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의 전경. [사진 = 코리아비즈니스리뷰 자료 사진]
매년 1월 초,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혁신가, 기업인, 저널리스트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바로 세계 최대 기술 박람회인 ‘CES’가 열리기 때문이다.
CES는 단순한 신제품 발표회를 넘어, 그해 전 세계 산업을 관통할 기술 트렌드를 가장 먼저 제시하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경영자에게는 생존 전략을, 투자자에게는 미래의 가치를, 일반 대중에게는 바뀔 삶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CES. 과연 이 거대한 행사는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오늘날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1. 용어의 정의와 기원: '소비자 가전'에서 '모든 기술'로
CES는 본래 ‘Consumer Electronics Show(소비자 가전 전시회)’의 약자로 출발했다. 미국소비자기술협회(CTA: Consumer Technology Association)가 주관하는 이 행사는 1967년 미국 뉴욕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초창기 CES는 이름 그대로 TV, 냉장고, 세탁기, 오디오 등 집안에서 사용하는 전자제품(가전)이 주류였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정보통신기술(ICT)의 급격한 발달로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빅 블러(Big Blur)’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CES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졌다.
※ 왜 이름이 그냥 'CES'가 되었나?
자동차가 '달리는 컴퓨터'가 되고, 로봇이 서빙을 하는 시대가 오면서 '소비자 가전(Consumer Electronics)'이라는 단어로는 더 이상 이 행사를 포괄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주관사인 CTA는 더 이상 ‘Consumer Electronics Show’라는 풀네임을 공식 명칭으로 쓰지 않고, ‘CES’라는 브랜드 자체를 행사 이름으로 사용한다고 천명했다. 이제 CES는 특정 품목이 아닌 AI, 모빌리티, 헬스케어, 우주 항공, 푸드테크 등 '지구상의 모든 혁신 기술'을 다루는 융합 전시회로 정의된다.
2. CES 1967~2026: 기술은 어떻게 진화했는가?
CES의 역사를 살펴보면 인류 라이프스타일의 변천사가 고스란히 보인다. CES는 당대 최고의 기술이 대중에게 각인되는 '데뷔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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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영상 혁명의 시작]: 1970년 CES에서 필립스가 가정용 VCR(N1500)을 선보이며 '안방 극장' 시대를 예고했다. 1974년에는 레이저디스크(LD)가 하이라이트로 소개되며 영상 저장 매체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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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90년대 [디지털의 태동]: 1981년 소니와 필립스가 CD(콤팩트 디스크) 플레이어를 선보이며 아날로그 음향 시대를 종식시켰다. 1996년에는 DVD가 등장했고, 1998년에는 고화질(HD) TV가 소개되며 디스플레이 전쟁의 서막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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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연결의 시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IT 거물들이 기조연설에 등장하며 PC와 가전의 연결, 인터넷 기반의 스마트 가전이 화두로 떠올랐다. PDP, LCD, OLED 등 TV 기술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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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이후 [융합과 모빌리티]: 스마트폰의 대중화 이후, 자동차 기업들이 대거 합류했다. 자율주행 기술이 소개되면서 언론과 업계에서는 CES를 '라스베이거스 모터쇼'라고 부를 정도로 모빌리티 비중이 커졌다. 최근에는 AI와 로봇이 전면으로 부상했다.
3. 트렌드의 변화: 가전 쇼에서 '솔루션 쇼'로
현재의 CES는 CTA와 업계가 강조하는 대로 '기술로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의 장'으로 인식되며, 일부에서는 이를 '미래 문명 쇼'라고 부르기도 한다.
① 모빌리티의 확장 (Mobility)
가장 극적인 변화는 자동차 산업의 침투다. 벤츠, BMW, 현대차 등 완성차 업체들은 이제 모터쇼 못지않게 CES를 중요하게 여긴다. 내연기관차를 넘어 전기차(EV),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 그리고 도심항공모빌리티(UAM)까지 등장하며 이동 수단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② AI와 초연결 (AI & Hyper-Connectivity)
인공지능(AI)은 이제 CES의 특정 테마가 아니라 공기처럼 모든 곳에 존재하는 기반 기술이 되었다. 최근 CES에서는 '생성형 AI'와 스스로 기기를 제어하는 '온디바이스 AI'가 가전, 자동차, 헬스케어 기기에 탑재되면서, 모든 사물이 지능을 갖는 세상이 구현되고 있다.
③ 인간 안보 (Human Security for All)
단순한 기술 과시를 넘어, 기술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고 있다. CES 2023에서는 UN 산하 기관 및 세계예술과학아카데미(WAAS)와 함께한 'Human Security for All(HS4A)'가 공식 메가 테마로 채택됐다. 이후 CTA는 이 캠페인을 통해 UN이 정의한 7대 인간 안보 축(경제·식량·건강·환경·개인·공동체·정치)에 '기술'을 8번째 축으로 더해, 이를 기술 혁신으로 개선하는 것을 CES의 핵심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다.
4. 한국 기업의 위상: 'K-스타트업 쇼케이스'로 진화
CES에서 대한민국 위상의 변화는 한국 경제 성장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해외 기업을 벤치마킹하던 한국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메인 홀인 '센트럴 홀(Central Hall)'의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며 주인공으로 등극했다.
특히 최근에는 스타트업의 약진이 눈부시다. 한국은 참가 기업 수 기준으로 세계 상위권을 꾸준히 유지하며, CES가 'K-스타트업 쇼케이스'로 불릴 만큼 존재감이 커졌다.
실제로 CES 2025에서는 전체 461개 혁신상 가운데 210개(약 45%)를, CES 2026에서는 수상 기업 284곳 중 168곳(약 59%)이 한국 기업으로 집계되면서, 혁신상 수 기준으로 3년 연속 세계 1위를 기록했다.
5. 기업과 사회에 주는 시사점: 왜 CES를 주목해야 하는가?
첫째, 산업 간 경계 붕괴의 목격이다.
경쟁자가 동종 업계에만 있다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소니가 전기차를 만들고, 화장품 회사 로레알이 뷰티 테크 기업을 선언하며, 농기계 회사 존디어(John Deere)가 자율주행 트랙터로 기조연설을 하는 곳이 CES다. 이종 산업 간의 융합을 이해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둘째, 기술의 '상용화' 가늠자다.
CES에서 주목받은 기술과 제품 상당수는 보통 1~3년 안에 상용화되어 소비자 시장에 등장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업인과 예비 창업자들에게 CES는 미래 소비자들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세상에서 살게 될지를 미리 가늠해보는 가장 확실한 예습 자료인 셈이다.
6. 결론: 기술, 결국 사람을 향하다
CTA가 내세우는 HS4A 캠페인과 최근 전시 트렌드를 종합하면, CES가 지향하는 기술의 방향은 궁극적으로 '인간 중심(Human-Centric)'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TV가 얇아지고, 자동차가 스스로 운전하고, 로봇이 집안일을 돕는 모든 혁신은 인간의 시간을 아껴주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함이다.
1967년의 흑백 TV부터 최신 AI 에이전트까지, CES는 끊임없이 "기술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왔다.
다가올 미래, CES는 또 어떤 놀라운 기술로 우리를 설득할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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