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비즈니스리뷰(KBR) 리서치센터가 발간한 2026년 경제전망 보고서. 구조적 저성장과 대내외 리스크 요인을 심층 분석했다.
Ⅰ. 뉴 노멀을 넘어선 구조적 변곡점의 확인
2026년의 대한민국 경제를 전망함에 있어 가장 먼저 전제해야 할 것은, 우리가 과거 수십 년간 경험해 왔던 고도성장의 기억이나 팬데믹 이후의 비정상적인 변동성 국면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시공간에 진입했다는 사실이다.
2020년대 초반을 지배했던 인플레이션 공포와 급격한 금리 인상의 충격파가 가라앉은 지금, 우리 경제 앞에는 인구 구조의 변화,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 그리고 기술 패권 경쟁이라는 거대한 구조적 상수들이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2026년을 대한민국 경제가 ‘추격형(Fast Follower) 성장 모델’의 한계를 확인하고, 성숙한 선진 경제로서의 ‘잠재성장률 수렴(Convergence to Potential Growth)’을 받아들이는 원년으로 정의하고자 한다. 이는 비관적인 침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과거의 양적 팽창 방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질적 효율성과 생산성 혁신을 통해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번 2026년 전망에서 주목해야 할 핵심 키워드는 ‘대분기(Great Divergence)’다.
거시 경제 지표가 완만한 하향 안정세를 보이는 것과 달리, 산업 현장과 자산 시장 내부에서는 극심한 차별화가 진행될 것이다.
AI 기술을 선제적으로 내재화하여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킨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수혜를 입는 산업과 배제되는 산업, 그리고 자산 가치가 유지되는 핵심 입지와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 간의 격차는 그 어느 때보다 극명하게 벌어질 것이다.
본 보고서는 이러한 구조적 대전환의 시기에 정부, 기업, 그리고 가계가 직면하게 될 냉혹한 현실을 데이터를 통해 직시하고, 불확실성 속에서도 유효한 생존 및 성장 전략을 모색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단순한 수치의 나열을 지양하고, 수치 이면에 숨겨진 맥락과 인과관계를 입체적으로 서술함으로써 독자들에게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하고자 한다.
Ⅱ. 거시경제 심층 분석: 저성장의 고착화와 새로운 균형
1. 경제성장률(GDP): 잠재성장률로의 회귀와 그 의미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 그리고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주요 국내외 경제 전망 기관들의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볼 때, 2026년 대한민국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8%에서 2.2% 사이의 구간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의 컨센서스는 대략 2.0% 수준으로 수렴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이라 할 수 있는 잠재성장률 추정치와 거의 일치하는 수치다.
이러한 성장률 전망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2.0%라는 숫자는 일시적인 경기 침체나 외부 충격에 의한 하락이 아니라, 우리 경제가 구조적으로 저성장 국면에 완전히 안착했음을 보여주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과거와 같은 3%대 이상의 고성장은 이제 특별한 기술적 혁신이나 대외적인 호재 없이는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가 되었다.
성장의 내용을 뜯어보면 내수와 수출의 불균형, 이른바 ‘데칼코마니의 붕괴’ 현상이 관측된다. 수출 부문은 글로벌 AI 투자 확대에 힘입은 반도체 산업의 호조로 인해 비교적 견조한 흐름을 이어가며 전체 성장률을 방어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반면, 경제의 또 다른 한 축인 내수는 고금리 기조의 장기화에 따른 가계의 원리금 상환 부담과 실질 소득 정체로 인해 성장 기여도가 현저히 낮아질 것으로 분석된다. 즉, 수출이 벌어들인 소득이 투자와 고용을 통해 내수로 흘러드는 전통적인 ‘낙수 효과(Trickle-down effect)’가 구조적으로 약화되면서, 수출 호조 속에서도 체감 경기는 냉랭한 ‘외화내빈(外華內貧)’의 형국이 2026년 경제의 기본값이 될 가능성이 높다.
2. 물가와 금리: 숫자의 안정과 체감의 괴리
2026년의 물가 환경은 지표상으로는 안정화 단계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물가상승률(CPI)은 한국은행의 물가안정목표인 2.0% 수준에 근접한 2.0%~2.1% 선에서 등락을 거듭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2년부터 시작된 글로벌 긴축 통화 정책의 효과가 시차를 두고 나타난 결과이자, 경기 둔화에 따른 수요 측면의 압력이 완화된 덕분이다.
