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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그 다음은 어디인가 — K-방산·조선·바이오·로봇, 한국의 4대 성장축이 열린다

수주잔액 110조 원을 돌파한 K-방산은 이제 완제품 납품을 넘어 기술이전·현지생산·MRO를 아우르는 패키지 수출로 진화하고 있다. 반도체 수출 호조가 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는 2026년, 그 이면에서는 새로운 성장 동력들이 구체적 수치와 함께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류현진 기자입력 2026년 4월 21일수정 2026년 5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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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 일몰 속 군용 자주포가 수출 화물선에 탑재되고 있다. [사진 = 코리아비즈니스리뷰 DB]
황금빛 일몰 속 군용 자주포가 수출 화물선에 탑재되고 있다. [사진 = 코리아비즈니스리뷰 DB]

수주잔액 110조 원을 돌파한 K-방산은 이제 완제품 납품을 넘어 기술이전·현지생산·MRO를 아우르는 패키지 수출로 진화하고 있다. 반도체 수출 호조가 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는 2026년, 그 이면에서는 새로운 성장 동력들이 구체적 수치와 함께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수주잔액 110조 원을 돌파한 K-방산은 이제 완제품 납품을 넘어 기술이전·현지생산·MRO를 아우르는 패키지 수출로 진화하고 있다.

반도체 수출 호조가 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는 2026년, 그 이면에서는 새로운 성장 동력들이 구체적 수치와 함께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KDI(한국개발연구원)는 2026년 2월 발표한 수정 경제전망에서, 우리 경제가 반도체 수출 호조세와 소비 회복세에 힘입어 1.9%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같은 전망에서 반도체를 제외한 제조업 생산 부진이 이어질 것이라는 점을 성장의 제약 요인으로 함께 지목했다.

반도체라는 단일 축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각종 정책 방향과 기업 투자 흐름을 종합하면 한국 산업 생태계 전반이 다음 먹거리를 향해 재편되는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방위산업, 조선업, 바이오헬스, AI·로봇이라는 네 개의 축이 각자의 방식으로 성장의 증거를 내놓고 있으며, 이 네 분야가 서로 교차하고 융합하면서 한국 산업의 다음 지형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K-방산, '퀀텀점프'의 원년이 열리나


가장 극적인 변화가 감지되는 분야는 단연 방위산업이다.

냉전 이후 수십 년간 군수 수출국으로서 존재감이 미미했던 한국이 불과 수년 만에 글로벌 방산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로 부상하고 있다는 평가가 잇따른다.

DB금융증권과 하나증권이 최근 발표한 리포트에 따르면, K-방산 수출은 2026년 약 377억 달러(약 56조 6,000억 원)에 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는 2025년 추정 실적 대비 약 3.7배 수준으로, 예상대로라면 역대 최대치를 경신하게 된다. 

수치만큼이나 주목되는 것은 수출 구조의 변화다. 과거의 완제품 납품형 수출에서 벗어나, 현지 조립과 기술 이전, 유지·정비·보수(MRO)가 하나로 묶인 '패키지 수출'이 K-방산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평가다.

국내 방산기업들은 최근 수년간 이 같은 추세에 발맞춰 수출 구조를 빠르게 재편하는 모양새다. 단순히 무기를 팔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현지에 생산 공장을 세우고 기술을 이전하며 유지보수까지 책임지는 종합 방산 서비스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루마니아 정부는 K-2 전차 도입을 추진하기로 하고 한국 측과 협의를 진행 중이며, 베트남과는 K-9 자주포 수출 계약이 체결됐다. 정부는 이를 '사회주의권 국가에 한국산 주력 무기체계가 진출한 첫 사례'로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수출 성과를 바탕으로, 방산업계에서는 한국 방산이 단순한 가격 경쟁력을 넘어 기술 신뢰성과 납기 경쟁력 면에서도 국제 무대에서 한 축을 차지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 집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방산업체들의 수주 잔액이 110조 원을 돌파했다.

방산업계에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분쟁 등 지정학적 긴장으로 지상 무기와 대공 무기 체계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반면, 신속하게 고품질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국가는 사실상 소수에 불과한 상황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한국형 전투기 KF-21(보라매)의 본격적인 양산 돌입과 유무인 복합 체계(MUM-T)로의 진화가 산업 전반의 추가 성장을 견인할 것으로 금융투자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2026년 수주 파이프라인은 35조 원 이상으로 추정되며, 현대로템은 20조 원 이상의 수주 파이프라인을 확보한 상태라는 증권사 분석이 나온다.

