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비전과 실제 업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치열한 전략 회의 모습.
리더는 관성을 타파하고 목적 중심의 조직 문화를 구축하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하며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사진 = 코리아비즈니스리뷰 DB]
“당신의 조직은 전략적 의도에 따라 움직이는가, 아니면 관성적 업무가 전략을 잠식하고 있는가?”
프랑스의 시인이자 사상가인 폴 발레리(Paul Valéry)는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다.
이 통찰은 개인의 삶을 넘어, 거대한 조직을 이끄는 현대 경영의 현장에도 날카로운 화두를 던진다. 오늘날 수많은 기업이 ‘혁신’과 ‘변화’를 외치지만, 실제 조직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명확한 철학 없이 관성에 떠밀려 하루하루의 업무를 처리(Processing)하는 데 급급한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인공지능(AI)의 대두와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 등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극대화된 2025년의 시점에서, CEO와 리더들이 자문해야 할 가장 본질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 조직은 우리가 설정한 비전과 전략대로 일하고 있는가, 아니면 매일 반복되는 업무의 관성에 젖어 우리의 생각을 끼워 맞추고 있는가?”
이번 아티클에서는, ‘생각하는 대로 일하는 조직’과 ‘일하는 대로 생각하는 조직’의 결정적 차이를 심층 분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경영진이 취해야 할 실질적인 리더십 전략과 실행 가이드를 제시하고자 한다.
1. 비전의 상실과 ‘활동의 덫(Activity Trap)’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일찍이 ‘올바른 일을 하는 것(Doing the right things)’과 ‘일을 올바르게 하는 것(Doing things right)’을 엄격히 구분하며, 목적 없이 바쁜 조직의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다.
그는 이를 ‘활동의 덫(Activity Trap)’이라 불렀는데, 이는 조직이 비대해지고 내부 프로세스가 복잡해지면서 점차 ‘왜(Why)’ 이 일을 하는지는 잊은 채 ‘어떻게(How)’ 할 것인가에만 매몰되는 현상을 지칭한다.
초기 스타트업 단계에서는 모든 구성원이 생존과 성장을 위해 목표에 집중하지만, 조직이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면 상황은 달라진다. 절차가 목적을 대체하고, 수단이 목표보다 중요해지는 전도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실제로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 맥킨지(McKinsey), 갤럽(Gallup) 등 주요 글로벌 기관의 조직 진단 연구들을 종합해 보면, 구성원의 상당수가 회사의 장기적인 전략 목표와 자신의 일상 업무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명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결과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이와 관련하여 가장 주목해야 할 데이터는 갤럽의 2024년 '글로벌 직장인 현황 보고서(State of the Global Workplace)'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직원 중 업무에 완전히 '몰입(Engaged)' 상태로 분류되는 비율은 약 23% 수준에 머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역설적으로 조직 내 나머지 대다수의 직원은 회사의 비전에 열정적으로 동참하기보다는, 단순히 출퇴근하며 주어진 과업을 수동적으로 이행하는 '비몰입' 혹은 '적극적 비몰입' 상태에 놓여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면 조직은 필연적으로 ‘일하는 대로 생각하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
비효율적인 관행이나 불필요한 절차가 있어도 “원래 우리 회사는 10년째 이렇게 해왔다”라는 논리로 합리화하며, 전략적 사고 대신 기계적인 업무 처리가 조직의 집단지성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시장 변화에 대한 조직 차원의 둔감함(Insensitivity)과 혁신 동력의 상실로 이어질 위험을 높인다.
2. 이론적 배경: 왜 조직은 관성의 노예가 되는가?
