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전경. 이란과 오만 사이 약 34km 폭의 이 수로는 전 세계 원유 공급의 약 20%가 통과하는 핵심 에너지 통로다.
2026년 2월 28일 미국-이스라엘의 대이란 공습 이후 사실상 봉쇄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 = 코리아비즈니스리뷰 DB]
미국-이스라엘의 대이란 군사작전이 시작된 지 38일째를 맞은 4월 7일,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둘러싼 외교적 긴장이 가장 높은 수위에 도달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이날 오후 8시(동부시간)까지 해협을 전면 개방하지 않을 경우 이란 내 발전소와 교량을 타격하겠다는 데드라인을 설정한 상태다. 이란은 이 데드라인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동시에, 파키스탄이 양측 간 중재안을 제시하며 외교 채널이 가동되고 있다. 트럼프는 이란의 제안에 대해 "중요한 진전이지만 충분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군사적 경고와 외교적 접촉이 같은 시간대에 공존하는 상황으로, 데드라인 이후 방향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이번 사태의 경제적 충격은 에너지 시장을 넘어 공급망, 금융시장, 식량 안보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한국은 구조적 취약성의 깊이를 다시 한번 드러내고 있다.
1. 현재 교섭 단계: 무엇이 논의되고 있나
파키스탄은 즉각적인 휴전 및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1단계로, 이후 15~20일 이내에 포괄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을 2단계로 하는 '두 단계 평화안'을 양측에 전달했다. 이 제안은 '이슬라마바드 협정'이라는 가칭으로 불리고 있으며, 이란의 핵무기 추구 포기, 제재 해제, 동결 자산 반환 등을 최종 합의 내용으로 포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외무부 대변인 이스마일 바가에이는 미국이 제시한 15개 항의 평화안이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란은 일시적 휴전을 거부하며 전쟁의 영구적 종식을 보장하는 방식으로만 협상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란은 파키스탄을 통해 전쟁 종식, 호르무즈 해협 안전 통항 보장, 제재 해제를 포함한 10개 항의 공식 요구서를 미국 측에 전달한 것으로 이란 국영통신 IRNA가 보도했다. 트럼프는 이를 두고 "중요한 진전이지만 충분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이란 측 고위 관계자는 이란이 전쟁의 영구적 종식을 보장하는 45일 휴전안에는 열려있으나, 일시적 휴전만을 전제로 한 해협 재개방에는 동의하지 않겠다고 밝혔다고 이집트 외교 소식통이 NPR에 전했다. 이란 측은 또한 데드라인 방식의 협상 자체를 거부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현 시점에서 미국과 이란의 입장 사이에는 두 가지 주요 간극이 확인된다. 첫째, 이란은 영구적 전쟁 종식과 피해 보상을 선결 조건으로 요구하고 있고, 미국은 해협 재개방을 먼저 요구하고 있다. 둘째, 이란은 외부에서 부과되는 데드라인 자체를 협상의 전제로 수용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2. 에너지 시장: 불확실성 속의 등락
4월 6일 기준 WTI는 배럴당 112.41달러, 브렌트유는 109.77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전쟁 개시 시점(2월 28일) 대비 브렌트유는 약 50% 상승한 수준이다.
MCP자산운용의 시마즈 히로키 수석 전략가는 현재 상황이 "결정적 해소보다는 장기 교착 국면에 가깝다"고 평가하며, 전면 합의보다는 오만의 중재를 통한 "조용한 타격 템포 축소" 방식의 부분 완화를 더 현실적인 시나리오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시장은 헤드라인 리스크가 장중 움직임을 지배하는 이벤트 구동형으로 진입했으며, 포지셔닝은 이분법적 결과를 전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BCA리서치의 지정학 전략가 마르코 파피치는 현재 전쟁으로 인한 글로벌 원유 공급 차질이 하루 450만~500만 배럴 수준으로, 이는 전 세계 공급량의 약 5%에 해당하는 규모라고 추산했다. 그는 4월 중순까지 이 수치가 두 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며, 현재 가동 중인 전략비축유 및 제재 완화 조치들의 효력 소진 시점을 핵심 변수로 지목했다.
