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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워싱의 역설, 이제는 ‘그린 허싱(Green Hushing)’을 경계하라: 침묵이 답이 아닌 이유

그린워싱 규제와 소송 리스크로 인해 기업들이 환경 성과를 의도적으로 숨기는 ‘그린 허싱(Green Hushing)’ 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 자물쇠로 굳게 잠긴 채 식물이 얽혀 있는 모습은 침묵을 강요받는 기업들의 현실을 암시한다.

김민경 기자입력 2025년 12월 16일수정 2026년 5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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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워싱의 역설, 이제는 ‘그린 허싱(Green Hushing)’을 경계하라: 침묵이 답이 아닌 이유

그린워싱 규제와 소송 리스크로 인해 기업들이 환경 성과를 의도적으로 숨기는 ‘그린 허싱(Green Hushing)’ 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 자물쇠로 굳게 잠긴 채 식물이 얽혀 있는 모습은 침묵을 강요받는 기업들의 현실을 암시한다.

그린워싱 규제와 소송 리스크로 인해 기업들이 환경 성과를 의도적으로 숨기는 ‘그린 허싱(Green Hushing)’ 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

자물쇠로 굳게 잠긴 채 식물이 얽혀 있는 모습은 침묵을 강요받는 기업들의 현실을 암시한다. [이미지 = 코리아비즈니스리뷰 DB]

ESG 경영이 ‘선언’의 시대를 지나 ‘검증’의 시대로 진입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기업들은 “2050 넷제로 달성”이라는 장밋빛 목표를 앞다퉈 발표했다. 하지만 2024년과 2025년을 기점으로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졌다.

EU의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과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의 IFRS S2(기후 관련 공시), 그리고 EU ‘그린 클레임 지침(Green Claims Directive)’ 등 일련의 규제 패키지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기후 공시의 범위와 정밀도를 크게 끌어올리고 있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의 법적 리스크와 소송 가능성을 우려해, 기후 목표를 수립하고도 이를 외부에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는 ‘그린 허싱(Green Hushing, 친환경 침묵)’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스위스 기후 컨설팅 기업 사우스폴(South Pole)의 ‘2024 Net Zero Report’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12개국 14개 섹터 1,400여 개 기업 중 상당수가 기후 목표를 대외적으로 홍보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침묵은 지속가능한 전략이 될 수 없다. 글로벌 자본시장은 ‘조용한 기업’을 ‘리스크를 관리하지 않거나 숨기는 기업’으로 간주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이번 ESG경영 인사이트에서는 최근 판례와 데이터 분석을 통해 그린 허싱의 위험성을 진단하고, 침묵 대신 ‘데이터 기반의 이행 계획(Transition Plan)’으로 시장의 신뢰를 확보한 글로벌 선도 사례를 통해 실무적 해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1. 마케팅의 실패: 법정으로 간 ‘친환경 이미지’ (KLM 사례 재분석)


과거의 ESG가 브랜드실(Brand Dept)의 영역이었다면, 현재의 ESG는 법무팀(Legal)과 재무팀(Finance)의 영역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이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네덜란드 항공사 KLM의 ‘Fly Responsibly’ 소송이다.

2024년 3월, 암스테르담 지방법원은 KLM의 ‘Fly Responsibly’ 캠페인 중 다수 표현이 소비자를 오도하는 그린워싱(허위·과장 광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KLM은 “책임감 있는 비행”이라는 슬로건 하에 탄소 상쇄 프로그램과 바이오 연료 사용을 홍보했으나, 법원의 판단은 엄격했다.

법원은 현재의 항공 기술과 연료 구조를 감안할 때, 비행을 ‘지속가능한(Sustainable)’ 활동으로 묘사하는 것은 소비자에게 지나치게 낙관적인 인상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 판결은 ▲‘지속가능한’과 같이 추상적이고 절대적인 인상을 주는 용어의 무분별한 사용 ▲소규모 SAF(지속가능 항공연료) 혼합이나 상쇄 상품 가입만으로 ‘비행의 환경 영향이 상쇄된다’고 암시하는 표현이 소비자 오인 소지가 크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는 기업이 마케팅적 수사로 포장된 ESG를 내세울 경우, 이제는 소비자법상 허용되지 않거나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기업들이 입을 닫는 ‘그린 허싱’으로 도피하는 배경에는 이러한 사법적 리스크가 자리 잡고 있다.

2. 침묵의 확산과 위험: 사우스폴(South Pole) 리포트 분석


규제와 소송이 두려워 정보를 숨기는 현상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앞서 언급한 사우스폴(South Pole)의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응답 기업의 약 4분의 1 수준이 과학기반 감축목표(SBTi) 등 기후 목표를 세우고도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는다고 답했다.

