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Business Review
Korea Business Review

esg-policy-strategy

"벽에 걸린 액자가 아니다"... ESG 비전, ‘생존의 언어’로 다시 써라

"우리는 친환경 기업을 지향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 2024년 현재, 수많은 기업의 홈페이지나 로비에 걸려 있는 ESG 비전 문구다. 하지만 냉정하게 자문해 보자. 과연 이 문장이 임직원들이 매일 아침 출근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가?

최수진 기자입력 2025년 12월 1일수정 2026년 5월 26일
Share
ESG 비전은 단순한 선언이 아닌 기업의 '생존 언어'다. 이미지는 척박한 환경 위기(왼쪽) 속에서 ESG가 풍요롭고 지속가능한 미래(오른쪽)를 여는 핵심 열쇠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미지 = 코리아비즈니스리뷰 DB]
ESG 비전은 단순한 선언이 아닌 기업의 '생존 언어'다. 이미지는 척박한 환경 위기(왼쪽) 속에서 ESG가 풍요롭고 지속가능한 미래(오른쪽)를 여는 핵심 열쇠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미지 = 코리아비즈니스리뷰 DB]

"우리는 친환경 기업을 지향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 2024년 현재, 수많은 기업의 홈페이지나 로비에 걸려 있는 ESG 비전 문구다. 하지만 냉정하게 자문해 보자. 과연 이 문장이 임직원들이 매일 아침 출근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가?

"우리는 친환경 기업을 지향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

2024년 현재, 수많은 기업의 홈페이지나 로비에 걸려 있는 ESG 비전 문구다. 하지만 냉정하게 자문해 보자. 과연 이 문장이 임직원들이 매일 아침 출근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가? 혹은 투자자가 수많은 경쟁사 중 귀사를 선택해야만 하는 확실한 근거가 되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경영 전략이 아니라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글로벌 시장에서 사실상 필수에 가까운 요구가 되면서, 기업들은 앞다퉈 ESG 위원회를 설치하고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ESG 경영의 ‘방향키’ 역할을 해야 할 미션과 비전 수립 단계에서는 여전히 모호한 수사학에 그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에 ESG경영 인사이트에서는 실무자들이 당장 적용할 수 있는 ESG 목표 수립의 구체적인 방법론과 이를 선도적으로 구현한 글로벌 기업들의 사례를 심층 분석했다.

‘목적(Purpose)’이 이끄는 자본주의로의 이동


과거 기업의 목표는 단순명료했다. 바로 ‘이윤 창출’과 ‘주주 가치 극대화’였다. 그러나 블랙록(BlackRock)의 래리 핑크(Larry Fink) 회장이 연례 서한을 통해 강조했듯, 이제 시장의 패러다임은 기업의 존재 목적(Purpose)이 이익을 넘어 이해관계자 전체의 가치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점차 이동하고 있다.

잘 수립된 ESG 비전은 단순히 ‘착한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도구가 아니다. 이는 규제 및 공급망 이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게 하는 리스크 관리 수단이자, 가치 소비와 노동을 중시하는 MZ세대 인재를 끌어당기는 자석이며, ESG 성과를 요구하는 투자자들의 자금 흐름을 유도하는 핵심 지표다.

따라서 ESG 목표 수립은 홍보팀의 실무 차원이 아니라, C-Level과 이사회가 주도해야 하는 최상위 경영 전략으로 다뤄져야 한다.

성공적인 목표 수립을 위한 4단계 프레임워크


그렇다면 막연한 ESG 비전을 어떻게 구체화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실패하지 않는 목표 수립을 위해 체계적인 프로세스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이중 중대성 평가(Double Materiality Assessment)’다.

멋진 문구를 만들기 전에 기업이 처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의미다. 외부의 기후변화나 사회적 이슈가 기업의 재무적 가치에 미치는 영향(Outside-In)과, 기업의 비즈니스가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Inside-Out)을 모두 고려해 핵심 이슈를 도출해야 한다. 예를 들어 IT 기업이라면 데이터 보안(S)이, 제조업이라면 탄소 배출(E)이 비전의 최우선 순위가 되어야 한다.

다음으로는 ‘글로벌 표준(Global Standards)과의 정렬’이 필수적이다. 글로벌 표준과의 정렬 없이 자의적인 목표만 내세울 경우, 자칫 그린워싱(Greenwashing)이라는 비판을 받을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UN의 지속가능개발목표(SDGs) 중 자사 비즈니스와 가장 연관성이 높은 목표를 선정하여 연계하거나, 탄소 중립 목표를 세울 때 과학기반 감축목표 이니셔티브(SBTi)의 검증된 경로를 따르는 것이 그 예다.

