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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을 버리고 ‘시나리오 플래닝’으로 생존하라

서울 테헤란로의 한 IT 기업 대회의실, A 대표의 목소리에 날카로운 긴장감이 서려 있다. 12월을 코앞에 둔 지금, 대한민국 전역의 보드룸(Boardroom)에서는 2026년도 경영 전략 수립을 위한 치열한 두뇌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이태민 기자입력 2025년 12월 1일수정 2026년 5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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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이 불가능한 경영 환경 속에서, 시나리오 플래닝은 기업이 거친 파도를 넘어 생존과 도약의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돕는 필수적인 전략 도구다. [사진 = 코리아비즈니스리뷰 자료 사진]
예측이 불가능한 경영 환경 속에서, 시나리오 플래닝은 기업이 거친 파도를 넘어 생존과 도약의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돕는 필수적인 전략 도구다. [사진 = 코리아비즈니스리뷰 자료 사진]

서울 테헤란로의 한 IT 기업 대회의실, A 대표의 목소리에 날카로운 긴장감이 서려 있다. 12월을 코앞에 둔 지금, 대한민국 전역의 보드룸(Boardroom)에서는 2026년도 경영 전략 수립을 위한 치열한 두뇌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 테헤란로의 한 IT 기업 대회의실, A 대표의 목소리에 날카로운 긴장감이 서려 있다. 12월을 코앞에 둔 지금, 대한민국 전역의 보드룸(Boardroom)에서는 2026년도 경영 전략 수립을 위한 치열한 두뇌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경영진의 표정은 밝지 않다.

고금리 기조의 장기화, 지정학적 분쟁의 일상화, 그리고 생성형 AI(Gen AI)가 촉발한 산업 생태계의 파괴적 변화까지.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 시계제로(Zero Visibility)의 상황에서 ‘정확한 계획’을 내놓으라는 요구는 모순에 가깝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는 소위 ‘비전 2030’과 같은 중장기 로드맵을 신봉했다. 그러나 경영학의 석학 헨리 민츠버그(Henry Mintzberg)가 일찍이 지적했듯,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책상 위에서 정교하게 짜인 장기 계획은 자칫 조직의 유연성을 저해하는 족쇄가 될 수 있다.

지금 당신의 조직이 수립하고 있는 2026년 전략은 과연 거친 격랑을 헤쳐 나갈 나침반인가, 아니면 그저 보고를 위한 예쁜 문서에 불과한가.

경영 현장에서 30년 넘게 리더들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필자는 단언한다. 예측의 정확도에 집착하는 리더는 실패할 것이며, 대응의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리더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전년 대비 +α’의 함정: 관성적 계획이 조직을 망친다


많은 기업이 전략 수립 과정에서 범하는 가장 치명적이고도 흔한 실수는 바로 ‘전년 대비(Plus-alpha)’ 방식의 답습이다. 이는 전년도 실적을 불변의 베이스라인으로 놓고, 여기에 희망 섞인 성장률 5~10%를 얹어 목표를 설정하는 기계적인 방식이다.

재무팀 주도로 이루어지는 이러한 탑다운(Top-down) 방식은 숫자의 정합성을 맞추는 데는 유리할지 몰라도, 시장의 역동성을 반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베인앤드컴퍼니(Bain & Company)와 같은 글로벌 컨설팅 펌들은 불확실성이 높은 시기일수록 과거의 데이터가 미래를 설명하는 설명력을 상실한다고 경고한다. 특히 2025년 하반기부터 뚜렷하게 감지되는 글로벌 소비 심리의 위축과 공급망의 블록화 현상은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단순히 비용을 통제하고 마른 수건을 짜내는 식의 효율화 전략만으로는, 파괴적 기술을 무기로 시장의 룰을 바꾸며 진입하는 신규 플레이어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경영학계와 실무 진영에서는 기존의 뷰카(VUCA) 프레임에 더해, 미래학자 자메이 카시오(Jamais Cascio)가 제안한 바니(BANI)라는 새로운 프레임으로 현 상황을 설명하려는 시도가 확산되고 있다. 이는 오늘날의 환경이 변동성(Volatile)을 넘어 시스템이 부서지기 쉽고(Brittle), 사람들은 불안해하며(Anxious), 인과관계는 비선형적이고(Non-linear), 상황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Incomprehensible)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비선형적인 환경에서 선형적인 엑셀 시트 위에 그려진 우상향 그래프는 리더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일시적인 위약(Placebo)일 뿐, 실질적인 치료제가 될 수 없다.

시나리오 플래닝: 예언가가 아닌 ‘준비된 대응가’가 되라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필자는 단일 목표가 아닌 복수의 미래를 가정하고 준비하는 ‘시나리오 플래닝(Scenario Planning)’의 도입을 강력히 제안한다. 이는 단순히 낙관적(Best), 중립적(Base), 비관적(Worst) 케이스를 나누어 숫자를 조정하는 수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핵심 변수(Key Driver)가 어떻게 작동하느냐에 따라 비즈니스의 본질 자체가 달라질 수 있음을 인정하고, 각 상황에 맞는 구체적인 액션 플랜(Contingency Plan)을 미리 수립해 두는 고도의 지적 과정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제조업 기반의 B사는 2026년 전략의 핵심 변수로 ‘원자재 가격 변동성’과 ‘미-중 무역 갈등 심화’를 설정했다.

