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기업들에게 '안전(Safety)'은 투자인가, 비용인가.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국내 주요 기업들은 앞다퉈 최고안전책임자(CSO)를 선임하고 관련 예산을 증액했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대기업의 안전관리비용은 매년 증가 추세다. 그러나 현장의 비극은 멈추지 않고 있다.
왜일까? 안타깝게도 많은 경영진이 안전을 ‘사고 발생 후 수습해야 할 법적 리스크(Compliance)’나 ‘비용(Cost)’으로만 인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로벌 ESG 선도 기업들에게 안전은 ‘생산성 혁신의 선행지표(Leading Indicator)’이자 ‘조직의 건전성을 증명하는 데이터’다.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현장에서의 품질 혁신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들은 역사를 통해 증명했다.
코리아비즈니스리뷰(KBR)는 이번 ESG경영 인사이트에서 알코아와 듀폰의 정밀한 데이터 분석, 하인리히를 넘어선 현대적 사고 이론, 그리고 삼성물산 등 국내 기업의 최신 사례를 통해 실무자가 즉시 적용해야 할 글로벌 안전경영의 표준을 제시한다.
1. 안전을 ‘핵심 습관(Keystone Habit)’으로 설계하라: 알코아(Alcoa)의 270억 달러 신화
안전경영의 가장 드라마틱한 성공 사례인 미국 알루미늄 기업 알코아(Alcoa)의 폴 오닐(Paul O’Neill) CEO 시절(1987~2000)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당시 알코아는 저가 공세와 노사 갈등으로 위기에 처해 있었다. 취임 첫 주주총회에서 폴 오닐은 경영 수치 대신 안전을 꺼내 들었다.
저는 여러분에게 매출이나 수익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저의 목표는 알코아를 미국에서 가장 안전한 기업으로 만드는 것입니다.만약 안전에 대해 저와 생각이 다르다면, 지금 당장 주식을 파십시오.”
투자자들은 혼란에 빠졌지만, 이는 단순한 휴머니즘이 아니었다. 폴 오닐은 “안전사고 발생 시 24시간 내에 해결책을 포함해 CEO에게 직보하라”는 원칙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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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 속도의 혁신 말단 현장에서 CEO까지 24시간 내에 정보가 도달하려면, 중간 관리층의 관료주의가 사라져야 했다. 안전 보고를 위해 뚫린 ‘고속도로’는 곧 생산 공정의 문제점을 즉각적으로 공유하는 채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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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적 성과 찰스 두히그(Charles Duhigg)가 저서 <습관의 힘>에서 분석했듯, 안전이라는 ‘핵심 습관(Keystone Habit)’은 공정 개선과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그의 재임 기간 알코아의 시가총액은 30억 달러에서 270억 달러로 약 9배 증가했고, 순이익은 5배 상승했다.
[Insight]
안전 지표가 개선되지 않는 조직은 원가 경쟁력도 개선될 수 없다. 경영자는 안전을 방어적 수단이 아닌, 기업 가치 상승을 위한 공격적 전략으로 재정의해야 한다.
2. ‘의존’에서 ‘상호의존’으로: 듀폰(DuPont)의 브래들리 커브와 한국의 현주소
200년 넘게 화약을 다뤄온 듀폰(DuPont)은 1995년, 안전 문화 성숙도를 측정하는 ‘브래들리 커브(Bradley Curve)’ 모델을 개발했다. 이 모델은 조직의 안전 문화를 4단계로 구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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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능적 단계(Reactive): 운에 맡기며, 사고가 나면 그때 수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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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의존적 단계(Dependent): 관리자의 감독, 규정, 처벌이 무서워서 안전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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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독립적 단계(Independent): 개인 스스로 안전의 가치를 알고 규정을 준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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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상호의존적 단계(Interdependent): “동료가 다치게 놔두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팀 단위로 위험을 예방한다.
[국내 현황 진단]
국내 산업안전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제조·건설 현장 다수는 여전히 1~2단계(본능적~의존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CCTV 감시와 처벌 위주의 정책은 전형적인 ‘의존적 단계’의 특징이다.
반면, POSCO 등 일부 선도 기업은 브래들리 커브를 도입해 조직 문화를 진단하고 ‘상호의존적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로드맵을 실행 중이다. 진정한 무재해는 시스템 감시가 아닌, 동료 간의 상호 케어(Mutual Care)에서 완성된다.
3. 하인리히를 넘어선 통찰: 버드(Bird)의 법칙과 ‘심리적 안전감’
우리는 흔히 1건의 중대재해 뒤에 300건의 징후가 있다는 ‘하인리히의 법칙(1:29:300)’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현대 안전 관리에서는 이를 더욱 세분화한 프랭크 버드(Frank Bird)의 법칙(1:10:30:600)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버드는 인명 피해뿐만 아니라 물적 손실(Property Damage)까지 포함하여, 1건의 중상해 이전에 600건의 위험한 행동과 상태(Near Miss 포함)가 존재함을 통계적으로 입증했다.
