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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터널 비전(Carbon Tunnel Vision)을 탈피하라: ‘네이처 포지티브’와 공급망 회복탄력성의 경제학

이들은 위성 데이터와 현장 센서를 활용해 목초지의 건강 상태와 방목 밀도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재생 농업을 통한 생태계 복원과 공급망 회복탄력성 확보에 투자하고 있다. 전 세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패러다임이 거대한 지각 변동을 겪고 있다.

김민경 기자입력 2025년 11월 27일수정 2026년 5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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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어링 그룹(Kering Group)의 지속가능성 담당 임원이 몽골 남부 고비 지역의 캐시미어 생산 현장에서 토양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 = 코리아비즈니스리뷰 DB]
케어링 그룹(Kering Group)의 지속가능성 담당 임원이 몽골 남부 고비 지역의 캐시미어 생산 현장에서 토양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 = 코리아비즈니스리뷰 DB]

이들은 위성 데이터와 현장 센서를 활용해 목초지의 건강 상태와 방목 밀도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재생 농업을 통한 생태계 복원과 공급망 회복탄력성 확보에 투자하고 있다. 전 세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패러다임이 거대한 지각 변동을 겪고 있다.

이들은 위성 데이터와 현장 센서를 활용해 목초지의 건강 상태와 방목 밀도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재생 농업을 통한 생태계 복원과 공급망 회복탄력성 확보에 투자하고 있다.

전 세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패러다임이 거대한 지각 변동을 겪고 있다. 지난 10년이 기업들이 ‘탄소 중립(Net Zero)’이라는 단일 목표를 향해 달려온 ‘탄소의 시대’였다면, 2024년을 기점으로 열리는 새로운 시대는 ‘자연(Nature)’ 그 자체에 주목하고 있다. 이른바 ‘네이처 포지티브(Nature Positive, 자연 긍정)’로의 전환이다. 이는 단순히 탄소 배출을 줄이는 소극적 행위를 넘어, 기업 활동으로 훼손된 자연 생태계를 복원하고 생물다양성(Biodiversity)을 회복시켜, 자연의 손실을 멈추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되돌리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기업들이 여전히 탄소 배출량(CO2eq) 숫자를 줄이는 데에만 몰두하는 ‘탄소 터널 비전(Carbon Tunnel Vision)’에 갇혀 있다. 하지만 기후 위기와 생물다양성 손실은 서로 다른 문제가 아니라, 상호 증폭 작용을 일으키는 ‘이중 위기(Twin Crises)’다.

숲이 사라지면 탄소 흡수원이 사라져 기후 위기가 가속화되고, 기후 위기는 다시 산불과 가뭄을 유발해 숲을 파괴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글로벌 럭셔리 산업의 움직임은 비단 패션업계뿐만 아니라 전 산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구찌(Gucci), 생로랑(Saint Laurent), 발렌시아가(Balenciaga) 등 초거대 브랜드를 거느린 케어링그룹(Kering Group)은 일찍이 이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다.

화려한 런웨이 뒤에 감춰진 공급망의 리스크를 직시한 것이다. 본지는 오늘 케어링 그룹의 선도적인 ‘재생 농업’ 전략과 자연 자본 관리 시스템을 심층 분석하고, 이를 통해 국내 기업들이 스코프 3(Scope 3) 공급망 관리에 있어 벤치마킹해야 할 구체적인 인사이트를 제공하고자 한다.

1. 리스크의 대전환: 왜 지금 ‘자연 자본(Natural Capital)’인가?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24 글로벌 리스크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10년 내 인류가 직면할 가장 큰 위협 상위권에는 ‘극한 기후’와 함께 ‘생물다양성 손실 및 생태계 붕괴’, ‘천연자원 부족’이 랭크되어 있다. 각종 국제 분석에 따르면 전 세계 GDP의 상당 부분(수십 조 달러 규모)이 자연 자본에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의존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자연 훼손은 곧 거대한 경제 손실 리스크로 이어진다는 점이 명확해지고 있다.

기업에게 생물다양성 리스크는 더 이상 환경단체의 구호나 자선 활동(CSR)의 영역이 아니다. 이는 명백한 ‘재무적 중대성(Financial Materiality)’을 가진다.

