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시간을 조각하다. 장영실이 조선의 독자적인 기술로 완성한 해시계 앙부일구를 살피고 있다.[이미지 = AI생성 이미지]
이는 명나라의 기술을 단순 모방하는 것을 넘어, 조선의 위도와 환경에 맞게 재창조한 ‘기술 국산화(Localization)’와 ‘초격차 R&D’의 상징적 유산이다.
뷰카(VUCA) 시대, 리더의 '용인술(Personnel Management)'이 기업의 생사를 가른다
오늘날의 글로벌 경영 환경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뷰카(VUCA), 즉 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의 시대로 정의된다.
인공지능(AI)과 로보틱스의 급격한 발전, 글로벌 공급망의 붕괴, 그리고 노동 시장의 대변혁(The Great Resignation) 속에서 기업들은 생존을 위한 새로운 방정식을 찾아 헤매고 있다.
이러한 대전환의 시기에 모든 CEO와 C-Level 임원들이 가장 골몰하는 화두는 단연 ‘인재(Talent)’다. 기술은 거대 자본으로 매입할 수 있지만, 그 기술을 운용하고 혁신을 창출하여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는 결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600년 전, 조선은 건국 초기라는 정치적 혼란기와 명나라 중심의 엄혹한 국제 질서 속에서 독자적인 생존 모델을 구축해야 했던, 현대의 초기 유니콘 기업과 유사한 상황이었다. 이때 제4대 국왕 세종(Sejong the Great)은 당대의 상식과 규범을 송두리째 뒤엎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바로 동래현의 관노(官奴) 출신인 장영실을 종3품 대호군(大護軍)이라는 고위직에 발탁한 사건이다.
이는 단순한 신데렐라 스토리가 아니다. 철저하게 계산된 국가 비전 달성을 위한 전략적 인적자원관리(Strategic HRM)의 결정체이자, 현대 경영학이 지향하는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경영의 원형이다.
이번 인사이트 4.0에서는, 세종이 장영실이라는 ‘숨겨진 원석’을 발굴하고 육성하여 조선의 과학 기술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과정을 심층 분석하고, 이를 통해 21세기 리더들이 갖추어야 할 인재 경영의 인사이트를 제공하고자 한다.
1. 무의식적 편견(Unconscious Bias)의 타파와 블라인드 채용: 오직 ‘직무 역량’으로 승부하다
조선 사회는 성리학적 명분론이 지배하는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계급은 개인의 노력으로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장벽이자 굴레였다. '사농공상'의 위계질서 속에서 기술자는 천시받는 존재였으며, 노비는 말할 것도 없는 사회 최하위 계층이었다.
그러나 세종은 국가의 핵심 과제인 ‘농업 생산성 증대’와 ‘자주적 역법 확립’이라는 KPI(핵심성과지표)를 달성하기 위해, 기존의 문과 출신 관료 집단에서는 찾을 수 없는 특수한 엔지니어링 역량이 절실히 필요함을 간파했다. 당시 사대부들은 유교 경전과 통치 철학에는 능통했으나, 정교한 기계를 설계하고 제작하거나 천체를 관측하는 실무 역량은 전무했다.
세종은 장영실을 발탁함에 있어 그의 출신 성분이라는 배경(Background)을 과감히 소거(Delete)했다. 이는 현대 기업들이 도입하고 있는 블라인드 채용(Blind Recruitment)의 가장 급진적이고 이상적인 형태라 할 수 있다.
세종은 장영실이 가진 탁월한 ‘손재주’와 사물의 이치를 꿰뚫는 ‘통찰력’이라는 직무 역량(Job Competency)에만 집중했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세종은 장영실을 두고 “영실의 사람됨이 비단 공교한 솜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질이 똑똑하기가 보통에 뛰어나다”라고 평가하며 그를 발탁했다. 이는 리더가 인재를 평가할 때 현재의 사회적 지위(Social Status)나 학벌이 아닌, 그가 가진 잠재력(Potential)과 문제 해결 능력(Problem Solving Skill)을 최우선 가치로 두어야 함을 시사한다.
현대 경영에서 구글, 넷플릭스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학위나 출신 학교보다 ‘실무 프로젝트 경험’과 ‘코딩 테스트’ 결과를 중시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세종은 조정 대신들의 격렬한 반대라는 내부 저항(Internal Resistance)을 무릅쓰고, 최고경영자(CEO)의 권한으로 인사 혁신을 강행했다.
이는 혁신을 위해서는 조직 내의 뿌리 깊은 고정관념과 싸울 수 있는 리더의 용기(Courage)와 정치적 자본(Political Capital)의 투입이 필수적임을 보여준다.
세종은 장영실을 통해 ‘신분’이라는 조선의 유리천장을 깨뜨렸고, 이는 조직 전체에 “능력만 있다면 누구든 성공할 수 있다”는 강력한 동기부여(Motivation) 메시지를 전파하여 조직의 역동성을 극대화했다.
