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버넌스(Governance)' 문구 위에 그어진 붉은색 X와 깨진 돋보기는 불투명한 의사결정 구조와 구성원의 신뢰 상실이 초래하는 기업 지배구조의 위기를 암시한다.
경영 환경의 패러다임이 비재무적 가치를 포함한 총체적 지속가능성으로 이동함에 따라, 글로벌 기업들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핵심 전략으로 내재화해 왔다.
2026년 현재, EU를 중심으로 기업 지속가능성 공시 지침(CSRD)과 공급망 실사 지침(CSDDD)이 단계적으로 시행되거나 시행을 앞두고 있으며, 미국과 일본 등 주요국 역시 ESG 공시 및 실사 요구를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글로벌 밸류체인에 연결된 중견 이상의 기업들에 ESG는 사실상 '생존을 위한 필수 요건'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나 화려한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의 이면에는 심각한 내부 진통이 존재한다.
최고경영진의 비전이 실무 현장의 언어로 번역되지 못하면서 발생하는 구성원들의 피로감과 냉소, 그리고 실무 현장의 강력한 반발은 기업 지배구조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새로운 리스크로 부상했다.
이번 ESG경영 인사이트에서는 ESG 경영이 내부 반발을 초래하는 근본 원인을 입체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기업 실무자용 실행 인사이트를 제시한다.
1. 성과 지표의 충돌: '이중 부담'에 직면한 실무진의 피로도
ESG 도입 과정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문제는 기존 핵심성과지표(KPI)와 ESG 목표가 상충하는 지점이다.
대다수 기업이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ESG를 도입하면서, 실무진에게는 기존의 매출 및 영업이익 목표가 그대로 유지된 채 탄소 배출량 감축이나 공급망 실사 대응이라는 추가적인 과업이 부여되는 경우가 많다.
여러 2024~2025년 글로벌 설문 조사에 따르면, "ESG 목표가 기존 KPI 달성에 부담이 된다"고 답한 중간관리자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결과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특히 제조 및 물류 현장에서는 생산성 최적화와 환경 규제 준수 사이에서 발생하는 물리적 시간과 비용의 충돌이 심각하다. 보상 체계의 혁신적인 변화 없이 과업만 늘어나는 구조는 구성원들에게 ESG를 전략적 기회가 아닌 '불필요한 행정 규제'로 인식하게 만든다.
또한, ESG 데이터 수집을 위한 행정적 부담은 실무자의 냉소를 부추긴다. 공급망 내 수많은 협력사의 데이터를 추적하고 인증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업무 과부하는 ESG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킨다.
내부 지지가 약한 ESG는 단기적으로 비용과 피로를 가중시키며, 이는 결국 핵심 인재의 이탈이나 조직 몰입도 저하라는 거버넌스 리스크로 직결된다.
2. 진정성 결여와 '내부적 그린워싱'에 대한 냉소
구성원들이 ESG에 반발하는 또 다른 이유는 '내부적 그린워싱(Internal Greenwashing)'이다. 기업이 외부적으로는 환경 보호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직장 내 괴롭힘, 불투명한 의사결정, 열악한 노동 환경을 방치할 경우 구성원들은 강력한 배신감을 느낀다.
일부 글로벌 기술 기업들이 기후 위기 대응에 막대한 투자를 발표하면서도 동시에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하거나 노조 설립을 억제하는 행보는 내부 직원들로부터 "기만적인 홍보 수단"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외부 이해관계자를 향한 화려한 메시지와 내부 구성원이 체감하는 경직된 조직 문화 사이의 괴리는 조직 충성도를 급격히 낮춘다. 내부 구성원은 기업의 가장 가까운 이해관계자이며, 이들이 신뢰하지 않는 ESG 전략은 외부 평가에서도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3. 글로벌 사례의 재해석: 유니레버와 다논의 교훈
ESG 경영의 선구자로 불리던 글로벌 기업들의 사례는 비전과 재무 성과, 그리고 거버넌스 간의 균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유니레버(Unilever)의 경우, 폴 폴먼 전 회장 시절부터 강력한 목적 경영을 추진했으나 테리 스미스(Terry Smith)를 비롯한 일부 주요 투자자들로부터 "지나치게 지속가능성 커뮤니케이션에 집착하여 비즈니스의 본질과 펀더멘털을 소홀히 했다"는 공개적인 비판을 받았다. 이후 실적과 주가 부진이 겹치면서 ESG 전략의 '현실적 조정' 요구가 커졌고, 실제로 유니레버는 2024년 4월 플라스틱 감축 등 일부 ESG 목표를 보다 현실적인 수준으로 롤백(Roll-back)하며 전략의 균형점을 재설정했다.
프랑스의 다논(Danone) 사례 역시 시사점이 크다.
