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골드러시의 최전선." 미국 내 데이터센터 건설 투자가 급증하면서 현장 숙련 인력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사진은 대규모 서버 팜(Server Farm) 건설 현장에서 도면과 태블릿을 활용해 공정을 점검하고 있는 건설 관리자 및 엔지니어들의 모습. [사진 = 코리아비즈니스리뷰 DB]
모두가 챗GPT(ChatGPT)와 같은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의 혁명에 주목할 때, 정작 이 거대한 파도의 물밑에서 가장 확실한 현금 흐름을 창출하고 있는 이들은 다름 아닌 '건설 노동자'들이다.
아마존(Amazon), 구글(Google),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AI 패권 경쟁을 위해 데이터센터 건설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부으면서, 이를 물리적으로 구축할 숙련된 건설 인력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관련 업계 통계에 따르면, 데이터센터 건설 현장의 노동자들은 기존 대비 25~30% 이상의 임금 상승은 물론, 연봉 2억 원을 훌쩍 넘기는 사례가 속출하며 'AI 붐'의 최대 수혜자로 떠올랐다.
현장 리포트: 연봉 1억은 기본, 3억 원대 슈퍼 블루칼라의 등장
미국 전역의 데이터센터 건설 현장은 그야말로 '골드러시'를 방불케 한다.
WSJ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서 소규모 건식벽체(Drywall) 사업을 운영하던 데몬드 챔블리스(DeMond Chambliss, 51세) 씨는 현재 데이터센터 건설 현장에서 200명의 인력을 감독하는 관리자로 변신했다. 그의 연봉은 단숨에 10만 달러(약 1억 4천만 원)를 넘어섰다. 그는 인터뷰에서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내 볼을 꼬집어 본다"며 현재의 호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더 놀라운 것은 특수 기술직의 대우다. 오리건주의 전기 안전 전문가인 마크 베너(Marc Benner) 씨의 연봉은 무려 22만 5천 달러(약 3억 1천만 원)에 달하며, 버지니아 북부의 데이터센터 밀집 지역에서 전기 기사들을 관리하는 앤드류 메이슨(Andrew Mason) 씨 역시 20만 달러(약 2억 8천만 원) 이상의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이는 웬만한 실리콘밸리 개발자 연봉에 버금가거나 이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단순히 기본급만 오른 것이 아니다. 기업들은 인력을 유치하기 위해 '파격적인 패키지'를 제시하고 있다. 건설 현장에는 난방 시설이 완비된 휴게 텐트와 무료 점심 식사가 제공되는 것은 기본이고, 하루 출근할 때마다 100달러(약 14만 원)의 인센티브 보너스를 추가로 지급하는 곳도 생겨났다. 이러한 추가 수당만 모아도 연간 수천만 원의 수입이 더해지는 셈이다.
수급 불균형의 역설: "지을 곳은 많은데 지을 사람이 없다"
이러한 임금 인플레이션의 근본 원인은 극심한 '수급 불균형'에 있다.
전미건설협회(Associated Builders and Contractors, ABC)의 최신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2025년 건설 업계가 수요를 맞추기 위해 추가로 고용해야 할 신규 인력은 약 43만 9천 명에 달한다. 2024년 이미 50만 명 이상의 인력 부족을 겪은 데 이어, 만성적인 구인난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데이터센터는 일반 상업용 건물과 달리 고도의 기술력이 요구되는 특수 시설이다. 24시간 가동되는 수만 대의 서버가 뿜어내는 열기를 식히기 위한 정밀 냉각 시스템, 막대한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전기 배선 설비 등은 고도로 훈련된 숙련공(Skilled Workers)만이 다룰 수 있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기업들은 AI 모델 학습과 클라우드 서비스를 위해 수백 개의 데이터센터를 동시다발적으로 짓고 있다. 이로 인해 한정된 숙련 인력 풀(Pool)을 두고 기업 간의 '뺏고 뺏기는' 영입 전쟁이 벌어졌고, 이것이 결국 건설 노동자들의 협상력을 극대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JLL 등 부동산 컨설팅 업체들은 2025년에도 데이터센터 건설 투자가 '경이로운 수준'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 이러한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뉴 칼라(New Collar)'의 부상: 노동 시장의 판도가 바뀐다
이번 현상은 단순한 일시적 호황을 넘어 노동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시사한다. 지난 수십 년간 화이트칼라 직종이 고소득의 상징이었다면, AI 시대에는 물리적 인프라를 구축하고 유지 보수할 수 있는 기술직, 이른바 '뉴 칼라' 계층이 새로운 중산층 상위 그룹으로 진입하고 있다.
사무직은 AI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위협에 직면한 반면, 현장에서 물리력을 행사해야 하는 건설, 전기, 배관 등의 업무는 AI가 대체하기 어렵다. 오히려 AI 산업이 성장할수록 이를 뒷받침할 물리적 기반 시설의 필요성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이들의 몸값은 구조적으로 우상향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골드만삭스(Goldman Sachs)는 AI로 인해 2030년까지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165% 폭증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곧 발전소와 전력망, 그리고 데이터센터를 짓는 건설 인력의 수요가 향후 5년 이상 강력하게 지지될 것임을 의미한다.
[KBR Insight: 기업과 노동자의 대응 전략]
1) 기술 인력에 대한 재평가: 기업들은 이제 개발자 확보만큼이나 인프라 구축을 위한 숙련된 기술직(Technician) 확보와 유지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기존의 하청 구조나 단기 계약 중심의 고용 관행으로는 A급 인재를 붙잡을 수 없다.
2) 직업 교육의 패러다임 전환
청년 구직자들에게 무조건적인 대학 진학보다는, 데이터센터 전기 설비, HVAC(공조 시스템) 등 고부가가치 기술 교육이 훨씬 더 확실한 고소득의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이는 국가 차원의 인력 양성 정책에서도 핵심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안이다.
AI 붐은 코드를 짜는 개발자들만의 축제가 아니다. 디지털 세계를 지탱하는 거대한 물리적 서버 팜(Server Farm)을 짓는 건설 노동자들이야말로, 이 거대한 파도의 가장 실질적인 수혜자다. 연봉 2~3억 원을 받는 건설 노동자의 등장은 기술 발전이 반드시 일자리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고부가가치 노동을 창출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43만 명에 달하는 인력 부족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헬멧을 쓴 이들의 '황금기'는 2025년 이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