2. 글로벌 벤치마킹과 학습 조직(Learning Organization)의 설계: 모방을 넘어 재창조로
인재를 발굴했다면, 그 다음은 육성(Development)이다.
세종은 장영실을 단순히 기능공으로 소모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를 당시 세계 최고의 과학 기술을 보유했던 명나라로 유학을 보냈다.
천출인 노비 출신을 국가 공식 외교 사절단에 포함시켜 국비 유학을 보낸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파격적 투자(Radical Investment)였다. 이는 현대 기업이 핵심 인재(High Potential Talent)를 선발하여 해외 MBA를 지원하거나, 선진 기술을 보유한 실리콘밸리 지사에 파견하여 글로벌 역량을 함양하게 하는 전략적 육성 프로그램과 동일하다.
세종의 의도는 명확했다. 명나라의 선진 문물을 단순히 모방(Copy)하는 것이 아니라, 그 원리를 체득하여 조선의 지리적, 기후적 특성에 맞는 기술로 국산화(Localization)하는 것이었다.
당시 조선의 시간과 달력은 중국의 것을 그대로 따르고 있어 농사 시기가 맞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장영실은 중국의 천문 기기를 연구하고 돌아와, 조선의 위도(북위 38도)와 환경에 맞는 자격루, 혼천의, 간의 등을 개발했다. 이는 외부의 지식을 내부화하여 기술 흡수 능력(Absorptive Capacity)을 극대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을 넘어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도약하는 과정이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세종은 장영실에게 충분한 연구 시간과 실패를 용인하는 환경을 제공했다. 혁신적인 R&D는 단기간에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
세종은 장영실이 수없는 시행착오를 겪는 동안 그를 보호하고 기다려주었다. 이는 현대 경영학에서 강조하는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하버드대의 에이미 에드먼드슨 교수가 정의한 심리적 안전감은 구성원이 비난에 대한 두려움 없이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실험할 수 있는 환경을 말한다. 세종은 장영실에게 “네가 아니면 이 일을 해낼 사람이 없다”는 강력한 임파워먼트(Empowerment)를 통해 그가 가진 역량의 120%를 끌어냈다. 이는 리더의 신뢰가 어떻게 평범한 개인을 비범한 혁신가로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다.
3. 사일로(Silo) 파괴와 오픈 이노베이션: 문과와 이과의 융합
장영실의 위대한 발명품들은 그 혼자만의 천재성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세종은 문과 출신의 엘리트 집단인 집현전 학자들과 기술직인 장영실이 협업하도록 크로스 펑셔널 팀(Cross-Functional Team, CFT)을 구성했다. 이천, 김빈, 이순지 등 당대 최고의 이론가들이 천문학적 이론(Software)을 제공하고, 장영실이 이를 기계적으로 구현(Hardware)하는 구조였다.
당시 조선 사회는 ‘사농공상’의 위계가 뚜렷하여 사대부가 기술자와 머리를 맞대고 토론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세종은 프로젝트 단위로 조직을 운영하며 이러한 사일로(Silo, 부서 간 장벽)를 강제로 허물었다. 이는 현대 기업에서 마케팅 부서와 개발 부서, 혹은 기획자와 엔지니어 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하나의 목표를 향해 협력하게 만드는 애자일(Agile) 조직 운영 방식과 매우 흡사하다.
이러한 이질적인 집단의 결합은 서로 다른 관점과 전문성이 충돌하고 융합하는 과정에서 폭발적인 혁신이 일어난다는 메디치 효과(Medici Effect)를 역사적으로 증명했다. 세종은 회의를 주재할 때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자유로운 토론(Brainstorming)을 유도했다. 장영실이 기술적 난관에 봉착했을 때 이론가들이 수학적 해법을 제시하고, 이론가들의 추상적인 구상을 장영실이 실체화하는 과정은 현대의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 플랫폼과 다를 바가 없었다.
세종은 이 협업 시스템의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로서 갈등을 조정하고 목표를 일치시키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는 리더가 단순히 명령을 내리는 존재가 아니라, 조직 내 집단지성을 조율하는 지휘자여야 함을 시사한다. 세종은 '갑인자' 등 금속활자 개발 프로젝트에서도 이천과 장영실을 함께 투입하여 생산성 혁신을 이루어냈다. 이는 오늘날 제조 기업이 연구소와 생산 현장을 통합하여 수율(Yield)을 높이는 전략과 정확히 일치한다.
4. 애민(愛民) 정신과 UX(사용자 경험) 디자인: 고객 중심 경영의 실천
세종과 장영실의 협업이 만들어낸 결과물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앙부일구(해시계)다.
