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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회장이 그리는 '뉴삼성'의 진짜 밑그림: '초격차'를 넘어 '초월적 인내'로

2014년 5월, 이건희 선대회장이 쓰러진 이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은 사실상 삼성을 이끌어왔다. 그리고 2022년 10월, 공식적인 회장직에 오르기까지 그가 감내해야 했던 시간은 '사법 리스크'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이지영 기자입력 2025년 11월 14일수정 2026년 5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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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본사 전경. 이재용 회장의 '뉴삼성' 비전 아래, 삼성은 반도체 초격차와 바이오를 핵심 동력으로 삼아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고 있다. [사진 = 삼성전자 홈페이지 캡처]
삼성전자 본사 전경. 이재용 회장의 '뉴삼성' 비전 아래, 삼성은 반도체 초격차와 바이오를 핵심 동력으로 삼아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고 있다. [사진 = 삼성전자 홈페이지 캡처]

2014년 5월, 이건희 선대회장이 쓰러진 이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은 사실상 삼성을 이끌어왔다. 그리고 2022년 10월, 공식적인 회장직에 오르기까지 그가 감내해야 했던 시간은 '사법 리스크'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2014년 5월, 이건희 선대회장이 쓰러진 이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사실상 삼성을 이끌어왔다. 그리고 2022년 10월, 공식적인 회장직에 오르기까지 그가 감내해야 했던 시간은 '사법 리스크'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총수'의 이미지는 화려한 경영 전략 발표나 신사업 선포보다는 법정을 오가는 모습으로 더 익숙했다.

이로 인해 시장은 이재용 회장의 경영 철학이나 비전에 대해 "보이지 않는다" 혹은 "선대회장에 비해 약하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던 이건희 회장의 강력한 카리스마와 '프랑크푸르트 선언' 같은 충격 요법에 기반한 '위기경영'에 익숙했던 이들에게, 이재용 회장의 조용한 행보는 낯설었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의 행적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그 '조용함' 속에 삼성이라는 거대 함선을 다음 시대로 이끌기 위한 명확한 항로 수정과 치밀한 전략이 숨어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세상에 없는 인사이트'를 찾는 경영자들에게, 특히 선대의 거대한 성공을 이어받아 '포스트 창업자(Post-Founder)' 시대를 이끌어야 하는 2세대, 3세대 리더들에게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이재용 회장의 경영은 '위기 선포'가 아닌 '실용주의(Pragmatism)'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로 요약된다.

'선택과 집중'을 넘어선 '전략적 덜어냄' (Strategic Subtraction)


이재용 회장이 실질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선 2014년 하반기, 그의 첫 번째 승부수는 '확장'이 아닌 '축소'였다.

삼성은 2014년 11월 삼성테크윈(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과 삼성탈레스(현 한화시스템), 삼성종합화학(현 한화솔루션)과 삼성토탈(현 한화토탈) 등 방산·화학 계열사를 한화그룹에 매각하는 '빅딜'을 단행했다. 이듬해에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2015년)을 진행했고, 삼성SDI의 케미칼 사업부, 삼성정밀화학 등도 롯데그룹에 매각했다.

당시 이 결정은 시장에 큰 충격을 주었다. 특히 방산과 화학은 그룹의 역사와 함께해왔으며 당장 수익을 내는 '알짜' 사업부였다. 이를 매각한다는 것은 '문어발식 확장'에 익숙했던 재계의 관행을 깨는 파격이었다.

여기서 첫 번째 경영인사이트가 도출된다. 이는 단순한 '선택과 집중'이 아니다.

