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알루미늄 등 6대 탄소집약 품목을 유럽으로 수출하는 한국 기업은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량을 증명하고,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한국 기업이 ESG를 바라보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할 시점이 왔다.
지금까지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환경·사회·지배구조)는 대기업의 이미지 관리 수단이거나, 중견·중소기업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그러나 EU 탄소국경조정제도는 이미 올해부터 본격 시행 중이고, 한국 금융당국의 공시 로드맵은 확정을 앞두고 있으며, 대기업 공급망 요구는 협력사를 향해 빠르게 내려오고 있다.
현재의 규제 일정이 변경 없이 진행될 경우, 2030년 전후에는 주요 수출·상장 기업에게 ESG가 투자, 금융, 수출 계약의 실질적 전제 조건이 될 가능성이 높다.
왜 지금 이 논의가 중요한가
ESG에 대한 논의는 이미 수년째 이어져 왔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 기업에서 ESG는 여전히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연 1회 발간하거나, 사회공헌 활동 실적을 정리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경영진 회의에서 ESG가 언급될 때조차 그것은 종종 홍보팀이나 CSR 담당 부서의 과제로 분류된다. 핵심 사업 전략과 분리된 채 운영되는 것이다.
이 인식 격차의 대가가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EU 수출 실적이 있거나 진출 계획이 있는 제조 중소기업 142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54.9%가 CBAM에 대한 "특별한 대응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올해부터 CBAM이 본격 시행됐음에도 불구하고 절반 이상의 기업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라는 뜻이다. ESG를 "나중에 해도 되는 것"으로 분류해온 기업들이 지금 치르고 있는 현실이다.
규제: 자율에서 의무로, 이미 시행됐다
한국 ESG 공시 의무화 일정이 구체화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2026년 2월 '지속가능성 공시 제도 로드맵 초안'을 발표하며, 2027 사업연도 정보부터 ESG 공시 의무를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초안에 따르면 2028년에는 연결자산총액 30조 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 약 58개사가 1차 의무 적용 대상이 되며, 2029년에는 자산 10조 원 이상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이는 2021년 발표된 중장기 계획상 2030년까지 코스피 전체 상장사로 의무화한다는 방향과 연속선상에 있다.
로드맵은 2026년 4월 말까지 최종 확정될 계획이다. 공시 기준은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기준을 국내 실정에 맞게 적용한 한국 지속가능성기준(KSSB)을 따른다.
지배구조 공시도 전면 확대를 앞두고 있다. 기업지배구조보고서 공시 의무는 현재 자산 1조 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를 대상으로 운용되어 왔으며, 2026년부터 코스피 상장사 전체로 확대될 예정이다. 다만 이는 거래소 공시규정 개정을 통해 완료되는 사항으로, 코스피 상장사에게 지배구조 공시가 사실상 상장 유지의 기본 요건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유럽발 규제는 이미 작동 중이다. 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2023년 10월 1일부터 2025년까지 전환기간을 거쳐, 2026년 1월 1일부터 본격 확정 시행에 들어갔다.
전환기간 동안은 탄소 배출량 보고 의무만 적용됐지만, 2026년 수입분부터는 실제 탄소 비용 부담이 발생한다.
EU 수입기업이 2026년 수입분에 대한 탄소배출량을 신고해야 하며, CBAM 인증서는 2027년 2월부터 판매가 시작되어 2027년 9월 30일까지 EU 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인증서 가격은 EU 배출권거래제(EU ETS) 가격과 연동되므로, 기업이 부담할 실제 탄소 비용은 시점별 ETS 가격에 따라 달라진다. 현재 6대 품목(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력, 수소)이 우선 적용 대상이며, 2028년부터는 철강·알루미늄의 하류 산업 품목인 산업용 기계, 차량, 가전제품 등까지 확대될 예정이다.