유가의 향방은 단일 변수로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트럼프의 발언 한 마디에 가격이 상하 6달러 이상 움직이는 고변동성 구간이 이어지고 있으며, 외교적 진전 기대와 군사 확대 우려가 동시에 가격에 반영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3. 외교 지형: 참여 국가와 입장의 분화
이란 고위 관계자 알리아크바르 벨라야티는 이란이 홍해의 주요 해상 통로인 밥알만데브 해협도 호르무즈와 동등한 수준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란 혁명수비대(IRGC) 해군사령부는 "호르무즈 해협은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해 결코 이전 상태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랍에미리트(UAE)는 4월 5일 미국의 호르무즈 해협 통제 작전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공식 표명했다. 반면 카타르와 오만은 군사적 방식보다 외교적 해결을 우선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걸프협력회의(GCC) 내부에서 입장 차이가 확인되고 있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의 미리야나 스폴야리치 총재는 "민간 기반 시설에 대한 고의적 위협이 전시의 새로운 규범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성명을 발표하며 단계적 긴장 완화를 촉구했다.
분쟁의 확산 가능성을 경고하는 신호도 관측된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미국의 수륙양용 강습함인 LHA7이 공격을 받아 인도양 남쪽으로 이동했다고 주장했다. 미국 측은 이 주장을 공식 확인하지 않은 상태다.
4. 한국 기업 시사점
한국은 원유 수입의 약 70%를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조달해왔으며, 현재 한국 선적 선박 26척이 페르시아만에 발이 묶인 상태다. KOSPI는 43년 역사상 단일 세션 최대 낙폭을 기록했고, 원화는 17년 만의 최저 수준까지 하락했다. OECD는 주요국 중 가장 큰 폭으로 한국의 성장률 전망을 0.4%포인트 하향 조정했으며, 물가 전망은 2.7%로 상향했다.
석유화학 부문의 충격은 이미 실물 차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나프타 및 프로필렌 공급 차질로 LG화학은 핵심 가소제 수출에 대해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선언했다. 한국 정부는 나프타를 경제안보 품목으로 지정하고 5개월 수출 제한 조치를 발동했다.
반도체 공급망에서도 취약 지점이 드러나고 있다. 한국은 반도체 제조 공정에 필수적인 헬륨 수입의 64.7%를 카타르에서 조달해왔는데, 이란의 라스라판 산업단지 공격 이후 해당 공급이 차질을 빚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긴급 경제 점검 회의를 주재했으며, 정부는 나프타 수출 통제, 요소 사재기 금지, 휘발유 유류세 인하 폭 확대(7%→15%), 경유 유류세 인하 폭 확대(10%→25%), 해양 경유의 가격 상한 포함 등 대응 조치를 발표했다. 홍경준 부총리는 이번 사태를 "경제적 전시 상황"으로 규정하고 시나리오별 3단계 대응 체계를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외교적 포지셔닝도 한국이 직면한 변수다. CSIS는 한국이 이란과의 통과 허가 협상에서 일본의 움직임을 참조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반응을 살피는 방식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가 해협 통과 문제를 개별 국가의 몫으로 넘길 경우 외교적 공간이 생길 수 있으나, 반대로 미국이 이를 부정적으로 해석할 경우 추가 관세 압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태가 드러낸 보다 근본적인 과제는 에너지 의존 구조의 취약성이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은 이란 분쟁이 한국의 에너지 취약성을 새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수십 년간 누적된 화석연료 수입 의존 구조가 얼마나 위험한 상태였는지를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단기 대응과 별개로, 에너지 조달처 다변화와 국내 에너지원 확충이 한국 산업 정책의 중기 과제로 다시 부상하는 흐름이다.
KBR Insight
4월 7일은 이번 사태의 단기적 분기점이 될 수 있는 날이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방향을 단정하기 어렵다.
트럼프는 이전에도 유사한 데드라인을 설정한 뒤 연장한 전례가 있으며, 이란은 어떤 형태의 데드라인도 수용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확인 가능한 체크포인트는 세 가지다.
첫째, 트럼프 데드라인 이후 실제 군사 행동 여부와 범위.
둘째, 파키스탄 중재안이 양측의 수용 가능한 틀로 수렴될 수 있는지.
셋째, IEA 전략비축유 방출과 한시적 제재 완화 조치의 효력이 소진되는 4월 중순 이후의 유가 흐름.
협상과 군사적 경고가 동시에 진행되는 현재의 구도는 단기간 내 어느 방향으로도 수렴될 수 있는 상태다. 분명한 것은, 해협이 재개방되더라도 지정학 리스크 프리미엄이 에너지 시장에 반영되는 구조가 단시일 내 해소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