그러나 경제 주체들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 물가는 여전히 높을 수밖에 없다. 이는 인플레이션의 성격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과거의 물가 상승이 원자재 가격 급등과 같은 일시적 공급 충격에 기인했다면, 2026년의 물가는 서비스 요금과 인건비 등 한번 오르면 쉽게 떨어지지 않는 하방 경직적인 요소들이 주도하고 있다. 여기에 기후 변화로 인한 농산물 가격의 변동성 확대, 즉 ‘애그플레이션(Agflation)’과 친환경 전환 비용이 가격에 전가되는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은 물가의 구조적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며 서민 가계의 구매력을 지속적으로 제약할 것이다.
금리 측면에서 살펴보면, 2026년은 ‘초저금리 시대의 종언’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해가 될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 정책이 중립 금리 수준을 유지하는 ‘Higher for Longer(더 높게, 더 오래)’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한국은행 역시 기준금리를 2.25%에서 2.75% 사이에서 운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시장 금리가 3%대 중반에서 4%대 초반에 고착화됨을 의미한다.
가계와 기업은 이제 4~5%대의 대출 금리를 비정상적인 위기 상황이 아닌, 일상적인 금융 비용으로 받아들이고 이에 맞춘 재무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3. 환율: 구조적 약세 요인과 뉴 노멀의 형성
원/달러 환율에 대한 전망은 과거의 통념을 깨는 접근이 필요하다. 다수의 글로벌 투자은행(IB)과 거시경제 연구소들은 2026년 원/달러 환율이 1,280원에서 1,350원 사이의 높은 레벨에서 새로운 균형점을 형성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과거 우리 경제가 호황일 때 환율이 1,100원대 이하로 내려갔던 경험칙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고환율의 구조화’는 일시적인 달러 강세 때문만은 아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한국 경제의 수급 구조가 변화했기 때문이다. 무역수지는 흑자 기조를 유지하더라도 과거와 같은 대규모 흑자를 기대하기 어려워졌고, 서비스 수지의 만성 적자는 고착화되었다.
무엇보다 ‘서학개미’로 대변되는 개인 투자자들의 해외 주식 투자 확대와 국민연금의 해외 자산 배분 비중 증가는 외환시장에서 달러에 대한 구조적인 수요 우위를 만들고 있다. 따라서 기업들은 환율 1,300원을 위기 상황이 아닌 경영의 상수로 설정하고, 환변동성에 따른 이익 변동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정교한 헤징 전략을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한다.
Ⅲ. 글로벌 경제 환경: 불확실성 속의 차별화
1. 미국 경제: 연착륙을 넘어선 기술 주도 성장
2026년 미국 경제는 전 세계 주요국 중에서 가장 독보적인 회복탄력성과 성장세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IMF와 연준의 전망을 종합하면, 미국은 1.8%에서 2.1% 내외의 견조한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잠재성장률을 상회하거나 그에 준하는 수준이다. 이러한 미국의 독주(Exceptionalism)는 인공지능(AI) 혁명이 단순한 테마를 넘어 실질적인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빅테크 기업들의 막대한 자본 지출(Capex)은 노동 공급 부족 문제를 기술로 상쇄하며 경제 전반의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다만 리스크 요인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상업용 부동산(CRE) 시장이다.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 확산으로 인한 공실률 상승과 고금리에 따른 리파이낸싱 비용 증가는 중소형 지역 은행들의 건전성을 위협하는 뇌관으로 남아 있다. 만약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부실이 금융 시스템 전반으로 전이된다면, 이는 미국 경제의 연착륙 경로를 이탈하게 만드는 '꼬리 위험(Tail Risk)'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연준의 유동성 공급 능력과 대형 은행들의 견고한 자본력을 고려할 때, 시스템 위기로 번질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2. 중국 경제: 구조적 감속과 디플레이션 수출의 위협
중국 경제는 부동산 버블 붕괴의 후유증과 급격한 인구 고령화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며 구조적인 하강 국면에 진입했다.