그렇다면 왜 유능한 인재들이 모인 조직이 이러한 함정에 빠지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영학과 심리학의 두 가지 핵심 이론, 즉 ‘활동적 타성’과 ‘인지 부조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① 활동적 타성 (Active Inertia): 멸망을 부르는 부지런함
런던비즈니스스쿨의 도널드 설(Donald Sull) 교수는 HBR 기고를 통해, 급격한 환경 변화 속에서도 기업이 몰락하는 주된 원인을 ‘활동적 타성(Active Inertia)’이라고 명명했다. 이는 조직이 위기에 처했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성공을 가져다준 전략, 조직 형태, 프로세스에 집착한 채 ‘더 열심히’ 기존 방식을 반복하는 현상을 말한다.
코닥(Kodak)이나 노키아(Nokia)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기술력이 부족해서 망한 것이 아니다. 코닥은 1975년에 이미 디지털카메라를 발명했고, 노키아 역시 스마트폰의 초기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기존 필름 사업과 피처폰 시장에서의 압도적인 성공 공식(Working)이 조직의 사고(Thinking)를 지배하도록 방치했다. "우리는 필름 회사다", "사람들은 튼튼한 폰을 원한다"라는 고정관념이 새로운 기회를 억누른 것이다. 즉, ‘아무것도 안 하는 정지 상태’가 아니라, 잘못된 방향으로 가속페달을 밟는 상태가 거대 기업을 위기로 몰아넣었다는 통찰이다.
② 인지 부조화 (Cognitive Dissonance): 행동이 생각을 조작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지 부조화 이론 역시 이 현상을 뒷받침한다. 사람은 자신의 행동과 신념이 일치하지 않을 때 심리적 불편함을 느낀다. 이때 이미 굳어진 행동(관행적 업무)을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렵고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다. 따라서 구성원들은 무의식적으로 행동을 바꾸는 대신, 자신의 신념이나 생각을 바꾸어 현재 방식을 합리화하는 길을 택한다.
"이 보고서는 비효율적이지만, 윗분들이 좋아하시니 전략적으로 중요한 거야", "지금 시장이 안 좋은 건 우리 제품 문제가 아니라 경기 탓이야"라고 믿어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일하는 방식'이 '사고하는 방식'을 잠식해 들어가는 과정이 반복되면, 조직은 자정 능력을 잃고 집단적 확증 편향에 빠지게 된다.
3. 비교 분석: 목적 지향적 조직 vs 관성 의존적 조직
‘생각하는 대로 일하는 조직’과 ‘일하는 대로 생각하는 조직’은 리더십, 의사결정, 성과관리의 세 가지 차원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첫째, 의사결정의 기점(Starting Point)이 다르다.
‘생각하는 대로 일하는 조직’은 모든 업무의 시작점에 ‘목적(Purpose)’과 ‘고객(Customer)’이 존재한다.
아마존(Amazon)이 신제품이나 서비스 기획 시 활용해온 대표적 방법론인 ‘워킹 백워드(Working Backwards)’가 좋은 예다. 이들은 제품을 개발하기 전, 고객에게 전달될 보도자료를 먼저 작성하며 최종적인 가치를 정의한 후 실행에 옮긴다. 이 과정에서 구성원들은 끊임없이 “이 일이 우리의 비전과 부합하는가?”를 질문한다. 실패가 발생하더라도 이를 전략적 수정의 기회로 삼는 유연성을 가진다.
반면 ‘일하는 대로 생각하는 조직’은 ‘절차(Process)’가 목적을 압도하는 경향이 있다. 회의 시간의 대부분은 “왜 이 일을 하는가”에 대한 본질적 토론보다는 “언제까지 마칠 수 있는가”, “누구의 결재를 받아야 하는가”,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가”와 같은 절차적 논의로 채워진다.
둘째, 성과에 대한 정의가 다르다.
전자는 성과를 ‘가치의 창출(Outcome)’로 정의하지만, 후자는 성과를 ‘활동의 양(Output)’으로 정의한다. 관성적인 조직에서는 보고서의 두께, 회의 횟수, 야근 시간 등이 성실성의 지표로 오인된다.
셋째, 위기 대응 방식이 다르다.