보고서는 규제 강화, 그린워싱 소송 리스크, 그리고 아직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데이터에 대한 우려가 기업들로 하여금 ‘가시성을 낮추는 전략’을 택하게 만드는 주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즉, "말했다가 책 잡히느니, 차라리 조용히 있자"는 기조가 형성된 것이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이러한 ‘그린 허싱’이 단기적으로는 리스크 회피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정보 비대칭을 초래하고 투자자와 소비자로부터의 신뢰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투명성이 핵심인 ESG 생태계에서 '정보의 부재'는 곧 '성과의 부재'로 해석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3. 침묵을 깬 혁신: 슈나이더 일렉트릭의 ‘공급망 넷제로’ 전략


규제 리스크를 우려해 커뮤니케이션을 축소하는 기업들과 달리, 데이터를 무기로 적극적인 소통에 나선 사례도 있다. 글로벌 에너지 관리 기업 슈나이더 일렉트릭(Schneider Electric)이다. 이들은 선언적 구호 대신 협력사와 함께하는 구체적인 행동 모델을 제시했다.'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자사 전체 탄소 배출의 약 70%를 차지하는 상위 1,000개 공급업체와 파트너십을 맺고,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이들 사업장의 직접 배출량(Scope 1·2)을 50% 감축하는 ‘제로 카본 프로젝트(Zero Carbon Project)’를 가동했다.  

  • 상생형 동반 감축: 단순히 감축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슈나이더는 디지털 측정 툴을 제공해 협력사가 배출량을 정량화하도록 돕고, 에너지 효율화 및 재생에너지 전환 솔루션, 전문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협력사의 감축 역량을 키우고 있다.  

  • 데이터의 투명성: 이 프로그램의 성과는 슈나이더의 연간 지속가능성 보고서와 웹사이트를 통해 구체적인 톤수(tCO2eq) 기준으로 공개되며, 제3자 검증을 병행해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

이처럼 구체적 데이터와 공급망 동반 감축 모델은 이후 여러 글로벌 제조 기업의 Scope 3 전략 벤치마크로 자주 인용되고 있다. 이는 "우리는 친환경적이다"라는 형용사 대신, "우리는 협력사와 함께 정확히 얼마만큼의 탄소를 줄이고 있다"는 숫자로 소통하는 것이 현시점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임을 증명한다.

4. 국내 기업을 위한 실행 인사이트: 목표(Target)보다 이행(Transition)


한국 기업들, 특히 배터리, 반도체, 철강 등 수출 제조 기업들은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고객사의 RE100 이행 요구라는 현실적 압박에 직면해 있다.

실무자들은 "완벽한 데이터가 없어 공개가 두렵다"고 호소하지만, 글로벌 기준은 ‘완벽한 데이터’보다 ‘투명한 방법론과 계획’을 요구하고 있다.

실무자가 당장 적용해야 할 핵심 전략은 다음과 같다.

① ‘Transition Plan(이행 계획)’ 공시의 고도화

투자자들은 단순히 ‘2030년 몇 % 감축’과 같은 선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본다.

IFRS S2는 기업이 기후 관련 리스크와 기회에 대응하기 위해 어떤 전략과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자본 배치(CAPEX, R&D 예산 등)를 어떻게 계획하고 있는지 통합적으로 공시하도록 요구한다. 즉, 목표 달성을 위한 '돈의 흐름'을 보여줘야 한다.

② 1차 데이터(Primary Data) 및 LCA 체계 구축

LCA(전 과정 평가)는 원재료 채굴부터 생산, 사용, 폐기 및 재활용까지 제품 전 생애 단계에서 발생하는 환경 영향을 정량화하는 방법론으로, EU 규제와 글로벌 고객사의 요구에서 사실상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배출량 산정 시 추정치(Spend-based) 의존도를 낮추고, 현장에서 측정된 데이터(Activity-based) 비중을 높여 나가는 것이 그린워싱 시비를 차단하는 가장 강력한 방패다.

③ ‘내부 탄소 가격(ICP)’ 도입 및 활용

내부 탄소 가격(Internal Carbon Pricing)은 톤당 탄소 가격을 내부적으로 설정해 투자나 설비 교체 의사결정에 비용으로 반영하는 제도다. 이는 글로벌 기업들이 기후 리스크를 재무 언어로 전환하여 경영에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유효한 도구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결론: ESG는 이제 CFO의 책상 위에 있다


그린워싱 규제 강화와 그린 허싱의 확산은 ESG가 단순한 ‘홍보(PR)’의 영역에서 벗어나, 기업의 생존을 결정짓는 ‘전략(Strategy)’과 ‘재무(Finance)’의 중요한 의사결정 축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침묵하는 기업은 당장의 비판은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시장의 신뢰를 얻기는 어렵다. 반면,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라도 현재의 진척도와 한계를 솔직하게 공개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자본 투자 계획(Transition Plan)을 제시하는 기업은 ‘신뢰 자본’을 축적할 것이다.

이제 실무자는 화려한 수식어가 담긴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대신, 엑셀 시트와 재무제표를 들고 경영진을 설득해야 한다. “진정성은 형용사가 아니라 숫자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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