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부터는 차량 성능뿐 아니라 제작·수입사의 국내 사업 기여도가 보조금 지급 요건에 추가된다.
올해 7월부터 전기차 보조금 지급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뀐다. 기존에는 자동차 자체의 성능—1회 충전 주행거리, 배터리 효율, 판매가격—만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보조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기후에너지환경부(이하 기후부)가 지난 3월 31일 공개한 '2026년 전기자동차 보급사업 수행자 선정 평가 기준'은 그 전제 자체를 바꾼다. 차량의 성능이 아무리 우수하더라도, 그 차를 판매하는 제작사 또는 수입사가 별도의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보조금 대상에서 원천 배제된다는 것이다.
기후부는 이 제도의 취지에 대해 "제작·수입사의 당해연도 사업계획, 기술개발, 안전 및 사후관리 역량, 사업 지속가능성, 유관 산업 및 일자리 창출 기여도 등 사업수행자가 국내 지속가능한 전기차 생태계 구축에 기여하는지를 평가하고, 이를 통과할 경우 보급사업 참여가 가능하도록 한다"고 밝혔다. "보조금만 받고 국내사업을 철수하거나 사후관리 등이 부실하여 소비자 피해를 유발하는 사업자가 지원받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할 계획"이라는 것이 정부의 공식 설명이다.
정부의 논리는 명확하다. 세금으로 조성된 보조금이 국내 시장에서 이익만 거두고 사후관리나 지속적 투자를 소홀히 하는 사업자에게 흘러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평가 기준의 세부 내용이 공개되자마자, 자동차 업계와 정치권 모두에서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량 40점·정성 60점, '회사 심사'의 구체적 내용
기후부가 제시한 평가 기준은 정량평가 40점과 정성평가 60점, 합계 100점 만점으로 구성된다. 정량평가는 사업능력, 기술개발, 사후관리 3개 항목으로, 정성평가는 지속가능성, ESG 대응, 산업 기여도, 안전관리 4개 항목으로 나뉜다.
이번 개편으로 국내 고용 창출 효과, 사후책임 지속성 여부, 부품산업 전환 기여, 산학 협업 역량과 같은 항목이 평가지표로 새롭게 추가됐다. 자동차 판매 기업이 국내 자동차 생태계 성장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충전 인프라 항목도 주요 평가 요소 중 하나다. 세부 항목에는 CCS1 충전기 구축 여부를 평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CCS1은 국내 공용 전기차 충전 표준 방식으로, 자체 충전 인프라를 별도로 운영하는 일부 브랜드의 경우 이 항목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업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정량평가 40점 외에 정성평가 비중이 절반 이상인 60점으로 설정됐다는 점도 주목된다. 정성평가 비중이 높다는 것은 평가 주체의 재량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업 지속가능성', 'ESG 대응', '산업 기여도' 같은 항목은 수치로 명확히 측정하기 어려운 성격을 가지고 있어, 평가의 일관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제도 신뢰도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100점 만점에서 정량과 정성을 합쳐 80점 이상을 받지 못하면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된다. 평가 결과 적용 방식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다.
평가 점수 100점 만점 중 80점 미만을 아예 배제하는 방식이, 하위 부실 업체를 걸러내는 '네거티브 방식'이 아니라 상위 극소수만 인정하는 '포지티브 방식'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기준 미달 사업자만 탈락시키는 방식과 달리, 일정 점수 이상을 받은 사업자만 보조금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여서 사실상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다.
중국산 전기차 확산이 제도 신설의 배경
기후부는 이 제도의 실질적 배경이 중국산 전기차 시장 진입 확대와 무관하지 않음을 밝혔다. 기후부 관계자는 "최근 중국에서 생산된 전기차들이 국내에 대거 판매되면서 이에 대한 보조금 지급이 적절한지에 대한 비판 여론이 강했다"며 "이번 평가 기준은 중국산 전기차 판매 확대에 대응하는 취지로 마련됐다"고 밝혔다.