  • 시나리오 1: 갈등이 완화되고 공급망이 안정화되는 경우, B사는 공격적인 설비 투자를 통해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는 ‘확장 전략’을 가동한다.

  • 시나리오 2: 갈등이 격화되어 특정 원자재 수급이 막히는 경우, 즉시 R&D 조직을 대체 소재 개발로 전환하고 미리 확보해 둔 제3국의 우회 공급망을 가동하는 ‘생존 및 전환 전략’을 실행한다.

전통적인 기업은 시나리오 1에 80% 이상의 무게를 두고 계획을 짠 뒤, 시나리오 2가 닥치면 그제야 허둥지둥 대책 회의를 소집한다. 하지만 현명한 기업은 시나리오 2가 발생했을 때 별도의 의사결정 과정 없이 즉각적으로 가동할 수 있는 ‘트리거(Trigger) 포인트’를 설정해 둔다.

예를 들어 환율이 1,450원을 돌파하는 순간, 전사적 비용 절감 모드로 자동 전환한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로열더치쉘(Royal Dutch Shell)이 1970년대 오일 쇼크 당시 경쟁사들보다 빠르게 위기를 극복하고 글로벌 메이저로 도약할 수 있었던 사례는 널리 알려져 있다. 여러 성공 요인이 있었겠지만, 전문가들은 그중에서도 선제적인 시나리오 경영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입을 모은다.

그들은 유가가 배럴당 10달러일 때와 50달러일 때를 모두 가정하고, 그 극단적인 상황 사이에서 조직이 생존할 수 있는 현금 흐름 관리 전략을 미리 훈련했다. 이러한 방식의 시나리오 훈련은 조직의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높이는 대표적인 방법으로 소개된다.

전략적 딜레마와 선택: 효율성(Efficiency) vs 혁신(Innovation)


2026년 전략 수립 과정에서 CEO는 필연적으로 자원 배분의 딜레마에 봉착하게 된다. 기존 사업의 수익성을 극대화하여 곳간을 채울 것인가, 아니면 불확실하지만 미래를 위한 신사업에 과감히 베팅할 것인가. 이 두 가지 선택지를 A안과 B안으로 나누어 심층 비교해보자.

A안: 핵심 사업의 효율화 및 수익성 방어 (Optimization Strategy)

이 전략은 현재의 캐시카우(Cash Cow)를 지키는 데 집중한다. 불필요한 비용을 삭감하고, 공정을 자동화하며, 기존 우량 고객의 이탈을 막는 데 주력한다.

  • 기대 효과: 단기적인 재무 성과(영업이익률)가 즉각적으로 개선되고 리스크가 적다. 경기 침체기에 안정적인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 주주들에게 안정적인 배당을 약속할 수 있다.  

  • 치명적 단점: 시장의 판도가 바뀔 때 도태될 위험이 크다.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가 말한 ‘혁신가의 딜레마’에 빠져, 재무제표는 건전하지만 서서히 침몰하는 배가 될 수 있다.

B안: 디지털 전환 및 신규 비즈니스 모델 발굴 (Transformation Strategy)

AI 도입, 비즈니스 모델의 피보팅(Pivoting), 신시장 개척 등에 가용 자원의 상당 부분을 투입하는 전략이다.

  • 기대 효과: 성공 시 시장을 선점하고 폭발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First Mover Advantage). 기업 가치(Valuation)의 재평가가 이루어지며 인재 유입에 유리하다.  

  • 치명적 단점: 초기 투자 비용이 크고 실패 확률이 높다(High Risk, High Return). 기존 조직의 반발을 살 수 있으며, 캐시카우 사업부의 소외감으로 인한 조직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정답은 무엇일까?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 등에 소개된 여러 연구와 사례를 보면, 장수 기업 상당수가 현재 사업의 효율화와 동시에 미래 혁신을 추구하는 ‘양손잡이 경영(Ambidextrous Management)’을 활용해 온 것으로 나타난다. 즉, A안으로 현재의 밥을 벌면서 동시에 B안으로 미래의 먹거리를 준비하는 고도의 균형 감각이다.

문제는 비율이다. 실무에서 자주 언급되는 경험적 기준은 ‘안정:혁신’ 자원 배분을 7:3 정도로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절대적인 법칙이 아니며, 산업의 특성이나 기업의 성장 단계, 위험 선호도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많은 기업이 7:3을 출발점으로 잡되, 상황에 따라 6:4, 5:5, 심지어 4:6으로 조정한다는 보고가 있다. 2026년 전략의 성패는 우리 조직의 상황에 맞는 이 황금비율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달려 있다.

