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일상을 싣고 달리는 버스의 이면에는 누적된 적자와 운영 체계의 구조적 모순이라는 뼈아픈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대중교통 생태계 복원을 위해서는 실질적인 정산 방식 개편과 유연한 모빌리티 대안 마련 등 전면적인 체계 전환이 시급하다. [사진 = 코리아비즈니스리뷰 자료 사진]
늦은 밤, 승객 없이 실내조명을 끄고 어둠 속을 달리는 마을버스는 2026년 현재 대한민국 대중교통 생태계가 직면한 극단적 위기를 상징한다.
2004년 서울시가 시내버스 준공영제를 도입한 이후 대중교통은 시민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았으나, 이면에서는 막대한 재정 적자와 구조적 모순이 서서히 누적되어 왔다.
운송원가 상승과 인구 구조 변화로 인한 수송분담률 하락이 맞물리면서 지자체의 천문학적인 지원 없이는 대중교통망 자체의 생존이 불가능해졌다.
특히 적자를 견디다 못해 환승 할인 탈퇴 직전까지 갔던 마을버스의 현실과, 개혁안 발표 이후에도 실질적인 정산 방식 개편이 미뤄지며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고 있는 시내버스 준공영제의 한계는 현행 버스 운영 체계가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뚜렷하게 시사한다.
극한의 비용 통제가 만든 마을버스의 벼랑 끝 현실
마을버스가 늦은 밤 실내조명을 끄고 어둠 속을 달리는 현상은 단순한 기기 결함이 아니다. 이는 누적된 적자와 극심한 경영난 속에서 단 한 푼의 유지비라도 아끼려는 처절한 비용 통제를 대변하는 장면이다.
현재 상당수 지자체에서 마을버스는 시내버스와 달리 전면적인 준공영제 대상이 아니며, 민간 사업자가 운영 책임과 적자의 상당 부분을 떠안는 민영제 기반으로 운행되고 있다.
이러한 경영난의 기저에는 대중교통 환승할인제도의 구조적 한계가 자리한다.
시민의 교통비 부담 완화를 위해 도입된 이 제도는 전체 요금을 이동 거리에 따라 배분한다. 상대적으로 이동 거리가 짧고 환승 이용객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마을버스는 승객 1인당 회수하는 실제 운임이 크게 낮아지는 현상을 겪는다.
서울의 한 마을버스 사례에서는 요금이 1200원이어도 환승할인 후 업체가 승객 1인당 약 600원만 정산받는 구조이며, 환승이 늘어날수록 400원대까지 수익성이 악화되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이러한 누적된 모순은 결국 2025년 하반기, 적자를 견디지 못한 서울시 마을버스 업계가 ‘2026년부터 환승 체계에서 전면 탈퇴하겠다’고 예고하는 초유의 갈등으로 폭발했다.
2025년 말 서울시가 적자업체 노선 증편과 지원금 확대를 약속하며 간신히 파국을 면했으나, 구조적인 수익성 악화와 운전기사 구인난이라는 근본적인 불씨는 여전히 남아 아슬아슬한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재정 부담을 키운 준공영제의 함정과 더딘 개혁
반면, 지자체가 적자를 보전해 주는 시내버스의 상황은 전혀 다른 형태의 구조적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2004년 도입된 서울시 시내버스 준공영제는 민간 버스회사의 난폭 운행과 수익 노선 쏠림 현상을 해소하고 대중교통의 공공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재정 부담은 지자체가 감당하기 버거운 수준으로 팽창했다.
운수회사가 차량 운행을 전담하되, 지자체가 운송수입이 ‘표준운송원가’에 미치지 못할 경우 그 차액을 세금으로 메워주는 ‘사후정산제’가 제도의 뼈대다.
서울시가 버스 업체에 지급해야 하는 연간 재정지원금은 2023년 8,900억 원을 훌쩍 넘어서며 시 예산 운용에 막대한 압박을 가했다.
특히 2026년 3월 시민단체(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분석에 따르면, 2019년 대비 2025년 버스 노선과 정류장은 늘어났으나 총 운행거리는 오히려 감소해 실질적인 배차 횟수가 줄고 시민 대기시간은 길어졌다.
반면 운송수입이 늘어난 시기에도 시의 재정지원금은 동반 상승하는 모순적인 구조가 반복되며, 버스 회사가 비용 절감이나 노선 효율화에 소극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오랜 비판이 이어졌다.
자본 진입이 드러낸 제도의 취약성
이러한 준공영제 사후정산제의 재무적 허점을 파고든 것은 사모펀드(PEF)를 비롯한 민간 금융 자본이었다.
현행 구조에서는 운송 적자가 발생해도 표준운송원가에 포함된 일정 이윤이 세금으로 보전되기 때문에, 민간 자본 입장에서는 지자체 재정을 기반으로 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기대할 수 있는 구조라는 평가가 나온다.
관련 시민단체 보고서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일부 사모펀드가 인수한 버스 업체의 경우 영업손실이 발생한 해에도 누적 잉여금을 활용해 투자자에게 과도한 배당을 실시하거나, 차고지 등 핵심 자산을 매각해 시세차익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단기 자본 회수에 집중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당초 대중교통이라는 공공 인프라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결과적으로 일부 자본의 수익 극대화 과정에 활용되었다는 논란이 일어난 것이다.
지자체의 제도 수술 카드와 현장의 딜레마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정 적자와 자본 유출 논란이 거세지자, 지자체들은 수술에 착수했다.
