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 동안 창업의 공식은 단순했다. 팀이 있어야 하고, 투자자가 있어야 하고, 사무실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공식이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혼자 회사를 세우고, 혼자 운영하고, 혼자 수십억 원어치의 기업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통계 속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솔로프러너(Solopreneur)'라는 단어가 실리콘밸리의 유행어에서 벗어나 이제는 서울 골목의 창업 커뮤니티에서도 쓰이고 있다.
이 현상은 단순한 자영업의 디지털화가 아니다. 일하는 방식, 투자받는 방식, 기업을 정의하는 방식 자체가 재편되고 있다는 신호다.
한국의 숫자: 116만 돌파, 15.4% 급증
중소벤처기업부가 2026년 4월 발표한 '2025년 1인 창조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1인 창조기업은 116만 2,529개로 전년(100만 7,769개) 대비 15.4% 증가했으며, 전체 창업기업의 23.7%를 차지했다. 이는 가장 최근에 공식 발표된 국가승인통계이며, 한국 통계 구조상 약 2년의 집계·발표 주기를 반영한 수치다. 1인 창조기업의 숫자와 매출이 동시에 성장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생존형 창업을 넘어, 의도적인 1인 체제가 하나의 경영 전략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업종별로는 전자상거래업이 32만 4,637개(27.9%)로 가장 많았고, 제조업 24만 5,976개(21.2%), 교육서비스업 19만 8,376개(17.1%), 전문·과학 및 기술서비스업 12만 9,614개(11.1%) 순으로 나타났다.
기업당 평균 매출액은 2억 6,640만원으로 전년 대비 11.3% 증가했고, 평균 당기순이익은 3,620만원이었다. 대표자 평균 연령은 55.1세이며, 성별은 남성 70.7%·여성 29.3%로 나타났다. 수도권 비중은 전체의 57.5%로 경기·서울에 집중돼 있었다.
이 통계에서 특히 눈여겨볼 지점이 있다. 창업 동기로는 '더 높은 소득을 얻기 위해'가 40.0%로 가장 많았고, '적성과 능력 발휘'가 36.5%로 뒤를 이었다. 생계유지를 이유로 꼽은 비율은 14.5%에 불과했다. 불가피한 생존이 아니라 능동적 선택으로서의 1인 창업이 주류가 되고 있다는 신호다.
그러나 장밋빛만은 아니다. 창업 후 첫 매출 발생까지는 평균 2.6개월이 걸리는 반면, 손익분기점 도달까지는 평균 29.8개월(약 2년 6개월)이 소요됐다. 수익을 내기까지의 긴 공백은 1인 창업자에게 가장 위험한 구간으로 여전히 남는다.
기술창업의 역설: 수는 줄고, 비중은 늘었다
1인 창조기업이 급증하는 흐름과 달리, 기술기반 스타트업 전체 통계는 다른 궤적을 그리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2025년 상반기 창업기업동향'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기술기반 창업은 10만 8,096개로 전년 대비 3.1% 감소했다. 그러나 전체 창업 중 기술기반 창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년 대비 0.9%p 증가하는 흐름을 보였다.
2025년 연간 창업기업 수는 113만 5,561개로, 상반기는 전년동기 대비 7.8% 감소했으나 하반기는 소폭 0.2% 증가하며 반등 조짐을 나타냈다.
이 두 통계는 같은 시기에 공존하는 모순처럼 보인다. 1인 창조기업은 급증하는데, 기술기반 스타트업 신규 창업은 절대 수로는 줄고 있다. 이는 한국 창업 생태계의 구조적 이분화를 드러낸다.
팀 기반의 고성장 스타트업 모델이 투자 혹한기 속에 수축하는 동안, 개인 역량과 AI 도구를 기반으로 한 1인 창업은 오히려 대안 경로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절대 수가 줄어드는 와중에도 기술창업의 질적 비중이 높아진다는 사실은, 살아남은 창업자들의 기술 수준이 점차 고도화되고 있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글로벌의 숫자: 미국 5,000만 명, 720억 달러 외주 경제
미국에서는 현재 2,980만 명의 솔로프러너가 활동 중이며, 이들이 창출하는 매출은 1조 7,000억 달러로 미국 전체 경제 활동의 6.8%를 차지한다. 소기업 중 81.9%가 직원이 없는 1인 운영 구조다.
여기에 프리랜서와 부업형 1인 벤처까지 합산하면 규모는 더 커진다. 2026년 현재 미국에서 프리랜서 또는 1인 벤처에 참여하는 인구는 5,000만 명을 넘어섰으며, 이는 2025년 대비 15% 증가한 수치다.