기존의 물시계나 천문 기구는 궁궐 내부에 있어 백성들이 볼 수 없었고, 한자로 되어 있어 읽을 수도 없었다. 세종은 장영실에게 "백성들이 시간을 알게 하라"는 미션을 주었다. 이에 장영실은 앙부일구에 12지신(쥐, 소, 호랑이 등) 그림을 그려 넣어 글을 모르는 백성들도 쉽게 시간을 확인할 수 있게 설계했고, 이를 서울의 번화가인 종로 혜정교 앞에 설치했다.
이 사례는 현대 경영학의 핵심인 고객 집착(Customer Obsession)과 UX(User Experience, 사용자 경험) 디자인의 완벽한 예시다.
제품(해시계)을 만드는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그 제품을 실제로 사용할 최종 사용자(End User)인 백성의 니즈와 문해력 수준을 고려하여 인터페이스(Interface)를 설계한 것이다. 세종은 기술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 않았다.
기술은 사람을 이롭게 하는 도구여야 한다는 확고한 목적 중심 경영(Purpose-Driven Management) 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오늘날 ESG 경영이나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강조하는 '사회적 가치 창출'을 세종은 이미 600년 전에 '애민 정신'이라는 이름으로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5. 신상필벌과 책임 경영: 시스템의 권위와 공정성 확립
세종의 인재 경영에서 가장 드라마틱하면서도 냉정한 부분은 장영실의 퇴장이다.
세종 24년, 장영실이 감독하여 제작한 왕의 가마(안여)가 부서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장영실은 불경죄로 파면되고 곤장 80대를 맞은 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많은 이들이 이를 두고 세종의 변심이나 정치적 희생양이라고 해석하지만, 경영학적 관점에서는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원칙과 품질 경영(Quality Management)의 엄격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장영실은 당시 대호군이라는 고위직에 있었고, 해당 프로젝트의 총책임자(Project Manager)였다. 왕이 타는 가마의 파손은 단순한 기계적 결함이 아니라, 국가 원수의 안전(Safety)과 직결되는 중대한 리스크(Risk)이자 보안 사고였다. 아무리 과거에 뛰어난 성과를 냈던 핵심 인재(High Performer)라 할지라도, 결정적인 과실(Critical Failure)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는 것이 조직의 기강을 바로세우는 길이다.
만약 세종이 장영실을 총애한다는 이유로 이 사고를 묵인했다면, 조선의 법치와 관료 시스템의 공정성(Fairness)은 심각하게 훼손되었을 것이다. 이는 현대 기업의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이슈와 연결된다.
성과에 대해서는 파격적인 보상(Promotion & Reward)을 주되, 원칙 위반이나 안전 불감증, 도덕적 해이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Zero Tolerance)을 적용하는 것, 이것이 온정주의와 구별되는 진정한 프로페셔널리즘이다.
세종은 장영실 개인을 잃는 아픔을 감수하고서라도, ‘시스템’이라는 더 큰 가치를 지키는 선택을 한 것이다. 이는 리더가 사사로운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조직 전체의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을 위해 고독한 결단을 내려야 함을 보여준다.
결론: 초격차 리더십, 사람을 알아보고 시스템을 완성하다
세종대왕의 장영실 발탁 사례는 600년의 시차를 뛰어넘어 현대 경영에 강렬하고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세종은 ①신분이라는 견고한 장벽을 깨고 역량 중심의 채용을 감행했고(Recruitment), ②과감한 투자와 해외 연수로 인재를 육성했으며(Training), ③서로 다른 전문성을 가진 인재들을 융합하여 시너지를 창출했고, ④고객(백성) 중심의 UX를 설계했으며(Customer Focus), ⑤냉혹하리만큼 정확한 성과 평가와 책임 추궁으로 조직의 기강을 확립했다(Evaluation).
오늘날 우리는 AI가 인간의 지적 노동을 대체하고, 산업의 경계가 무너지는 ‘빅 블러(Big Blur)’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그 기술을 다루는 사람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혁신은 화려한 기술 이면에 있는 리더의 안목(Insight)과 결단(Decision Making)에서 시작된다. 당신의 조직에는 장영실과 같은 숨겨진 인재가 있는가? 그리고 당신은 그를 알아볼 눈과, 그를 반대하는 세력을 설득할 논리, 그리고 그가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할 인내심을 가지고 있는가?
진정한 초격차(Super Gap)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만들어내는 인재를 어떻게 발굴하고 운용하느냐는 경영 시스템에서 나온다.
세종은 자신이 가진 왕권(Authority)을 자신의 안위를 위해 쓰지 않고, 인재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거대한 운동장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 이것이 바로 세종이 우리에게 남긴 위대한 경영 유산(Legacy)이자, 미래의 리더들이 끊임없이 탐구해야 할 리더십의 교과서다.
이제 우리 기업들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제2의 장영실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니면 신분과 스펙이라는 낡은 잣대로 미래의 혁신가를 쫓아내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