실무 가이드: ‘죽은 문서’가 아닌 ‘살아있는 전략’을 만드는 3단계


그럴듯한 슬로건이 아닌,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2026년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경영진과 실무자가 즉시 적용해야 할 3단계 프로세스를 제안한다.

1단계: 냉혹한 현실 자각 (Brutal Reality Check)과 데이터 재정의

피터 드러커에게 흔히 귀속되는 말처럼, 경영 현장에는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다”는 통념이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질문은 “제대로 된 것을 측정하고 있는가”이다. 대부분의 기업은 매출과 영업이익이라는 ‘후행 지표(Lagging Indicator)’에만 매몰되어 있다. 이는 운전을 하면서 백미러만 보고 달리는 것과 같다. 2026년 전략에는 반드시 ‘선행 지표(Leading Indicator)’가 포함되어야 한다.

고객의 체류 시간 변화, 신규 기술 도입 속도, 직원 몰입도(Engagement), 브랜드 추천 의향 등 미래의 성과를 예측할 수 있는 지표를 발굴하고 이를 목표로 설정하라. 경쟁사가 무엇을 하느냐보다 우리 고객의 행동이 어떻게 변하고 있느냐를 분석하는 것이 우선이다.

2단계: 고정 예산을 폐기하고 ‘롤링 포캐스트(Rolling Forecast)’ 도입

11월에 확정한 예산을 내년 12월까지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고정 예산제(Fixed Budget)’는 격변의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유물이다. 시장 상황은 분기마다, 아니 월마다 바뀐다. 따라서 분기별, 혹은 반기별로 시장 상황에 맞춰 목표와 예산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롤링 포캐스트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글로벌 테크 기업들은 연간 고정 계획보다 분기·반기 단위 OKR(Objectives and Key Results)과 성과 리뷰를 더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계획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한다. 수정할 수 없는 계획은 계획이 아니라 족쇄다.

3단계: 자원 배분의 과감성 (Dynamic Resource Allocation)

전략의 진정성은 CEO의 신년사가 아니라 예산과 인력의 배치에서 드러난다. 말로는 “AI 전환이 최우선”이라면서, 정작 AI 전담 팀에는 인턴 몇 명과 쥐꼬리만한 예산만 배정하고 있지는 않은가? 전략적 중요도가 높은 프로젝트에는 사내 최고의 에이스 인재와 예산을 몰아주고(Swarming), 중요도가 떨어진 사업은 과감하게 정리(Sunset)하거나 축소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맥킨지(McKinsey)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원을 동태적으로 재배분하는 상위 그룹 기업은 그렇지 않은 하위 그룹보다 연간 총주주수익률(TSR)이 평균 약 30% 더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매년 모든 부서의 예산을 일률적으로 10% 조정하는 식의 ‘나눠 먹기’ 배분은 피해야 할 최악의 수다.

CEO의 역할: 불안을 잠재우고 확신을 심어라


전략 수립의 기술적인 측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리더십의 심리적 측면이다. 불확실한 시기일수록 구성원들은 리더의 입을 바라본다. 이때 리더가 보여야 할 태도는 ‘근거 없는 낙관’이 아니라 ‘냉철한 현실 인식에 기반한 확신’이다.

스톡데일 패러독스(Stockdale Paradox)를 기억하라. 베트남 전쟁 포로 수용소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곧 풀려날 거야”라고 막연히 희망했던 낙관주의자들이 아니라, “현실은 지옥 같지만 결국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버텨낸 현실주의자들이었다.

CEO는 구성원들에게 2026년이 결코 쉽지 않은 해가 될 것임을 솔직하게 공유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가 준비한 시나리오와 전략이 있기에 어떤 파도가 와도 우리는 생존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결론: 파도를 탓하지 말고 서핑을 즐겨라


2026년은 그 어느 때보다 예측하기 힘든 한 해가 될 것이다. 누군가는 이 불확실성을 ‘위기’라 부르며 움츠러들 것이고, 누군가는 판이 흔들리는 ‘기회’로 인식하고 과감하게 승부수를 띄울 것이다. 전략이란 완벽한 지도를 그리는 것이 아니다.

지도가 없는 곳에서도 길을 찾아낼 수 있는 나침반과 식량, 그리고 튼튼한 다리를 준비하는 것이다.

경영진들이여, 책상 앞에서 완벽한 숫자를 맞추려 밤새지 마라. 대신 조직의 감각을 깨우고, 시나리오별 대응 태세를 점검하며, 구성원들에게 강력한 동기를 부여하라. 격변의 파도는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는 재앙이지만, 준비된 서퍼에게는 최고의 놀이터다.

당신의 조직은 지금 파도에 휩쓸릴 것인가, 아니면 그 파도를 타고 비상할 것인가. 이제 펜을 내려놓고 행동으로 답할 시간이다. 당신의 조직에도 이 질문을 던져보라. “우리의 전략은 예측하고 있는가, 아니면 대응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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