'선택과 집중'이 유망 사업을 '선택'하는 것에 방점이 찍힌다면, 이재용의 방식은 비주력 사업을 과감히 '덜어내는(Subtraction)'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조직에 '우리가 진짜 잘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삼성의 정체성을 전자, 금융, 그리고 바이오라는 세 개의 기둥으로 명확히 재정의한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기에 모든 것을 잘하려는 '백화점식 경영'의 함정에서 벗어나, 가장 잘할 수 있는 핵심 역량에 모든 자원을 집중시키겠다는 실용주의적 선언이었다. 이는 성장의 정체기에 들어선 많은 대기업 리더들에게 고통스럽지만 반드시 필요한 '전략적 덜어냄'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M&A의 역설: 하만(Harman) 이후의 '전략적 인내'와 '소규모 탐색'


이재용 회장의 '덜어냄' 전략이 무조건적인 축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2016년, 한국 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인 80억 달러(약 9조 4천억 원)를 투입해 미국의 전장·오디오 전문기업 하만(Harman)을 인수했다. 이는 삼성이 '반도체'와 '스마트폰'을 넘어 '자동차 전장'이라는 새로운 거대 시장으로 본격 진출하겠다는 신호탄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하만' 인수 이후 삼성'대형' M&A 시계는 한동안 멈춘 듯 보였다. 2024년 기준 100조 원이 넘는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SK하이닉스가 인텔의 낸드 사업부를 인수하고,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천문학적인 M&A 전쟁을 벌이는 동안에도 삼성은 이례적인 '침묵'을 지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기서 두 번째 경영인사이트'전략적 인내'가 드러난다.

시장은 "왜 M&A를 하지 않느냐"고 조바심을 냈지만, 이는 '무관심'이나 '무능'이 아니었다. 오히려 2010년대 후반부터 격화된 미중 무역분쟁, 코로나19 팬데믹, 그리고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GSC)의 급격한 재편 속에서 섣부른 M&A가 오히려 '승자의 저주'가 될 수 있음을 간파한 것이다.

그렇다고 M&A가 '완전히 중단'된 것은 아니었다.

삼성은 내부적으로 AI, 팹리스, 로봇 등 미래 기술 분야의 유망 스타트업에 대한 소규모 전략적 투자와 인수(Acqui-hire)는 꾸준히 지속해왔다.

2025년에 들어서는 그룹 내 M&A 전담팀을 신설하고 조직을 재정비하는 등, 대형 인수 재개를 위한 움직임도 관측되고 있다.

이는 막대한 현금 보유(Cash King)를 통해 불확실성 시대의 '방패'를 확보하는 동시에, 시너지가 확실하지 않은 대형 M&A 대신 '본원적 경쟁력' 강화와 '타이밍'을 기다리는 극단적 실용주의의 발현이다.

리더는 '무언가를 하는 것(Buying)'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Waiting)' 역시 중요한 전략적 결정임을 인지해야 한다.

'총수의 부재'를 견디는 시스템: '위기경영'에서 '본원적 경쟁력' 경영으로


이재용 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사법 리스크' 속에서의 경영이다. 그는 2017년 국정농단 사태로 구속된 이후 수년간 재판과 수감 생활을 반복했다.

선대 이건희 회장이 '위기'를 외부에서 의도적으로 주입하며 조직의 긴장을 이끌어냈다면(예: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재용 회장은 '총수의 부재'라는 실재하는 거대한 '위기' 속에서 경영을 지속해야 했다.

놀라운 점은, 총수의 부재라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도 삼성은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삼성의 심장인 반도체 부문에서 투자는 일관되게 이어졌다.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산기지인 평택캠퍼스(P1, P2, P3, P4) 건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되었다.

여기서 세 번째 경영인사이트가 나타난다.

이재용 회장은 카리스마 넘치는 '1인 리더'가 아닌, 리더가 부재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시스템(System)'을 구축하는 데 집중했다. 이는 '나 없이도 돌아가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 리더의 진정한 역량임을 보여준다. 그의 '현장 경영'은 임직원을 '통제'하기 위함이 아니라, 현장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존중하고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조율자(Coordinator)' 역할에 가까웠다.