특히 주목할 것은 '혼자지만 혼자가 아닌' 솔로프러너의 실제 경제 규모다. 흔히 1인 기업은 모든 것을 혼자 처리하는 고립된 경영체로 인식되지만, 현실은 다르다. 2025년 한 해 동안 미국 솔로프러너의 43.5%가 최소 1명 이상의 외주 계약자에게 비용을 지불했으며, 이들이 외주 계약자에게 지급한 총액은 720억 달러(약 100조원)로 추산됐다. 이는 2025년 미국 중위 연봉(약 6만 2,000달러) 기준으로 약 110만 명의 풀타임 급여에 해당하는 규모다.
1인 기업이 만들어내는 경제적 파급효과가 공식 고용 통계에 잡히지 않는 거대한 '숨겨진 경제'로 존재한다는 의미다.
수익성 측면에서도 인상적인 데이터가 있다. 솔로프러너의 75% 이상이 첫해에 흑자를 낸다. 전체의 약 20%는 직원 없이도 연간 10만~3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84%가 자기 자본으로만 창업을 시작했다. 절반 가까이는 5,000달러 미만의 초기 자본으로 시작했다.
솔로프러너의 76%는 최소한 시간제로 원격 근무를 하고 있으며, AI 도구의 보편화로 클라우드 인프라 비용은 최대 90%까지 절감됐다.
AI가 바꾼 방정식: 카르타 데이터가 말하는 10년간의 변화
이 모든 흐름의 가속 페달은 생성형 AI다. 스타트업 지원 플랫폼 카르타(Carta)의 데이터에 따르면, 2025년 기준 1인 창업자 비율은 36%로, 2024년의 31%에서 다시 한 번 상승했다. 지난 10년간 솔로 창업 비율은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카르타의 다른 분석에서는 창업자들이 첫 직원을 채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2022년 6개월 미만에서 2024년 9개월 이상으로 늘었다. AI로 버티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혼자서 팀의 역할을 소화하는 기간 자체가 구조적으로 연장되고 있다.
실제 성공 사례들이 이 흐름에 근거를 더한다. 우버 뉴욕 지사장 출신 조시 모어는 2023년 음성 요약 앱 '웨이브AI'를 출시한 뒤 8개월 만에 월 매출 33만 달러(약 4억원)를 내는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마케팅과 사업 이력만 보유했던 그는 챗GPT로 코딩을 독학해 혼자 앱을 완성했다.
이스라엘 개발자 마오르 슐로모가 혼자 개발한 코딩 플랫폼 '베이스44(Base44)'는 설립 6개월 만에 웹 개발 기업 윅스(Wix)에 8,000만 달러(약 1,100억원)에 인수됐다. 초기 버전은 오직 혼자 만들었고, 이후 단 8명의 팀원만 추가 채용했을 뿐이다.
AI 코딩 스타트업 베이스44는 단 8명의 직원으로 운영되다 8,000만 달러에 인수된 사례로, AI를 활용한 초소규모 인력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2026년 초 Scalable.news 연구에 따르면, 솔로 창업 스타트업은 현재 전체 신규 벤처의 36.3%를 차지한다. 또한 2026년 현재 완전한 솔로프러너 기술 스택(SaaS 도구 일체)의 연간 운영비는 3,000~1만 2,000달러 수준으로, 기존 팀 운영 비용 대비 95~98%가 절감된다. 헤드카운트(인원 수)가 아닌 시스템이 기업의 규모를 결정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샘 알트만 오픈AI CEO는 2024년 'AI가 가능하게 하는 최초의 1인 10억 달러 기업을 보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앤스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 CEO 역시 한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내년이면 1인 기업이 AI를 활용해 1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발언했다.
그러나 낙관론에는 유보가 필요하다. 2024년 한 해 동안 5,000만 달러 이상의 자금을 조달한 AI 관련 미국 스타트업 140개를 분석한 결과, 2~3명의 공동창업자로 시작한 팀의 비중이 63%로 압도적이었으며, 1인 창업자의 비중은 17%에 그쳤다. 대규모 외부 자금을 끌어당기는 힘은 여전히 팀에게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독일과 일본: 서로 다른 배경, 같은 방향
글로벌 흐름은 한국이나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독일 스타트업 협회와 스타트업디텍터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독일에서는 총 2,766개의 스타트업이 새롭게 설립되어 전년 대비 11% 증가했다. 특히 소프트웨어 분야는 618개가 설립되어 33% 증가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교육(25% 증가)과 게임(26% 증가) 분야도 재도약했다. AI와 디지털 전환 수요가 소규모 기술 창업을 견인하고 있다는 신호다.