시장이 변할 때 목적 지향적 조직은 ‘방법(How)’을 바꾼다. 목표는 유지하되 유연하게 피벗(Pivot)한다. 하지만 관성 의존적 조직은 ‘목표(Goal)’를 낮추거나 합리화하면서 방법은 고수한다. “이번 분기는 상황이 특수했으니 목표를 조정하자”며 기존에 하던 방식은 건드리지 않는 식이다.
4. 리더의 착각과 ‘전략적 게으름’의 경계
많은 CEO가 범하는 오류 중 하나는 사무실의 불이 늦게까지 켜져 있고, 보고서가 제때 올라오면 조직이 잘 돌아가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경영진은 ‘물리적 분주함’과 ‘전략적 성과’를 철저히 구분해야 한다.
주요 경영 저널의 연구들에 따르면, 관리자들은 종종 직원의 물리적 노출 시간이나 가시적인 활동량을 성실성의 척도로 삼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단순히 바쁜 것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등에서 지적한 ‘전략적 게으름(Strategic Laziness)’의 또 다른 형태일 수 있다.
깊이 있는 사고와 고통스러운 전략적 고민을 회피하기 위해, 익숙하고 쉬운 잡무(Busywork)에 몰두하는 현상이 조직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또한, ‘일하는 대로 생각하는 조직’에서는 성과 지표(KPI)가 목표 달성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평가를 잘 받기 위한 숫자로 전락하기도 한다. 영국의 경제학자 찰스 굿하트가 말한 "어떤 지표가 목표가 되는 순간, 그 지표는 좋은 지표가 되기를 멈춘다(Goodhart’s Law)"는 법칙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단기 매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브랜드 가치를 훼손하는 밀어내기 영업을 하거나, 예산을 소진하기 위해 불필요한 연말 지출을 감행하는 행태는 조직의 철학이 업무 관행에 의해 지배당한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5. 미래 시나리오: 당신의 조직은 어디로 갈 것인가
이러한 차이가 3년, 5년 누적되었을 때 조직의 운명은 어떻게 갈라질까. 여기 두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시나리오 A: 생각하는 대로 일하는 조직]
시장 환경이 급변하여 주력 상품의 매출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 조직의 팀장은 즉시 주간 회의에서 “우리의 핵심 가치는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지, 이 특정 제품을 판매하는 것 자체가 아니다”라고 선언한다.
구성원들은 기존의 판매 매뉴얼과 KPI를 과감히 수정하고, 고객의 새로운 니즈를 파악하여 서비스 모델로 피벗을 시도한다. 초기에는 혼란이 있었으나, 전사적인 비전 공유를 통해 부서 간 장벽(Silo)을 허물고 빠르게 신규 시장에 안착한다. 이들은 ‘계획’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기획 의도’를 따른다.
[시나리오 B: 일하는 대로 생각하는 조직]
동일한 위기가 닥쳤다. 경영진은 위기감을 느끼지만, 실무 부서는 “매뉴얼대로 했는데 시장 상황이 안 좋다”며 외부 요인을 탓한다.
매출을 메우기 위해 기존 고객에게 더 강도 높은 프로모션 전화를 돌리며(기존 방식의 강화) 오히려 브랜드 이미지를 소모한다.
회의에서는 “전년 대비 활동량을 20% 늘리라”는 지시만 내려온다. 구성원들은 “위에서 시키니까 어쩔 수 없다”며 무기력하게 야근을 반복한다. 이런 패턴이 반복되면, 조직은 서서히 활력을 잃고 시장에서 점진적으로 입지를 상실하거나, 뒤늦은 구조조정 같은 타의적 변화에 떠밀릴 위험이 커진다.
6. 경영 전략 제언: 관성을 깨고 의도를 심는 3단계 로드맵
CEO와 리더가 조직을 시나리오 A로 이끌기 위해서는 단순히 "생각하며 일하라"고 구호를 외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시스템과 문화를 뜯어고치는 구체적인 실행 전략이 필요하다.