서울시는 2024년 10월 발표를 통해, 적자를 전액 메워주던 기존 ‘사후정산제’를 폐지하고 지자체가 다음 해 총수입과 총비용을 미리 정해 지원 한도(Cap)를 설정하는 ‘사전확정제’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별도로 불건전 영리 추구 자본의 진입을 제한하는 ‘사전심사제도’ 도입도 약속했다.
그러나 2026년 3월 현재, 사전확정제로의 실질적인 정산 방식 전환이나 구체적인 노선 개편은 아직 현장에 안착하지 못해 “발표 이후 2년째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시민사회의 비판에 직면해 있다.
한편, 경기도는 기초지자체와 도가 버스 운행 적자를 분담하는 ‘시내버스 공공관리제’를 도입했으나 역시 예산 확보의 장벽에 부딪혀 있다.
2025년 상반기 기준 경기도 공공관리제 운송수지율은 53.2%에 불과해 비용의 절반 가까이를 세금으로 메워야 하는 구조다. 공공관리제 하에서는 발생 적자의 약 70%를 시·군이 분담해야 하는데, 재정 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일수록 부담이 커져 제도의 온전한 안착이 위협받고 있다.
실무 현장이 마주한 새로운 모빌리티 대안
막대한 재정 투입만으로는 노선버스의 구조적 적자를 온전히 해결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실무 현장에서는 경직된 운행 방식을 탈피하기 위한 새로운 대중교통 모델 도입이 속도를 내고 있다.
획일적인 40인승 대형 버스가 정해진 노선을 순환하며 적자를 키우는 기존 방식 대신,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한 수요응답형 교통체계(DRT)가 대표적인 대안으로 부상했다.
DRT는 고정된 노선표 없이 승객의 호출 애플리케이션 입력에 따라 실시간으로 최적의 합승 경로를 생성하여 이동하는 시스템이다. 이는 대중교통 소외 지역이나 안정적인 수요가 확보되지 않은 신도시 입주 초기 지역을 중심으로, 기존 노선버스를 보완하거나 대체하는 방식으로 도입이 확대되고 있다.
나아가 2026년 현재, 서울시를 비롯한 수도권 주요 지자체들은 심야 시간대 운전기사 구인난과 운행 비용을 완화하기 위해 자율주행 버스 도입을 전격 확대했다. 기존 1개 노선에 불과했던 ‘새벽동행 자율주행버스’가 4개 노선으로 늘어났고, 동대문구·서대문구·동작구 등지에서는 자율주행 마을버스가 시범 운행을 거쳐 일부 유료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현장의 이러한 움직임은 대중교통 운영 체계가 단순히 '적자 보전'이라는 과거의 재무적 프레임을 넘어, 데이터와 기술 기반의 '효율적 모빌리티 플랫폼'으로 다변화해야만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음을 입증한다.
KBR Insight
지자체의 재정에 크게 의존하는 현행 버스 운영 체계는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기에 서 있다.
대중교통은 필수적인 공공재 성격을 지니지만, 이를 실제 수행하는 주체는 사적 법인인 운수회사다. 이 두 상충하는 가치 사이의 간극을 세금으로 조율하는 과정에서 정밀한 재무적 거버넌스가 결여될 경우, 공공의 예산은 밑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소모될 수 있음을 지난 준공영제 역사가 보여준다.
특히 운임과 노선 통제권은 지자체가 쥐고 운행 효율화의 유인은 부족한 현 구조 하에서는 재무 건전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서울시가 도입을 예고한 사전확정제가 지연 없이 현장에 적용되어 지자체의 재정 지원 상한을 명확히 하고, 운수회사의 자발적 원가 절감 노력을 유도할 성과 기반의 재정 거버넌스가 실제 작동하는지 냉정하게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대중교통 생태계 복원을 위한 2026년 핵심 점검표
불 꺼진 마을버스와 수천억 원의 적자를 보전받는 시내버스의 현실은 일시적인 비용 상승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대중교통 시스템 전반의 재설계를 요구하는 정책적 과제다.
2026년 현재 확인된 사실을 바탕으로 향후 실무 현장과 정책 입안 과정에서 반드시 짚어야 할 핵심 체크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첫째, 사후정산 체계의 실질적 폐지와 사전확정제(Cap)의 신속한 안착이다.
운수회사가 지출한 비용을 사실상 사후에 보전해 주던 기존의 방식은 도덕적 해이와 방만한 경영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서울시가 2026년 시행을 약속했던 ‘사전확정제’가 더 이상의 지연 없이 다음 해 총수입과 총비용 한도를 엄격히 통제하는 실질적 잣대로 현장에 안착해야 한다.
둘째, 민간 자본의 진입 심사 강화 및 배당 상한선 명문화다.
일부 금융 자본이 버스 업계를 안정적인 현금 창출처로 삼아 누적 잉여금으로 고배당을 실시하거나 핵심 자산을 매각하는 행위는 제도적 허점을 드러낸 대표적 사례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사전심사제도’를 엄격히 가동하고, 배당 가능 범위를 제한하여 재무 건전성을 훼손하는 자본 유출을 원천 차단하는 제도적 장치가 실효성을 거두어야 한다.
셋째, 유연한 모빌리티 시스템으로의 적극적인 노선 전환이다.
운송수지율이 평균 50%대에 머무는 현실에서, 취약 지역이나 만성적인 적자 노선에 기존 대형 버스 운행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재정적으로 지속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일괄적인 재정 투입 대신, 지역별 교통 수요 데이터를 분석하여 수요응답형 교통체계(DRT)나 자율주행 버스와 같은 맞춤형 대안 운송 수단을 배치하는 실무적 유연성이 요구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