방산 커버리지 기업 합산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40.5%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방산업계 관계자들은 AI, 빅데이터, 무인 무기 등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 미래전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 중장기 과제라고 밝히고 있다.

K-조선, '물량'에서 '기술'로의 체질 전환


조선업은 방산보다 조용하지만, 훨씬 더 구조적으로 깊은 체질 변화를 겪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HD한국조선해양,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3사의 2025년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4조 3,527억 원을 기록하며 전년도 연간 영업이익(2조 1,747억 원)의 두 배를 넘어섰다. 3사의 공시 기준 합산 수주잔고는 약 135조 원으로 이미 3~4년 치 이상의 일감이 확보된 상태라고 업계는 전한다. 

세종대 김대종 경영학부 교수는 "컨테이너선 발주는 둔화되고 있지만 친환경 선박 수요는 여전히 견조하다"며 "한국 조선업은 물량 산업에서 기술 산업으로 체질 전환에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LNG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을 중심으로 한 선별적 수주 전략이 수익성을 끌어올린 핵심 요인이라는 게 업계 전반의 평가다.

미국의 LNG 수출 확대와 카타르의 선단 교체 수요, 친환경 연료 전환 수요가 맞물리면서 2026~2027년 국내 조선사의 연간 LNG 운반선 건조량이 60~70척 수준까지 늘어날 가능성이 업계에서 거론된다. 대한상공회의소도 LNG 운반선과 컨테이너선 수요에 힘입어 2026년 조선업 수출이 전년 대비 8.6% 증가한 339억 2,000만 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에 전략적 차원의 새로운 기회가 더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양국 정부는 한미 조선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를 2026년부터 본격 가동하기로 하고, 미 해군 함정 MRO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 중이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미 함정 MRO 진출을 위한 함정정비협약(MSRA) 인증 획득을 추진해왔다.  이는 민간 상선 수주를 넘어 한미 동맹의 산업적 결실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적 전환으로, 방산과 조선이 하나의 생태계 안에서 융합되는 새로운 국면이 열릴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수은 해외경제연구소는 세계 신조선 발주량이 2025년 4,100만 CGT에서 2026년 3,500만 CGT 내외로 14.6% 추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수주 공백이 이어질 경우 중기 실적 악화가 불가피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했다.  

고부가가치 분야에서 한국이 보유한 기술 우위를 감안하면 중국이 단기간에 따라오긴 쉽지 않다는 전망이 업계에서 나오고 있으나, 중국의 물량 공세라는 구조적 위협은 지속적으로 경계해야 할 요인으로 꼽힌다.

바이오헬스, '반도체 다음'을 공식화하다


보건복지부 이형훈 제2차관은 2026년 3월 초 기업 간담회에서 "바이오헬스 산업이 반도체에 이은 제2의 국가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단순한 정책 수사가 아니라, 수치로도 뒷받침되는 방향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2025년 12월 발표한 '바이오헬스산업 수출 2025년 동향 및 2026년 전망'에서, 2026년 바이오헬스산업 수출이 전년 대비 9.0% 증가한 304억 달러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300억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했다.  분야별로는 의약품 117억 달러(전년 대비 +10.5%), 화장품 125억 달러(+9.9%), 의료기기 62억 달러(+4.5%)로 전 분야에서 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진흥원은 밝혔다. 

이 성장의 핵심 동력은 바이오의약품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분석에 따르면 2026년 바이오의약품 수출은 전년 대비 23.4% 증가한 85억 달러로, 의약품 수출의 81.1%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에피스가 FDA 바이오시밀러 승인을 잇달아 획득하며 역대급 성과를 달성한 것이 배경으로 꼽힌다. 

실제로 2025년 기준 북미 수출액은 56억 달러로 2016년 대비 5.1배 증가했으며, 유럽도 96억 달러로 4.0배 성장했다. 아시아·퍼시픽 중심에서 북미·유럽으로 수출 시장이 다변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CDMO(위탁개발생산) 분야에서의 역할 확대도 주목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25년 4월 5공장을 가동하며 생산능력을 78.4만 리터로 확대했고, 2032년까지 8공장을 순차 준공해 총 132.4만 리터 규모를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미국 생물보안법 상원 통과로 중국 바이오 기업과의 거래가 제한되면서 국내 CDMO 기업들의 반사이익이 기대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는 2026년 바이오헬스 수출 목표를 304억 달러로 설정하고, 관련 지원 예산을 전년의 3.5배 수준인 2,338억 원으로 대폭 확대했다. 신약 개발의 마지막 관문인 임상 3상 지원을 위한 1,500억 원 규모의 특화펀드도 새로 조성된다고 보건복지부는 밝혔다. 