국내 시장에서 외산 전기차의 존재감이 커지는 가운데, 정부로서는 보조금이 국내 산업 생태계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방향으로 집행되어야 한다는 정책 판단을 내린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특정 원산지를 직접적으로 차별하는 방식은 WTO 보조금 협정상 허용되기 어렵기 때문에, 이번 평가 기준처럼 기업의 국내 활동과 기여도를 종합 심사하는 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소영 의원은 "기업신용 평가나 국내 사업 기간 5년 이상, 국내 R&D 투자 500억 이상 등의 기준은 특정 국내 업체에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중국산 전기차를 견제하려는 취지가 실질적으로는 국내 완성차 업체와 거리가 먼 모든 브랜드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의원은 "전기차 보급정책 예산이 특정기업의 매출 보조금 같은 방식으로 쓰여선 안된다"고 밝혔다. 전기차 보조금은 탄소 감축이라는 환경 목적으로 조성된 공적 재원인 만큼, 수혜 기업이 지나치게 좁아질 경우 정책 목적과 집행 방식 사이의 정합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는 취지다.
업계와 소비자가 주목하는 정책 논쟁
이번 평가 기준을 둘러싼 논란은 크게 두 가지 입장으로 정리된다.
찬성 측은 보조금이 국내 전기차 생태계 강화에 기여하는 기업에게 우선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용, 기술개발, 사후관리 역량 등을 요건화하는 것은 보조금의 공적 효과를 높이는 데 필요한 조치라는 논리다. 또한 보조금만 수령한 뒤 사후관리나 국내 투자를 소홀히 하는 사업자를 사전에 걸러낸다는 점에서 소비자 보호 측면도 있다고 본다.
반대 측은 평가 기준의 설계가 특정 기업 유형에 구조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하고, 그 결과 소비자의 차량 선택 폭이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나아가 글로벌 무역 규범의 관점에서 수입 브랜드에 대한 사실상의 차별 조치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 통상 마찰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전기차 보급 정책이라는 틀 안에서 산업 보호와 시장 다양성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지는, 이 제도가 풀어야 할 핵심 과제로 남아 있다.
시행 일정과 향후 전망
현행 계획에 따르면 평가 기준 공개는 3월에 완료됐고, 평가 실시 및 결과 공고는 6월까지 마무리된다. 이후 7월 1일부터 새 기준이 본격 적용된다. 안전 관련 보조금 지원 요건으로 '전기자동차 화재안심보험' 가입을 신설하는 한편, 지자체가 지방비를 국비 대비 최소 30% 편성하도록 하는 내용도 함께 시행될 예정이다.
다만 기준이 그대로 시행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해당 평가 기준이 무효화되거나 변경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며, 기후부도 소비자뿐 아니라 국회 차원의 우려가 나오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치권과 업계의 비판이 지속되는 만큼, 세부 항목 수정이나 시행 유예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전기차 시장 자체는 성장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 전기차 시장은 2023~2024년 수요정체 시기를 지나 2025년 연간 최고 보급 대수인 약 22만 대를 달성하는 등 보급이 확대되는 추세다. 이처럼 시장 회복세가 뚜렷한 시점에 새로운 진입 요건이 도입되는 것이어서, 이번 평가 기준이 시장 역동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관심도 높다.
KBR INSIGHT
구매 결정 앞둔 소비자·법인은 6월 말 결과 확인 필수다.
7월 이후에는 수행자 선정 평가를 통과하지 못한 브랜드의 차량을 구매할 경우 보조금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전기자동차 보급사업 수행자로 선정된 제작·수입사가 판매하는 보조금 지원 대상 자동차를 신규 구매하여 국내에 신규 등록할 경우에 보조금 지원 대상에 해당한다. 따라서 특정 브랜드의 차량 구매를 검토 중인 소비자나 법인이라면 6월 말 공고될 평가 결과를 확인한 뒤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이 합리적이다.
정책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기준 자체의 변경 가능성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상태이므로, 완성차 브랜드·딜러사·소비자 모두 7월 이전까지 최종 확정본이 나오기 전에는 전략적 대응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산업정책과 환경정책의 결합이라는 구조적 문제는 중장기 과제로 남는다.
탄소 감축을 목적으로 설계된 보조금 제도에 산업 육성과 고용 창출 조건을 결합하는 방식은 미국 IRA, 유럽 CRMA 등 주요국의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그러나 적용 범위와 평가 투명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으면 통상 마찰의 빌미로 이어질 수 있다. KBR은 6월 평가 결과 공고와 최종 기준 확정 내용을 지속 추적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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