주요 국제기관들은 2026년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4%대를 방어하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3%대 후반의 ‘중속 성장’이 새로운 표준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시진핑 지도부가 첨단 제조업 육성을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 하고 있지만, 가계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동산 가격 하락이 소비 심리를 짓누르고 있어 내수 회복은 요원한 상황이다.
한국 경제 입장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대목은 중국의 ‘디플레이션 수출’이다. 내수 시장에서 소화되지 못한 막대한 과잉 생산 물량을 해외로 밀어내기 위해 중국 기업들은 전기차, 배터리, 철강, 석유화학 제품 등을 초저가에 수출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시장에서 가격 경쟁을 격화시키고, 한국 기업들의 마진을 압박하는 직접적인 위협 요인이 된다.
중국발 공급 과잉은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추는 긍정적인 효과도 일부 있으나, 제조업 경쟁력을 보유한 한국과 같은 국가에는 산업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심각한 악재로 작용할 것이다.
Ⅳ. 산업별 심층 전망: 기술 격차가 가르는 승패
1. 반도체: 슈퍼 사이클의 진화와 패키징 전쟁
2026년 반도체 산업은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타고 ‘제2의 슈퍼 사이클’을 맞이할 것이나, 그 양상은 과거와는 사뭇 다를 것이다.
과거의 사이클이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범용 제품의 수요 폭증에 기인했다면, 2026년의 사이클은 고대역폭메모리(HBM)와 같은 특화된 고성능 제품이 주도하는 ‘질적 성장’의 성격을 띤다.
특히 2026년은 HBM 시장에서 6세대 제품인 HBM4의 양산과 공급이 본격화되는 시기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HBM4부터는 메모리 반도체 기업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정을 활용하여 로직 다이(Logic Die)에 고객사가 원하는 기능을 직접 설계해 넣는 ‘커스텀(Custom)화’가 핵심 경쟁력이 된다. 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게 단순한 메모리 공급사를 넘어 토탈 솔루션 제공자로 변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첨단 패키징(Advanced Packaging) 기술력의 격차가 곧 시장 점유율과 수익성의 격차로 직결될 것이다.
반면, 레거시(구형) 공정 중심의 범용 반도체 시장은 중국 기업들의 공격적인 증설로 인해 가격 반등의 폭이 제한적일 수 있다. 따라서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범용 제품 비중을 과감히 줄이고, 선단 공정과 특화 제품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믹스 개선(Mix Improvement)’ 전략을 통해 수익성을 방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2. 자동차 및 모빌리티: SDV 전환과 하이브리드의 공존
전기차(EV) 시장은 폭발적인 성장기를 지나 일시적인 수요 정체 구간인 ‘캐즘(Chasm)’을 통과하고 있다.
2026년은 이러한 캐즘이 완만하게 해소되는 국면이 될 것이나, 완전한 전기차 대중화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완성차 업체들은 현실적인 대안으로 하이브리드(HEV) 라인업을 강화하며 수익성을 확보하는 ‘투 트랙(Two-track)’ 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하이브리드 차량은 충전 인프라 부족과 배터리 안전성 문제에서 자유롭고 연비 효율이 높아, 2026년에도 자동차 시장의 가장 강력한 현금 창출원(Cash Cow)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2026년 자동차 산업의 진정한 승부처는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다. 자동차가 ‘달리는 스마트폰’으로 진화하는 SDV(Software Defined Vehicle)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차량용 운영체제(OS), 무선 업데이트(OTA), 자율주행 기능 등 소프트웨어 역량이 브랜드의 가치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테슬라와 중국의 BYD, 그리고 한국의 현대차그룹 등 글로벌 플레이어들은 하드웨어 제조 경쟁력을 넘어 소프트웨어 생태계 주도권을 잡기 위한 치열한 플랫폼 전쟁을 벌일 것이다.
3. 이차전지(배터리): 기술 차별화와 공급망 자립
K-배터리 산업은 중국의 저가 공세와 서구권의 환경 규제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될 위험과, 기술 초격차로 도약할 기회를 동시에 맞이하고 있다.
중국이 장악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시장에 한국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진입하여 보급형 전기차 시장의 점유율을 얼마나 가져올 수 있느냐가 2026년의 단기적인 관전 포인트다.