세 번째 단계는 ‘정체성(Identity)을 담은 미션 스테이트먼트’ 작성이다. 단순히 "탄소 배출을 줄인다"는 기술적인 목표는 구성원의 가슴을 뛰게 하지 못한다. 우리 회사의 ‘업(業)의 본질’과 ESG 가치를 연결해야 한다. "세계 최고의 친환경 화학 기업이 된다"는 진부한 표현보다는, "화학의 힘으로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지구 환경을 보존한다"와 같이 기업 고유의 정체성을 녹여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구체적 KPI 및 보상 체계의 연동’이다. 비전이 벽에 걸린 액자로 남지 않으려면, CEO 및 임원진의 핵심성과지표(KPI)에 ESG 목표 달성 여부를 반영하여 실행력을 강제해야 한다.

글로벌 기업들은 어떻게 정의했나


글로벌 선도 기업들은 이미 이러한 원칙을 비즈니스 깊숙이 통합하고 있다.

유니레버(Unilever)는 ESG 경영의 교과서로 불리며, "지속가능한 삶을 일상으로 만든다(To make sustainable living commonplace)"라는 명확한 비전을 수립했다.

이들은 ‘유니레버 컴파스’ 전략을 통해 2039년까지 전 제품의 탄소 배출 넷제로를 선언했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지속가능한 생활 브랜드’ 제품군이 나머지 브랜드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성장하며, 특정 연도에는 타 브랜드 대비 40~70% 높은 성장률을 기록해 전체 성장의 상당 부분을 견인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ESG 투자가 비용을 넘어 매출 성장과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사례다.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Patagonia)는 더욱 과감한 구조적 변화를 택했다.

"우리는 우리의 터전,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사업을 합니다(We’re in business to save our home planet)"라는 사명 아래, 창립자 이본 쉬나드는 회사의 지배구조를 재설계했다. 그는 회사의 의결권 주식 2%를 ‘파타고니아 퍼포스 트러스트’에, 비의결권 주식 98%를 환경·기후 대응을 위한 비영리 조직 ‘홀드패스트 컬렉티브’에 이전했다. 이는 이윤이 지구 보호 활동에 사용되도록 강제하고, 기업의 미션을 장기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소유·지배구조를 설계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내에서는 SK그룹의 행보가 눈에 띈다.

최태원 회장은 경제적 가치(EV)와 사회적 가치(SV)를 동시에 추구하는 ‘더블 바텀 라인(DBL)’ 경영을 도입했다.

SK는 자체 개발한 방법론을 통해 계열사별로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매년 화폐 단위(원)로 추정해 발표하고 있다. 이는 아직 국제적으로 합의된 회계 기준은 아니지만, 추상적인 개념이던 사회적 가치를 ‘숫자로 관리해 보려는’ 실험적이고 의미 있는 시도로 평가받는다. "측정되지 않는 것은 관리될 수 없다"는 경영 격언에서 영감을 받아 ESG 영역에도 수치화 시도를 접목한 것이다.

보여주기 식 ‘선언’을 넘어 ‘실행’으로


성공적인 ESG 비전 수립을 위해 실무자들은 언어의 구체성에 집중해야 한다. ‘최선을 다한다’, ‘노력한다’와 같은 모호한 표현 대신, ‘2030년까지 50% 감축’, ‘여성 임원 비율 30% 달성’과 같은 명확한 숫자를 제시해야 한다. 또한 경영진이 큰 방향을 제시하되(Top-down), 세부 실행 과제는 실무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수렴하는 바텀업(Bottom-up) 방식을 조화시켜야 내부 공감대를 얻을 수 있다.

결국 ESG 목표와 비전 수립은 한 번 만들고 끝나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

기업을 둘러싼 환경은 매일 변하고, 이해관계자들의 요구 수준은 계속해서 높아진다. 따라서 비전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수정·보완해야 하는 ‘살아있는 유기체’여야 한다. 지금 귀사의 ESG 비전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라.

그 문장 속에 우리 회사의 미래 생존 전략과 치열한 고민이 담겨 있는가? 그 답이 기업의 100년 미래를 결정지을 것이다.


KBR Membership

무료 회원가입이 필요합니다

가입하면 이번 달 3건의 멤버십 콘텐츠를 무료로 읽을 수 있습니다.

Reader 월 3건 · Member 월 10건 · Premium/Business 무제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