에마뉘엘 파베르 전 회장은 기업 목적법 도입 등 급진적인 ESG 경영을 펼쳤으나, 팬데믹 이후의 실적 부진과 주가 하락, 의장과 CEO 겸임 구조에 대한 거버넌스 비판, 그리고 블루벨 캐피털(Bluebell Capital) 등 행동주의 펀드의 강력한 압박이 겹치며 해임되었다.
이는 ESG 자체가 해임의 직접적 원인이라기보다, 재무 성과와 거버넌스 논쟁이 ESG 전략과 결합하여 경영진의 입지를 약화시킨 사례로 분석된다. 즉, ESG는 재무적 타당성과 지배구조의 투명성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한다.
4. 국내 제조·서비스 현장의 경향과 갈등 양상
국내에서도 ESG 도입에 따른 내부 갈등은 구체적인 경향성을 띠며 나타나고 있다.
여러 제조 대기업 현장 인터뷰와 사례를 종합하면, ESG의 핵심 요소인 '안전 강화'가 현장 실무자들에게는 '과도한 감시'나 '업무 절차의 불필요한 복잡성'으로 받아들여지는 사례가 반복 보고되고 있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 대응을 위해 도입된 디지털 모니터링 시스템이 숙련공들의 전통적인 작업 방식과 충돌하며 현장 내 세대 갈등을 부추기기도 한다.
또한 IT 및 금융 업계를 중심으로 하는 MZ세대 직원들 사이에서는 "대외 기여금이나 사회 공헌(S) 지출은 늘리면서, 내부 구성원을 위한 보상이나 복지 체계 개선에는 왜 인색한가"라는 문제 제기가 잦아지고 있다. 사회적 책임을 외부 기부로만 한정 짓고 내부 구성원의 직무 만족도나 공정한 보상을 외면할 때 발생하는 전형적인 반발이다.
5. 실무자를 위한 실행 인사이트: 'ESG 얼라인먼트' 4단계
ESG 경영이 내부 저항을 뚫고 안착하기 위해 실무자들이 참고해야 할 구체적인 전략은 다음과 같다.
단계 1: ESG와 보상 체계의 실질적 통합
ESG 목표를 경영진뿐만 아니라 실무 부서의 고과에 반영하되, 이를 '업무 방식의 전환'으로 설계해야 한다. 구매 담당자에게 단순히 탄소 배출량 조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친환경 공급망 확보가 본인의 전문성을 높이고 성과급에 기여한다는 명확한 보상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단계 2: 참여형 거버넌스(Inclusive Governance) 구축
전략 수립 단계부터 현장 실무진을 참여시켜 실행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 현장에서 실현 불가능한 목표는 수치 조작이나 태업을 부를 뿐이다. 부서별 'ESG 앰배서더'를 임명해 상단의 비전이 현장의 언어로 번역되어 소통될 수 있는 체계를 상시화해야 한다.
단계 3: '내부 S'의 우선순위화
외부 공헌 이전에 직장 내 민주주의, 공정한 승진 체계, 다양성(D&I)을 강화하는 '내부 ESG'를 먼저 정립해야 한다. 구성원이 회사로부터 존중받고 있다고 느낄 때, 비로소 회사가 지향하는 외부적 가치에도 능동적으로 동참하게 된다.
단계 4: 재무 성과와의 연계성 증명
ESG 활동이 어떻게 비용을 절감하거나(에너지 효율화 등), 신규 시장 진입을 가능하게 하는지(친환경 제품군 확대)에 대한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유해야 한다. 명확한 인과관계의 제시는 내부 구성원들의 냉소를 확신으로 바꾸는 가장 강력한 도구다.
결론: 사람을 통한 지속가능성이 진정한 ESG다
ESG 경영은 단순히 외부 평가 지표를 관리하는 기술적 영역이 아니라, 기업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혁신 과정이다.
모든 혁신에는 저항이 따르지만, 그 저항의 원인이 불합리한 보상과 불투명한 의사결정에 있다면 이는 명백한 거버넌스의 실패다.
2026년의 경영 환경에서 진정한 ESG 선도 기업은 보고서의 화려함이 아니라, 그 비전에 동참하는 구성원들의 몰입도에서 판가름 난다.
내부 구성원의 신뢰를 얻지 못한 ESG는 결국 조직의 유무형적 비용을 높이는 리스크가 될 것이다.
경영진은 이제 밖을 향한 선언보다, 안을 향한 경청과 공정한 거버넌스 수립에 집중해야 한다. 결국 사람이 실행하지 않는 전략은 지속 가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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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경영의 내부적 실패와 거버넌스 리스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사진 = 코리아비즈니스리뷰 DB]](https://epzvqcvbpcduaglyoici.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news-images/legacy-cgi/2026/01/07/1767756258_11925.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