문제는 이 300건 혹은 600건의 ‘사소한 징후’를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이다. 여기서 하버드대 에이미 에드먼드슨 교수의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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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Google)의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젝트 구글은 고성과 팀의 공통점 1위로 ‘심리적 안전감’을 꼽았다. 이는 비록 사무직 중심의 연구였으나, 생산 현장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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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잉(Boeing) 737 MAX의 교훈 보잉 사태의 조사 과정에서 엔지니어들이 경영진의 압박과 불이익을 우려해 안전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던 경직된 문화가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었다.
현장에서 작업자가 “이 기계 소리가 이상하다”고 보고했을 때, “쓸데없는 소리 말고 작업해”라는 핀잔을 듣는다면 그 조직의 안전망은 붕괴된 것이다. 사소한 위험을 보고해도 비난받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어야 잠재 위험이 수면 위로 드러난다.
4. 국내외 기업의 데이터 기반 대응 전략
ESG 경영의 고도화에 따라 안전 관리는 경험칙에서 데이터 과학으로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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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행지표(Lagging)에서 선행지표(Leading)로 LTIFR(근로손실재해율) 같은 사고 건수 위주의 후행지표는 사고 은폐(Under-reporting)를 유발할 수 있다. 이에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KOSHA)과 선진 기업들은 ‘아차 사고 신고 건수’, ‘안전 교육 이수율’, ‘위험성 평가 개선율’ 등 예방 활동을 측정하는 선행지표 관리를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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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Samsung C&T)의 시스템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안전 상황실’을 운영하며 현장의 CCTV와 데이터를 통합 관제하고, ‘안전 아카데미’를 통해 임직원의 안전 역량을 체계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감시를 넘어 데이터를 통한 위험 예측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시도다.
5. 실무자를 위한 실행 인사이트 (Actionable Insights)
KBR경영연구소는 글로벌 표준과 국내 실정을 고려해 다음 3가지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제안한다.
① KPI의 대전환: 결과보다 과정에 보상하라
사고가 ‘0건’인 부서에 상을 주는 방식은 위험하다. 사고를 숨길 유인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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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on: 평가 기준을 바꿔야 한다. ‘잠재 위험을 얼마나 많이 발굴했는가?’, ‘아차 사고를 자발적으로 신고했는가?’를 핵심성과지표(KPI)로 설정하라. 사고를 예방하는 활동(Process) 자체에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한다.
② 리더십의 변화: ‘지적’하지 말고 ‘질문’하라
경영진의 현장 방문(Safety Walk)이 지적 위주라면 그것은 2단계(의존적)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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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on: 경영진은 현장에서 “작업 중 가장 위험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 “회사가 무엇을 지원하면 더 안전하겠는가?”를 질문하는 경청 투어를 진행해야 한다. 이것이 심리적 안전감의 시작이다.
③ ‘작업 중지권(Stop Work Authority)’의 실질적 영웅화
쉘(Shell) 등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은 위험을 감지하고 작업을 중지시킨 직원을 ‘안전 영웅(Safety Hero)’으로 대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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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on: 국내 기업들도 제도적으로는 작업 중지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실효성을 높이려면, 작업 중지로 인한 손실을 문책하지 않고, 오히려 위험을 사전에 차단한 공로를 인정해 즉각적인 포상(Reward)을 실시해야 한다. 이는 조직 전체에 “생산보다 안전이 우선”이라는 강력한 시그널을 준다.
결론: 안전은 타협할 수 없는 경영의 존엄
안전경영의 실패는 단순히 벌금을 무는 문제가 아니다.
기업의 평판을 파괴하고, 우수 인재를 떠나게 하며, 궁극적으로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한다. 알코아의 폴 오닐이 증명했듯,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가장 확실한 수익 모델이다.
이제 대한민국 기업들도 ‘법을 지키기 위한 안전’에서 ‘사람을 지키고 성과를 창출하는 안전’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그 시작은 경영자가 30억 달러가 아닌 270억 달러의 미래를 보고, 현장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에서부터다.

![안전 프로토콜의 중요성 촘촘하게 배치된 안전 펜스와 장비들은 사고 발생 후의 수습이 아닌, 잠재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는 예방 중심의 안전 프로세스를 보여준다. [이미지 = 코리아비즈니스리뷰 DB]](https://epzvqcvbpcduaglyoici.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news-images/legacy-cgi/2025/12/19/1766104573_18244.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