한국의 대EU 수출액(681억 달러) 중 CBAM 직접 대상 품목은 51억 달러(전체의 약 7.5%)이며, 이 중 철강이 대상 품목 수출의 89.3%를 차지한다. 숫자만 보면 영향이 제한적으로 보이지만, 간접 영향권은 훨씬 넓다. 철강을 소재로 볼트나 부품을 만들어 EU에 수출하는 중소기업, 그 부품을 구매해 재수출하는 무역업체도 CBAM 의무 이행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U 기업지속가능성실사지침(CSDDD)은 2024년 7월 25일 발효됐다. 2026년 3월 18일 발효된 옴니버스 I 개정 지침에 따라 기업 준수 의무 시작 시점이 조정됐다. 최종 확정 기준으로 회원국의 국내법 전환 기한은 2028년 7월 26일이며, 기업의 실사 의무는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적용된다.
직원 3,000명 이상·전 세계 매출 9억 유로 이상 대기업은 2028년 7월 26일부터, 직원 1,000명 이상·전 세계 매출 4억 5천만 유로 이상 기업은 2029년 7월 26일부터 적용된다.
EU 역외 기업의 경우 직원 수 요건은 제외되고 EU 내 매출 기준만 적용된다. 실사 범위는 기업 자체·자회사·1차 직접 협력사로 한정됐으며, 위반 기업에 대한 과징금은 회원국이 자국 기준에 따라 설정한다.
금융: ESG 점수가 자금 조달 비용을 결정하기 시작했다
"ESG는 더 이상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야기가 아니다. 투자를 받을 수 있는가, 대출 금리가 얼마인가의 문제다."
국민연금은 2006년 책임투자형 위탁펀드 운용을 시작으로 2018년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며 ESG 투자 체계를 단계적으로 구축해 왔다.
2023년 말 기준 국내외 주식·채권 자산군에 ESG 요소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책임투자를 운용 중이다. 다만 2025년 국정감사에서는 책임투자로 분류된 위탁운용 자산 중 상당 부분이 실질적인 ESG 기준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분류 기준과 측정 방식에 따라 수치는 달라질 수 있으나, 국민연금의 ESG 투자 체계가 아직 완성 단계가 아님을 보여주는 동시에, 앞으로 실질적 기준이 강화될 방향임을 시사한다. 600조 원이 넘는 자산을 운용하는 국내 최대 기관투자자의 기준이 강화될 경우, 그 파급 효과는 상장사 전반에 미친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압력은 이미 현실이다. 블랙록(BlackRock), 뱅가드(Vanguard), 스테이트스트리트(State Street) 등 세계 주요 자산운용사들은 ESG 리스크를 투자 결정의 핵심 변수로 공식화했으며, ESG 성과가 미흡한 기업 경영진에 대한 주주 반대 의결권 행사를 확대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 비중이 높은 한국 대형 상장사에게 이 압력은 이미 주가와 자본 비용에 영향을 주는 현실이 됐다.
은행권도 변하고 있다. ESG 등급에 따라 금리를 차등 적용하는 지속가능연계대출(Sustainability-Linked Loan) 상품이 국내 시중은행에서 운용되기 시작했다. 채권 시장에서도 변화는 뚜렷하다.
기후 채권 이니셔티브(CBI) 집계 기준 전 세계 그린본드 누적 발행 규모는 수조 달러 수준이며, ESG 기준을 충족하는 기업은 일반 회사채보다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기업은 이 시장 접근 자체가 어렵다.
공급망: 대기업 요구가 협력사 전체로 내려온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에너지솔루션, SK하이닉스 등 글로벌 공급망을 운용하는 한국 대기업들은 이미 1차 협력사에 ESG 실적 보고서 제출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 압력은 1차에서 2차, 3차 협력사로 순차적으로 내려간다.
구조는 단순하다. CSDDD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유럽 고객사들이 한국 대기업에 공급망 ESG 데이터를 요구하고, 한국 대기업은 다시 국내 협력사에 같은 기준을 요구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24년 하도급 지침 개정을 통해 대기업이 협력사에 ESG 정보를 요구하는 것이 불공정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법적으로도 협력사 ESG 요구는 정당한 경영 활동으로 인정받는 환경이 공식화된 것이다.
이 압력의 범위는 규모를 가리지 않는다. 한국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대EU 수출액 681억 달러 중 CBAM 직접 대상 품목은 51억 달러이지만, 간접적 영향권에 포함될 수 있는 기업의 범위는 이보다 훨씬 넓다.