중장기적으로는 ‘꿈의 배터리’라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와 차세대 원통형 배터리(4680 등)의 상용화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2026년은 주요 배터리 3사가 차세대 배터리의 파일럿 생산을 마치고 양산 검증에 들어가는 시기로, 여기서 확보된 기술적 데이터가 향후 10년의 시장 판도를 결정할 것이다.
또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유럽의 핵심원자재법(CRMA) 등 공급망 관련 규제에 대응하여, 광물 조달부터 폐배터리 재활용(Recycling)에 이르는 밸류체인의 수직 계열화를 완성하는 것이 기업의 생존을 좌우하는 필수 과제가 되었다.
4. 바이오 및 방위산업: 새로운 수출의 주역
바이오와 방위산업은 반도체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한국 수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할 수 있는 가장 유망한 대안으로 꼽힌다.
바이오 산업의 경우,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롯데바이오로직스 등이 주도하는 위탁개발생산(CDMO)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생산 능력을 앞세워 글로벌 제약사들의 물량을 빨아들일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미국의 생물보안법(Biosecure Act) 추진으로 중국 바이오 기업들이 견제를 받으면서 한국 기업들이 반사이익을 얻는 구조적 수혜도 예상된다.
방위산업은 전 세계적인 지정학적 불안이 지속됨에 따라 구조적인 호황 국면을 이어갈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와 중동 정세 불안은 각국의 국방비 증액을 유도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 방산 기업들의 수주 잔고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 무기체계는 ‘납기 준수’, ‘가격 경쟁력’, ‘나토(NATO) 규격 호환성’이라는 3박자를 갖추고 있어, 유럽과 중동을 넘어 미국 시장의 유지보수(MRO) 분야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이룰 가능성이 높다. 2026년은 방산이 내수 산업을 넘어 명실상부한 수출 주력 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해가 될 것이다.
Ⅴ. 구조적 리스크 분석: 회색 코뿔소의 돌진
1. 인구 절벽의 실물 경제 타격 가시화
2026년 대한민국 경제가 마주할 가장 확실하고도 치명적인 위협은 인구 구조의 변화다.
2025년 합계출산율 0.6명대 쇼크 이후, 2026년은 생산연령인구의 감소가 통계 수치를 넘어 산업 현장의 인력난으로 구체화되는 시기다.
중소 제조업과 건설업, 농축산업, 그리고 돌봄 서비스업 등 노동 집약적인 산업에서는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가동률을 낮추거나 사업을 접어야 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할 것이다. 이는 임금 상승 압력을 유발하여 기업의 비용 부담을 가중시키고, 나아가 잠재성장률을 갉아먹는 주원인이 된다. 또한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가속화되면서 숙련 기술의 단절 현상이 나타나 제조업 경쟁력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2. 가계부채와 내수 소비의 구조적 제약
GDP 대비 90%를 상회하는 가계부채 비율은 한국 경제의 역동성을 떨어뜨리는 족쇄와 같다. 비록 금리가 고점 대비 다소 낮아진다 하더라도, 절대적인 부채 규모가 줄어들지 않는 한 가계 소득의 상당 부분은 원리금 상환에 쓰일 수밖에 없다. 이는 가처분 소득 감소로 이어져 민간 소비의 회복을 구조적으로 제약한다.
내수 부진은 다시 자영업자의 매출 감소와 폐업으로 이어지고, 이는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위축과 금융권의 건전성 악화로 연결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할 위험이 있다. 2026년은 가계부채 문제가 금융 시스템의 위기로 번지지 않도록 관리하면서도, 소비 여력을 확충해야 하는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해다.
3. 지정학적 분절화와 공급망 리스크
미중 패권 경쟁으로 촉발된 세계 경제의 블록화(Fragmentation) 현상은 2026년에도 심화될 것이다. 자유무역과 효율성을 중시하던 시대는 저물고, 안보와 자국 우선주의가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게 이러한 지경학적(Geo-economic) 환경 변화는 비용 상승과 시장 축소를 의미한다.
기업들은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인도, 동남아, 북미 등으로 공급망을 다변화해야 하는 압박을 받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중복 투자에 따른 효율성 저하를 감수해야 한다. 또한 미국 대선 이후의 정책 변화나 대만 해협의 긴장 고조 등 돌발적인 지정학적 이벤트는 언제든 한국 경제를 흔들 수 있는 상존하는 리스크다.