첫째, 물리적 리스크(Physical Risk)다.

생태계 붕괴는 원자재 조달의 불가능을 의미한다. 커피, 카카오, 목화 같은 농작물은 물론이고,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초순수, 바이오 의약품의 원료가 되는 식물 자원, 2차 전지에 들어가는 광물 자원 채굴 과정까지 모든 산업이 자연에 빚을 지고 있다. 꿀벌이 사라져 수분이 불가능해지면 농업 기반의 공급망은 붕괴된다.

둘째, 전환 리스크(Transition Risk)다.

규제와 시장의 압박이다. 대표적으로 유럽연합(EU)의 ‘삼림벌채방지규정(EUDR)’은 2025년 12월 30일부터 대형·중형 기업을 대상으로 단계적으로 적용되며, 산림을 훼손해 생산된 제품의 EU 시장 유통을 사실상 금지한다. 또한, ‘기업지속가능성 실사지침(CSDDD)’은 공급망 전체의 환경·인권 실사를 의무화했다. 이제 자연을 파괴하는 기업은 유럽이라는 거대 시장을 잃게 되는 것이다.

2. 케어링 그룹의 비밀 무기: 환경 손익계산서(EP&L)의 혁신


케어링 그룹의 ESG 전략이 타 기업과 차별화되는 가장 큰 지점은 ‘측정의 과학화’에 있다. 그들은 2011년부터 업계 최초로 ‘환경 손익계산서(EP&L, Environmental Profit & Loss)’를 도입했다. 이는 기업 활동으로 발생하는 환경적 영향을 단순히 정성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화폐 가치(Monetary Value)’로 환산하여 재무제표처럼 관리하는 획기적인 도구다.

케어링의 EP&L 분석에 따르면 환경 영향의 절대다수가 본사·매장(Tier 0, 1)이 아니라 공급망 상단, 특히 원자재 생산 단계(Tier 4)에 집중되어 있으며, 특히 토지 이용(Land Use) 영향의 경우 그 비용의 90% 이상이 Tier 4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데이터는 케어링에게 명확한 전략적 방향을 제시했다. 매장의 조명을 끄거나 포장지를 바꾸는 것은 상징적일 수는 있어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진짜 문제를 해결하려면 공장이 아닌 ‘땅(Soil)’으로 가야 했다.

3. 땅을 살려야 기업이 산다: ‘재생 농업’과 생태계 복원 전략


데이터에 기반하여 케어링은 2021년, 국제보호협회(Conservation International)와 손잡고 ‘자연을 위한 재생 펀드(Regenerative Fund for Nature)’를 출범시켰다. 이 펀드는 출범 당시 2025년까지 패션 공급망 내 100만 헥타르를 재생 농업으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했고, 2024년 말 기준 약 110만 헥타르가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목표를 초과 달성하는 성과를 보이고 있다.

1) 재생 농업의 핵심 원리: 탄소 배출원에서 흡수원으로 현대의 산업화된 농업은 화학 비료와 살충제, 대규모 기계 경운(밭 갈기)을 통해 토양의 생명력을 앗아갔다. 죽은 땅은 탄소를 저장하지 못하고 대기로 내뿜는다. 반면, 재생 농업은 토양을 살리는 농법이다.

  • 무경운(No-till): 땅을 갈아엎지 않아 토양 내 미생물 네트워크와 균근을 보존한다.

  • 피복 작물(Cover Crops): 휴경기에 땅을 놀리지 않고 클로버 같은 작물을 심어 토양 침식을 막고 질소를 고정한다.

이 방식은 토양의 유기물 함량을 높여 ‘스펀지’처럼 만든다. 건강한 토양은 물을 더 많이 머금어 홍수와 가뭄에 강해지고, 대기 중의 탄소를 땅속으로 끌어들여 저장한다.  