기중앙회 조사에서 EU 수출 실적이 있거나 진출 계획이 있는 제조 중소기업의 54.9%가 CBAM 대응 계획조차 없다고 답한 것은, 준비 없이 공급망 규제를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보여준다. 매출 100억 원 규모의 부품 제조업체라도 대기업 납품 계약을 유지하려면, 탄소 배출 데이터와 노동 환경 기준을 정량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환경이 빠르게 완성되고 있다.
냉정하게 봐야 할 변수들
ESG의 미래가 밝기만 한 것은 아니다.
첫째, 'ESG 워싱(Greenwashing)' 리스크가 실재한다.
실질적인 변화 없이 ESG 이미지만 관리하는 행태에 대해 EU는 이미 근거 없는 친환경 주장을 금지하는 그린워싱 규제를 시행 중이며, 한국도 공시 의무화와 함께 허위·과장 공시에 대한 제재 기준 강화를 준비 중이다. 형식적으로만 ESG를 운용하는 기업은 규제 강화 국면에서 더 큰 신뢰 손상과 법적 리스크를 동시에 안게 된다.
둘째, ESG 규제가 완화 방향으로 조정될 수 있다는 점도 직시해야 한다.
앞서 설명한 CSDDD 옴니버스 I 개정이 대표적 사례다. 규제의 큰 방향은 유지되더라도 세부 기준과 시행 일정은 정치적 협상에 따라 바뀔 수 있다. 기업은 이 불확실성을 리스크가 아닌 준비 시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현명하다.
셋째, ESG 피로감과 정치화도 현실적인 변수다.
미국 일부 주에서 ESG 투자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글로벌 ESG 담론의 표현 방식에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러나 기업이 탄소·인권·지배구조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는 본질적 요구는 이 흐름과 무관하게 강해지고 있다. CBAM은 이미 시행됐고, 공시 의무는 다가오고 있다.
KBR Insight
일찍 ESG 데이터 관리 체계를 구축한 기업은 규제 대응 비용이 낮고, 금융 조달 조건이 유리하며, 대기업 협력사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 반면 준비가 늦은 기업은 규제 대응에 자원을 소진하면서 동시에 시장 경쟁력을 잃는 이중 부담을 진다.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행동은 명확하다.
첫째, 자사 제품의 탄소 배출량 Scope 1·2를 측정하고 기록하는 체계를 구축한다. 이것이 CBAM 대응의 출발점이자 향후 ESG 공시의 핵심 데이터가 된다.
둘째, 주요 고객사(대기업)가 요구하는 ESG 항목을 파악하고 대응 체계를 선제적으로 갖춘다.
셋째, 2028년 공시 의무 적용 대상 기업이라면 지금부터 KSSB 기준에 맞는 내부 보고 체계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공급망 배출량(Scope 3)은 국내 로드맵 초안에서 2031년 이후 적용으로 유예될 가능성이 제기되나 아직 공식 확정되지 않아, 단기 우선순위는 낮더라도 중기 계획에는 포함해야 한다.
결론 : 지금 움직이는 기업이 2030년 시장을 가져간다
EU CBAM은 2026년 1월부터 본격 시행됐다. CSDDD 기업 적용은 규모에 따라 2028년 7월과 2029년 7월로 단계 시행된다.
한국 ESG 공시는 2028년부터 대형 상장사 대상으로 단계 의무화가 시작될 계획이다. 이 세 가지는 모두 확인된 제도적 사실이다.
현재의 규제 일정이 변경 없이 진행될 경우, ESG는 경영의 한 부문이 아니라 사업 전략의 전제 조건에 가까운 역할을 하게 된다.
지금은 브랜드 이미지와 사회적 책임의 문제지만, 2030년엔 현금흐름과 시장 접근권의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 전환을 먼저 이해하고 데이터와 프로세스를 갖춘 기업이 다음 10년의 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리고 그 준비의 시작은, 지금이어야 한다.

![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2026년 1월부터 본격 시행됐다. [이미지 = 코리아비즈니스리뷰 DB]](https://epzvqcvbpcduaglyoici.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news-images/legacy-cgi/2026/04/28/1777336172_77985.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