Step 1. 뺄셈의 경영: ‘그만두기(Stop doing)’ 리스트 공식화
전략의 본질은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있다. ‘일하는 대로 생각하는’ 관성을 끊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보고서, 의례적인 회의, 관행적인 절차를 선별해 강제로 중단시켜야 한다.
[실천 가이드] 매 분기 '업무 폐기 회의'를 주재하라. 팀별로 "성과 창출에 기여하지 않지만 관행적으로 하는 일"을 3가지씩 가져오게 하여 즉시 폐기하거나 간소화하라. 확보된 시간은 전략적 사고에 투자하도록 독려해야 한다. 구글이나 3M이 한때 시행했던 ‘20% 룰’처럼, 근무 시간의 일부를 창의적 사고를 위한 ‘의도된 공백’으로 활용하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Step 2. 평가 혁신: ‘산출물(Output)’에서 ‘결과(Outcome)’로 이동
몇 개의 보고서를 썼는지, 몇 건의 미팅을 했는지는 과정일 뿐이다. 그 행동이 실제로 고객 가치를 창출했는지, 조직의 목표에 기여했는지를 물어야 한다.
[실천 가이드] 목표 핵심 결과(OKR) 방식을 도입하거나 재점검하라. 리더는 지시할 때 구체적인 방법(How)을 통제하기보다, 달성해야 할 의도(Intent)를 명확히 전달하고 실행의 자율권을 위임해야 한다. 데이비드 마르케(David Marquet) 전 함장이 제시한 ‘의도 기반 리더십(Intent-based Leadership)’ 모델은 구성원을 수동적인 실행자에서 능동적인 사색가로 변모시키는 유용한 도구다. "보고서 제출해" 대신 "이 데이터가 의사결정에 어떻게 쓰일지 기획해 봐"라고 주문하라.
Step 3. 심리적 안전감 조성: 건전한 충돌의 장려
하버드대의 에이미 에드먼슨(Amy Edmondson) 교수가 강조했듯, 구성원들이 자신의 생각이 조직의 관행과 다르더라도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관성은 침묵을 먹고 자란다.
[실천 가이드]
회의석상에서 기계적인 만장일치를 경계하라. 리더는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 역할을 지정하여, 의도적으로 기존 방식에 반기를 들고 불편한 질문을 던지게 해야 한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 방식이 정말 최선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에게 불이익이 아니라 인센티브를 주어야 한다. 그래야 조직은 관성의 늪에서 빠져나와 끊임없이 궤도를 수정할 수 있다.
결론 : 생각의 주도권을 되찾는 결단
결국 모든 것은 경영진의 결단에 달려 있다. 리더가 먼저 편안한 관성을 거부하고 불편한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면, 조직은 더 쉽고 익숙한 내리막길을 선택하게 마련이다.
‘일하는 대로 생각하는 조직’은 겉보기에 평온하고 질서 정연해 보이지만 서서히 가라앉는 배와 같고, ‘생각하는 대로 일하는 조직’은 시끄럽고 분주하며 때로는 충돌이 발생하지만 거친 파도를 헤치고 목적지로 나아가는 배와 같다.
물론 산업의 특성이나 조직의 규모에 따라 적용 방식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생각의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은 모든 리더의 공통된 과제다.
지금 당신의 조직은 어디에 서 있는가.
오늘 하루, 당신의 캘린더를 채운 일정들이 진정으로 조직의 미래를 위한 '치열한 생각의 결과물'인지, 아니면 그저 어제도 했기에 오늘도 해야 하는 '관성의 산물'인지 냉정하게 점검해 보라.
혁신은 거창한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무의미한 반복을 멈추고 생각의 주도권을 되찾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제는 조직이 일하는 방식에 생각을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생각이 일하는 방식을 압도하도록 만들어야 할 때다. 그것이 바로 리더가 조직에 심어야 할 가장 중요한 DNA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