2) 몽골 캐시미어 프로젝트: 공급망 가시성(Visibility)의 확보

케어링은 몽골 남부 고비 지역의 유목민들과 협력하여 지속 가능한 캐시미어 생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위성 및 원격탐사 데이터를 활용해 목초지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방목 밀도와 이동 경로를 과학적으로 설계하여 사막화를 막는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트레이서빌리티(Traceability, 추적성)’다. 케어링은 자사 브랜드 코트에 쓰인 캐시미어가 정확히 어느 유목민 그룹에서 왔는지, 그 지역의 초원 상태는 어떠한지 추적할 수 있다. 이는 소비자 신뢰와 직결될 뿐만 아니라, 기후 재난 시 대체 공급망을 확보하는 데 필수적인 데이터가 된다.

3) 오프세팅(Offsetting)을 넘어 인세팅(Insetting)으로

많은 기업들이 여전히 외부 배출권 구매(오프세팅)에 의존하는 반면, 케어링은 가치사슬 내부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인세팅 비중을 크게 높이며 공급망 회복탄력성과 생태계 복원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협력 농가에 자금을 지원하고 기술을 교육하여 저탄소 농법을 도입하게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공급망 안보를 위한 ‘투자’다.

4. 대한민국 기업을 위한 심층 제언: TNFD와 3단계 실행 로드맵


한국 기업들, 특히 제조업 중심의 국내 산업계는 공급망 관리에 있어 여전히 1차 협력사(Tier 1) 관리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글로벌 규제와 투자자들의 요구(TNFD)는 공급망의 최상단, 즉 원자재가 채굴되고 재배되는 현장까지 들여다볼 것을 요구한다.

[Insight] 실무자를 위한 3단계 액션 플랜

STEP 1. 자연 관련 의존도 및 영향 매핑 (Locate & Evaluate)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 회사의 비즈니스가 자연에 어디서,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 TNFD(자연 관련 재무 정보 공개 협의체)의 LEAP 접근법을 활용하라. (Locate-Evaluate-Assess-Prepare).

  • ENCORE와 같은 글로벌 데이터베이스 툴을 사용하여, 우리 공급망의 주요 거점(공장, 광산, 농장)이 ‘물 부족 지역’이나 ‘생물다양성 핫스팟’에 위치해 있는지 1차 스크리닝을 수행해야 한다.

STEP 2. 공급망 추적성 확보와 데이터의 디지털화 (Traceability)

이제는 "협력사가 알아서 하겠지"라는 태도로는 불가능하다.

  • 원자재의 원산지 정보(Country of Origin)를 넘어, 구체적인 위성 좌표(Geolocation) 데이터가 필요하다.

  • EU를 중심으로 배터리 여권, 섬유 여권 등 디지털 제품 여권 제도가 도입·확산되고 있어, 향후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비해 블록체인이나 AI 기반의 공급망 관리 솔루션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

STEP 3. 파일럿 인세팅 프로젝트와 파트너십 구축 (Act)

모든 공급망을 한 번에 바꿀 수는 없다. 가장 리스크가 크거나 상징성이 큰 원자재 하나를 선정하여 파일럿 프로젝트를 시작하라.

  • 예를 들어, 식품 기업이라면 특정 작물 계약 재배 농가에 스마트 팜이나 토양 개량제를 지원하는 인세팅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다.

  • 이러한 노력은 단순한 기부(Philanthropy)가 아니라, 공급망 안보를 위한 R&D 투자로 분류되어 정량화되어야 한다.

 

 

결론: 지속가능성은 비용(Cost)이 아니라 자산(Asset)이다


케어링 그룹의 프랑수아 앙리 피노 회장은 "지속가능성은 럭셔리의 새로운 품질 기준"이라고 정의했다.

최고급 가죽 가방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것이 아마존 밀림을 불태운 목장에서 나온 가죽이라면 더 이상 럭셔리가 아닌 ‘리스크’ 덩어리일 뿐이다.

이제 ‘네이처 포지티브’는 글로벌 비즈니스의 새로운 문법이다. 탄소 터널 비전에서 벗어나 자연이라는 거시적인 관점을 가질 때, 기업은 보이지 않던 리스크를 발견하고 새로운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

흙 속의 미생물부터 위성 데이터까지, 공급망의 처음과 끝을 연결하고 관리하는 역량이 미래 기업의 생존을 결정지을 것이다.

한국의 기업 실무자들은 이제 엑셀 속의 탄소 숫자를 넘어, 그 숫자가 만들어지는 현장, 즉 ‘자연’으로 시선을 과감히 돌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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