Ⅵ. 시나리오 분석: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세 가지 경로
불확실성이 높은 대외 변수와 내부의 구조적 요인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느냐에 따라 2026년 한국 경제는 다음 세 가지 경로 중 하나를 걷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시나리오 A: 혁신 주도형 재도약 (Upside C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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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 조건: 글로벌 AI 투자가 전 산업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한국의 반도체 및 바이오 수출이 예상을 뛰어넘는 호조를 보인다. 동시에 정부의 노동, 교육, 연금 개혁이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성공적으로 추진되고, 미중 갈등이 일시적으로나마 완화되는 국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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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 이 경우 한국 경제성장률은 2.3%~2.5% 수준으로 반등할 수 있다. 기업 실적 개선에 힘입어 코스피는 박스권을 강하게 돌파하며 자산 시장의 활황을 이끌 것이다. 이는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늪을 탈출하여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시나리오 B: 현상 유지와 초양극화 (Base C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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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 조건: 현재의 컨센서스와 가장 부합하는 시나리오다. 고금리 기조가 완만하게 유지되고, 반도체 등 일부 주력 산업은 호황을 누리지만 전통 제조업과 내수 산업은 부진을 면치 못한다. 구조 개혁은 지지부진하거나 부분적인 성과에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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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 경제성장률은 1.9%~2.1% 수준의 잠재성장률 부근에서 등락한다. 수출 기업과 내수 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실적 격차가 확대되고, 자산 시장에서도 종목별, 지역별 차별화 장세가 극심해진다. 경제 전체가 무너지는 위기는 아니지만, 다수의 경제 주체들이 성장의 온기를 체감하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된다.
시나리오 C: 복합 위기의 현실화 (Downside C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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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 조건: 미국 상업용 부동산 발 금융 불안이 글로벌 신용 경색으로 전이되거나, 중국 경제가 경착륙하여 글로벌 수요가 급감하는 경우다. 혹은 대만 해협 등에서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여 공급망이 마비되는 상황을 가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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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 한국 경제성장률은 1.5% 이하로 추락하며 심각한 경기 침체에 빠질 수 있다. 환율은 1,400원 선을 뚫고 올라가며 금융 시장의 불안을 키우고, 한계 기업과 과다 채무 가계의 연쇄 부실이 현실화된다. 이는 단순한 경기 순환상의 불황이 아니라 시스템 리스크를 동반한 복합 위기 상황이다.
Ⅶ. 결론 및 전략적 제언: 좁은 회랑을 통과하는 지혜
2026년 대한민국 경제는 인구 감소와 저성장이라는 내부의 구조적 제약과, 기술 패권 전쟁이라는 외부의 도전 사이에서 ‘좁은 회랑(Narrow Corridor)’을 지나고 있다. 이 길은 협소하고 험난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길이다. 과거의 성공 방식에 안주하거나 변화를 거부하는 것은 도태를 의미할 뿐이다.
[기업을 위한 제언]
이제 ‘양적 성장’보다는 ‘질적 혁신’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인구 감소 시대에 노동 투입을 늘리는 방식의 성장은 불가능하다. 모든 업무 프로세스에 AI를 도입하여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AX(AI Transformation)’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또한, 지정학적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내수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인도와 글로벌 사우스 등 신흥 시장으로의 진출을 가속화해야 한다.
[정부를 위한 제언]
구조 개혁의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노동 시장의 유연성을 높여 기업의 고용 창출 능력을 제고하고, 적극적인 이민 정책을 통해 부족한 노동력을 확충해야 한다. 또한, R&D 예산을 전략적으로 배분하여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는 기업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함으로써 국가 산업 경쟁력을 지켜내야 한다.
[개인을 위한 제언]
‘각자도생’의 시대, 자신의 경쟁력을 냉정하게 점검해야 한다. 평생 직장의 개념은 사라졌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창의적 역량과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것만이 고용 불안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자산 관리 측면에서는 국내 자산에 편중된 포트폴리오를 달러 자산 등으로 다변화하여 국가 리스크를 헤지하고, 빚을 줄여 현금 흐름을 확보하는 보수적인 태도가 요구된다.
2026년은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는 해다. ‘대분기’의 파도 속에서 휩쓸려 갈 것인가, 아니면 그 파도를 타고 더 멀리 나아갈 것인가.
그 결과는 지금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