AI·로봇, 기존 강점 위에서 새 생태계를 구축하다


한국로봇산업협회는 명칭을 '한국AI·로봇산업협회'로 변경하며 휴머노이드·피지컬 AI·제조·서비스 로봇을 아우르는 AI·로봇 융합 생태계 강화를 핵심 비전으로 내세웠다.  로봇은 더 이상 제조업의 보조 수단이 아니라, 한국이 주도권을 노리는 독립적인 성장 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분위기다.

LG전자는 미국 자율주행 서비스 로봇 기업 베어로보틱스의 경영권을 인수해 자회사로 편입했고, 두산로보틱스는 미국 로봇 솔루션 기업 원엑시아를 인수하며 글로벌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레인보우로보틱스에 대규모 지분 투자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국내 대기업들이 일제히 로봇 생태계에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는 것은, 이 분야가 선택이 아닌 전략적 필수 영역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글로벌 로봇 시장은 2025년 기준 약 435조 원 규모로 추정되며, AI 기술과의 융합을 통해 연평균 20~25%의 고성장이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이 수치는 리서치사마다 산정 기준이 다를 수 있어, 400조 원대 중반 수준의 레인지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한국이 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배경으로는, 반도체·디스플레이·정밀제조라는 기존 제조 강점이 꼽힌다.

반도체 산업 자체도 형태를 바꾸며 확장을 지속하고 있다. MWC 2026에서 SK하이닉스는 차세대 고대역폭 메모리 HBM4를 공개하며 AI 인프라 분야에서의 기술 우위를 재확인했다. 삼정KPMG는 이번 MWC 2026을 "AI 기반 지능형 산업 구조가 본격화되는 전환점"으로 평가했다.  

삼일PwC가 발표한 '2026 반도체 산업 트렌드 전망'에 따르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2024년 약 6,270억 달러에서 2030년 1조 달러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며, AI 확산으로 서버용 반도체와 차량용 반도체 시장이 가장 빠르게 확장될 전망이다.  반도체는 종착점이 아니라, 새로운 성장 분야들의 핵심 인프라로서 역할이 계속 확장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네 성장축의 공통 논리: '기술 패키지'로의 전환


2026년 현재, 한국 기업의 다음 성장축으로 거론되는 네 분야는 서로 다른 산업임에도 동일한 구조적 논리를 공유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K-방산과 K-조선은 단순 완제품 수출에서 기술·서비스를 결합한 패키지 수출로 전환하며 부가가치를 끌어올리고 있다.

바이오헬스는 완제 의약품 수출에서 CDMO라는 제조 역량 수출로 무게 중심을 옮기고 있다. AI·로봇은 하드웨어 제조 강점 위에 소프트웨어와 AI라는 지능을 얹어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 흐름의 공통 키워드를 업계 전문가들은 하나로 요약한다. 제품을 팔던 시대에서 기술 역량 자체를 파는 시대로의 전환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프로스트 앤드 설리번은 2026년 선정한 상위 50개 미래 유망 기술이 향후 5년간 1조 2,500억~1조 3,500억 달러 규모의 시장을 창출할 것으로 내다봤다.

보고서는 AI 기반 신약 개발, 차세대 반도체 아키텍처, 청정 에너지 인프라 등 다양한 기술 혁신이 실제 시장 성장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네 개 성장축이 교차하는 지점, 예컨대 AI 기반 스마트 함정, 무인 전투 로봇, 자율항법 LNG선, AI 신약 개발 플랫폼 등이 향후 한국 산업의 핵심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실제로 국내 조선·방산 업체들은 AI 기반 스마트 함정 기술 로드맵을 제시하는 등 관련 준비에 나서고 있으며, 바이오 기업들도 AI를 활용한 신약 개발 플랫폼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정학적 불안이 방산 수주로, 에너지 전환이 LNG선 호황으로, 바이오 기술의 성숙이 수출 산업화로, AI 확산이 로봇 생태계로 이어지는 구조적 흐름은 단기 트렌드가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반도체 이후의 한국 산업 지형은 이미 새로운 형태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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