이는 조직문화 측면에서도 중요한 변화를 야기했다. 삼성은 2022년 '수평적 조직문화'를 위해 기존의 직급 체계를 단순화하고 '님' 호칭을 도입하는 등 유연한 문화를 이식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것은, '관리의 삼성'이라는 과거의 경직된 이미지를 벗고, 본원적 경쟁력인 R&D와 기술력이 시스템을 통해 자발적으로 발현되도록 하기 위한 포석이다. 리더의 역할은 '지시'가 아니라 '조성'에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뉴삼성'의 두 기둥: 반도체 초격차와 '제2의 신화'를 향한 바이오


이재용 회장이 그리는 '뉴삼성'의 미래는 명확하다. 바로 '초격차' 반도체와 '미래 먹거리' 바이오다.

첫째, 반도체는 '지키는 것'과 '추격하는 것'의 이중 전략이다.

메모리 반도체 1위의 '초격차'는 더욱 공고히 하되, 상대적으로 약했던 시스템 반도체(비메모리), 특히 파운드리(Foundry) 분야에서 TSMC를 따라잡기 위한 '반도체 비전 2030'을 선언했다.

이는 당장의 수익성(메모리)에 안주하지 않고, 더 어렵고 긴 호흡이 필요한(파운드리) 분야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감행하는 '양손잡이 경영(Ambidextrous Management)'의 전형이다.

둘째, 바이오이재용 회장의 '전략적 인내'가 빚어낸 '현재 진행형' 성과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로 대표되는 바이오 사업은 2010년 이래 10년 이상 막대한 투자가 이어졌음에도 '언제 돈을 버느냐'는 비판에 직면했었다. 하지만 이 회장은 뚝심 있게 투자를 밀어붙였다.

그 결과,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단일 공장 기준 세계 최대 규모의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로 성장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mRNA 백신 생산기지 역할을 수행하며 그 전략적 가치를 증명했다.

다만, 이는 '반도체 신화'의 완성이 아닌, '재현을 위한 성공적 기반'을 다진 것으로 평가해야 한다. 반도체가 메모리 시장에서 보여준 압도적 지배력에 비견하기에는, 바이오 산업 전체(신약 개발 등)에서 삼성의 위치는 아직 '제2의 성장 동력'을 확보해 나가는 '진행형' 과제다. 이는 반도체 성공 신화를 바이오에서 재현하겠다는 장기적 목표를 향한 뚝심 있는 투자의 '중간 성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여기서 마지막 경영인사이트가 나온다. 진정한 혁신은 단기적 성과가 아닌, 10년, 20년을 내다보는 '장기적 비전'과 그것을 감내하는 '초월적 인내'에서 나온다.

이재용 회장은 '총수의 리스크'를 '시스템'으로 방어하고, '대형 M&A'의 유혹을 '인내'로 견디며 확보한 자원을 '반도체'와 '바이오'라는 두 개의 거대한 기둥에 집중시켰다.

결론: '이재용의 삼성'이 던지는 질문: 지속가능한 거인의 조건


이재용 회장의 경영은 선대 회장의 '위기경영'이나 '카리스마'와는 분명히 다르다.

그의 방식은 화려한 선언 대신 묵묵한 '실용주의'를, 즉각적인 반응 대신 '전략적 인내'를, 1인 영웅주의 대신 '시스템 경영'을, 그리고 무분별한 확장 대신 '전략적 덜어냄''핵심 집중'을 택했다. 이는 삼성이라는 거대 기업이 21세기 글로벌 격변기에서 '지속가능한 거인'으로 남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체질 개선'의 과정이다.

이재용 회장의 리더십은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위기'와 '기회' 속에서 거대한 조직을 이끌고 있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리더, 정책입안자, 그리고 미래의 경영자들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화려한 '더하기'에 집착하고 있는가, 아니면 고통스럽지만 본질적인 '덜어냄'을 감행하고 있는가? 당신은 단기적 성과에 조급해하는가, 아니면 10년 뒤를 위한 '전략적 인내'를 실천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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