일본은 정책적 드라이브를 통해 생태계를 인위적으로 키우고 있다. 일본 정부는 '스타트업 육성 5개년 계획'을 통해 2027년까지 스타트업에 10조 엔(약 90조원)을 투자하고, 스타트업 10만 개 및 유니콘 기업 100개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의 스타트업 투자금액은 지난 10년간 10배 성장해 2023년 8,500억 엔(약 8조원)에 도달했다.
주목할 것은 일본이 이 계획을 추진하는 맥락이다. 만성적 인력 부족과 초고령화 사회라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는 일본은, AI가 인력의 공백을 채울 수 있다면 소규모 창업의 실행 가능성이 인구 감소 사회에서 오히려 더 높아진다는 논리를 국가 정책의 근거로 삼고 있다. 한국이 직면한 인구·노동 구조 문제와 궤를 같이하는 지점이다.
한국의 정책 공백: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1인 창업 생태계가 116만이라는 숫자에 도달했음에도, 지원 정책의 설계는 여전히 '팀 창업' 중심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소벤처기업부의 TIPS(민간투자주도형 기술창업지원) 프로그램과 Pre-TIPS 등 주요 창업지원 제도는 지원 대상 조건을 '2인 이상 기업'으로 한정하고 있다. 1인 창업자는 숫자로는 창업 생태계의 주류인데, 제도적으로는 여전히 비주류다.
기업 형태를 보면 개인사업체가 85.8%로 법인기업 14.2%보다 압도적으로 높고, 주요 거래처는 개인 소비자(B2C)가 78.0%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기업체(B2B)와의 거래는 19.1%, 정부·공공기관(B2G)은 2.4%에 그쳤다.
이 구조가 고착되면 수익 확장성에 한계가 생긴다. 글로벌 선진 사례가 보여주는 1인 창업의 성공 방정식은 단순히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니다. AI와 노코드 툴, 클라우드 인프라를 통해 팀의 기능을 개인이 흡수하고, B2B SaaS나 디지털 구독 모델을 통해 매출의 확장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한국의 116만 1인 창업자 중 이 경로를 걷고 있는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는 추가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혼자'의 한계: 번아웃, 고립, 아이디어 복제
1인 창업의 부상을 이야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것이 구조적 취약성이다. 솔로프러너의 35%가 높은 스트레스를 보고했는데, 이는 직원을 고용한 사업자의 26%보다 현저히 높은 수준이다. 시간 관리가 운영상 최대 난제라고 답한 비율도 41%에 달했다.
서리 대학의 안나벨 가워 교수는 "AI 기술이 신규 기업의 진입 장벽을 낮추지만, 아이디어를 빠르게 복제하는 것도 쉽게 만든다"며 "창업자가 해당 분야에 독특한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다면 경쟁 우위를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솔로프러너가 외주 계약자와 맺는 관계의 중위 지속 기간은 5개월이며, 3분의 1은 1년 이상 지속된다. 이는 1인 기업이 단기 프로젝트의 연속이 아니라, 점차 안정적인 외부 협업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술이 아닌 관계와 도메인 지식, 커뮤니티가 진짜 경쟁력(해자)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앞으로의 증감 추이: 상승 기조는 유지되되, 양극화가 심화된다
현재의 데이터를 종합하면 1인 미니 스타트업의 증가 흐름은 단기적으로 꺾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AI 도구의 보편화, 재택·원격 근무의 일상화, 인플레이션이 만들어낸 '부업 창업' 동기, 고용 불안이 자극하는 독립 경제에 대한 욕구가 구조적으로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카르타 데이터에서 솔로 창업 비율이 2024년 31%에서 2025년 36%로 다시 5%p 상승한 것은, 이 흐름이 일시적 현상이 아닌 지속적 구조 전환임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단순 수적 증가와 질적 성장 사이의 간극은 오히려 벌어질 수 있다. 미국에서도 솔로프러너 중 연 매출 100만 달러 이상을 달성하는 비율은 3.6%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1인 창업자가 한국 기준 연 2억 원대 매출의 자영업 수준에 머무는 반면, AI를 전략적으로 활용한 소수의 솔로프러너는 전통적인 팀 스타트업을 뛰어넘는 기업가치를 만들어낼 것이다.
한국에서 '1인 유니콘'이 탄생하려면 숫자만이 아닌 제도 설계, 지식 인프라, 커뮤니티 네트워크가 함께 성숙해야 한다. 혼자서도 기업이 되는 시대는 분명히 열리고 있다. 다만 그 문을 제대로 통과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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