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륜차 시장은 단순한 운송 수단을 넘어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하는 '레저형 모빌리티'로 진화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도심을 배경으로, 최근 시장의 허리 역할을 하며 견조한 수요를 유지하고 있는 중형 네이키드 바이크와 후방의 배달용 전기 스쿠터가 공존하는 모습. [사진 = 코리아비즈니스리뷰 자료 사진]
도심의 풍경, '양적 팽창'에서 '질적 생존'으로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비대면 배달 수요의 폭발과 함께 도로를 가득 메웠던 이륜차의 물결이 2025년 현재,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무조건적인 성장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철저한 '시장 재편'과 '옥석 가리기'가 진행 중이다.
엔데믹 이후 배달 시장의 조정과 경기 침체의 여파로 이륜차 시장은 숨 고르기에 들어갔으며, 소비자의 선택은 더욱 냉철해졌다.
이번 심층분석에서는, 배기량별 시장 구조의 변화와 전기 이륜차(EV) 보급의 현주소, 그리고 주요 플레이어들의 생존 전략을 심층 분석한다.
1. 시장 규모와 배기량의 지각변동: '조정 후 보합' 국면
국내 이륜차 시장은 2021년 배달 특수로 15만 대 안팎까지 치솟으며 정점을 찍은 뒤, 2023년과 2024년을 거치며 연 10만 대 초반(약 10만 6천 대 수준)을 유지하는 '조정 후 보합' 국면에 들어섰다.
겉으로 보기엔 평온한 하향 안정화처럼 보이지만, 배기량별 속내를 들여다보면 치열한 양극화가 감지된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대형 레저 시장의 침체'와 '중형 시장의 선방'이다.
2025년 4월 말 기준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125cc 이하 생계형·상용 스쿠터는 전년 대비 약 6.5%의 감소세를 보였다. 배달 시장의 포화가 직접적인 원인이다.
반면, 과거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던 801cc 이상 대형 레저 바이크(리터급 등)는 2,800대에서 1,700대 수준으로 40% 이상 급감했다. 고금리와 경기 침체로 인해 고가의 취미 생활부터 지갑을 닫은 결과다.
KBR Insight: 왜 '중형'만 버텼나?
흥미로운 점은 125cc 초과 800cc 이하의 '중형(쿼터~미들급)' 레저 시장이다.
작년과 비슷한 6,500대 수준을 유지하며 보합세를 보였다. 이는 고가의 대형 바이크가 부담스러운 라이더들이 실속 있는 중형 모델로 눈을 돌리거나, 입문자들이 접근하기 쉬운 '미들급'으로 유입된 결과로 분석된다. 즉, 과시형 소비보다는 합리적 레저 문화가 정착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2. 전기 이륜차와 BSS: 기대와 현실 사이의 괴리
친환경 모빌리티로의 전환은 정부의 강력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정부는 배터리 교환 스테이션(BSS)을 중심으로 보급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2025년 전반기 성적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025년 상반기 전기 이륜차 신규 등록은 2,686대로, 전년 동기(3,450대) 대비 약 22% 감소했다. 전체 이륜차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 또한 6.9%에서 5.7%로 뒷걸음질 쳤다. 올해 보조금 예산이 160억 원으로 책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판매량은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완속 충전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BSS가 빠르게 늘고 있으며, 정부도 이를 유력한 표준 모델로 밀고 있다. 하지만 교환형 전기 이륜차의 누적 보급 대수는 약 5,373대 수준으로, 전체 시장의 판도를 바꾸기에는 아직 역부족인 '과도기' 상태다.
짧은 주행거리, 충전 인프라의 지역적 편차, 그리고 저가형 중국산 모델 난립으로 인한 품질 불신이 소비자의 선택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현재와 같은 보조금 지원이 축소될 경우, 자생적인 수요 기반이 약한 전기 이륜차 시장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3. 브랜드 생존 경쟁: 혼다의 독주와 토종 기업의 고군분투
브랜드별 경쟁 구도 역시 시장 상황을 그대로 반영한다.
혼다코리아는 'PCX'와 '슈퍼커브'를 앞세워 소형 및 상용 시장에서 압도적인 1위를 수성하고 있다. 그러나 혼다 역시 800cc 초과 대형 레저 시장의 위축을 피하지 못했다. 전체적인 판매량은 견조하지만, 프리미엄 라인업의 수요는 경기 규제와 맞물려 숨 고르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국내 토종 브랜드의 상황은 더욱 녹록지 않다. DNA모터스(구 대림오토바이)는 전기 이륜차와 BSS 사업에 사활을 걸며 시장 점유율 2위를 지키고 있으나, 전기차 시장 자체의 부진으로 성장 동력 확보에 고심하고 있다.
KR모터스는 경영 악화 속에 매각 논의가 반복되는 등 재무적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아, 부품 수급과 AS망 유지에 대한 소비자들의 우려를 낳고 있다.
이에 각 브랜드는 단순 판매를 넘어 '경험'을 파는 전략으로 선회하고 있다. 팝업 스토어, 라이딩 스쿨 등 고객 접점을 늘리는 마케팅이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이는 위축된 소비 심리를 녹이기 위한 자구책으로 풀이된다.
4. 낡은 규제와 제도적 장벽: 시장 확장의 족쇄
한국 이륜차 산업의 질적 성장을 가로막는 고질적인 문제는 여전히 '규제'와 '보험'이다.
한국은 사실상 대부분의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이륜차의 고속도로 통행을 전면 금지 수준으로 규제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이동권 제한을 넘어, 고배기량 투어러 시장의 확장을 구조적으로 막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또한, 배달 종사자들에게 적용되는 높은 유상운송 보험료는 시장 진입의 거대한 장벽이다. 금융당국이 제도 개선을 시도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높은 보험료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합리적인 보험 체계 개편과 안전 교육 강화, 그리고 지정 차로제 시범 운영 등 단계적인 규제 완화 없이는 이륜차 산업이 '위험한 탈것'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결론적으로 2025년 한국 바이크 시장은 '거품이 빠진 후의 실수요'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대형 프리미엄의 거품은 꺼지고, 실속 있는 중형 레저와 생계형 수요가 시장을 지탱하고 있다. 전기차 전환은 아직 갈 길이 멀다.
기업은 내실을 다지고, 정부는 현실적인 인프라 지원과 규제 혁신을 통해 산업의 연착륙을 유도해야 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