 한다'는 국제적 패러다임의 국내 수용을 공식 선언한 것이다. 기업이 해야 할 질문은 "언제부터 의무인가"가 아니라, "우리는 2028년에 무엇을 공시할 수 있는가"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