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의 안개가 시장을 짙게 뒤덮은 현 시대에, 매 분기 단기 성과를 압박받는 CEO와 임원진의 어깨는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
이러한 압박 속에서 그들은 '게임 체인저'가 될 화려한 한 방, 즉 '묘수(妙手)'를 찾아 헤매는 것을 일상으로 삼고 있으며, 파괴적 혁신, 대규모 M&A, 혹은 시장을 뒤흔들 신기술 도입만이 조직의 유일한 생존 전략처럼 여기는 경향이 뚜렷하다.
하지만 경영 현장과 학계에서는 이 '묘수'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이 오히려 조직의 근간을 흔드는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는 마치 바둑에서 화려한 공격(묘수)에만 치중한 나머지, 정작 자신의 '집(영토)'을 견고히 지키지 못해 결국 대마(大馬)가 잡히는 하수(下手)의 우를 범하는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경영의 본질은 이처럼 바둑의 원리와 깊숙이 맞닿아 있으며, "바둑 한 수가 모여 집이 된다"는 오래된 격언은 오늘날의 경영 전략에 핵심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위대한 기업은 결코 단 하나의 '결정적 한 수'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전략적 방향성이라는 청사진 아래 매일같이 묵묵히 두어지는 수많은 '정수(正手)'들이 축적되어 이룬 견고한 '집'의 결과물인 것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 C레벨 리더들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화려한 묘수를 좇는 조급함이 아니라, 묵묵히 '집'을 짓는 고수(高手)의 장기적 경영 전략이다.
'화려한 묘수'의 함정, 왜 기본을 망각하는가?
경영 환경의 복잡성이 고조될수록, 리더들은 역설적으로 '단순한 해법'을 갈망하게 되는데, 이는 조직의 모든 난제를 한 번에 해결해 줄 '묘수'를 좇는 이른바 ‘실버 불릿(Silver Bullet)’ 신드롬으로 발현된다. 그러나 이러한 단발적이고 화려한 접근은 조직을 위험에 빠뜨리는 세 가지 치명적인 함정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는 자원의 왜곡된 배분이다.
조직의 한정된 자원, 즉 시간과 인력, 그리고 자본이 검증되지 않은 '대박' 프로젝트에 편중되어 집중되면서, 정작 기업의 생존 기반인 핵심 비즈니스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일상적인 운영을 개선하는 '기본기'가 심각하게 방치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둘째는 조직 문화의 황폐화다.
묘수 중심의 조직은 단기 성과를 낸 '영웅'을 숭배하는 반면, 실패에 대한 극심한 공포가 조직 전반을 지배하게 만든다. 이처럼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문화 속에서 구성원들은 안정적인 '집 짓기'를 위한 노력을 포기하고, 위험천만한 '묘수'에만 매달리거나 혹은 아예 시도 자체를 포기하는 극단적인 방어적 태도를 취하게 된다.
셋째는 지속가능성의 상실이다.
노사이트(Innosight)와 같은 유수의 연구기관들이 발표하는 조사 결과는 S&P 500 기업의 평균 수명이 지속적으로 단축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는 수많은 기업이 단기적 성공이라는 '묘수'에 취한 나머지, 장기적 생존, 즉 '집 짓기'를 위한 본질적인 변화와 적응에 실패하고 있음을 강력히 방증한다.
짐 콜린스(Jim Collins)가 그의 저서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에서 강조한 '플라이휠(Flywheel)' 개념 역시 이러한 맥락과 정확히 일맥상통한다.
콜린스에 따르면, 위대한 기업은 단 한 번의 극적인 묘수로 탄생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 일관된 전략적 방향으로 거대한 플라이휠을 묵묵히 돌리는 지난한 과정, 즉 수많은 '한 수'가 누적되어 비로소 폭발적인 성과를 견인하는 '집 짓기'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바둑판과 경영, '집'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바둑에서 '집'이란 단순히 돌로 둘러싼 빈 공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상대가 감히 넘볼 수 없는 견고한 '세력'을 상징하며, 승리를 담보하는 '확정가'이자,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을 때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최후의 '근거지'를 의미한다.
이를 경영의 영역에 대입해 본다면, 기업의 '집'이란 다름 아닌 핵심 경쟁력(Core Competence)이자 경쟁사가 쉽게 무너뜨릴 수 없는 강력한 경쟁 우위(Competitive Moat) 그 자체다. 이는 강력한 브랜드 로열티일 수도, 대체 불가능한 독점적 기술력일 수도 있으며, 혹은 모방하기 힘든 고유의 조직 문화나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모델일 수도 있다.
반면 '한 수'란, CEO와 임원진이 매일같이 내리는 모든 전략적 의사결정을 뜻한다.
어떤 인재를 채용하고 어떻게 육성할 것인지, 한정된 자본을 어느 사업부에 우선 배분할 것인지, 수많은 고객의 불만 중 어떤 것에 먼저 집중하여 서비스를 개선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파트너와 협력하여 생태계를 구축할 것인지 등, 이 모든 일상적이고 때로는 사소해 보이는 결정 하나하나가 모여 결국 기업이라는 '집'의 전체 크기와 견고함을 결정짓는 것이다.
진짜 문제는 대부분의 리더가 자신이 두는 '한 수'가 조직의 '집 짓기'라는 거대한 청사진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결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이들은 당장의 성과를 위한 부분 최적화에 매몰된 나머지, 정작 기업 전체의 '집'이 비효율적으로 지어지거나 심지어 그 기반이 무너지고 있는 심각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우를 범한다.
A/B 시나리오: '묘수(妙手) 중심' 조직 vs '집 짓기' 조직
그렇다면 CEO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두 가지 상반된 전략적 선택지를 비교 분석함으로써 리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점검해 본다.
A 시나리오: '묘수(妙手) 중심'의 공격적 조직을 선택한 리더는 항상 '다음 먹거리'와 '혁신적 파괴'를 외친다.
이 조직의 전략 방향은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문샷(Moonshot)' 프로젝트나 시장을 뒤흔들 대형 M&A를 선호하는 데 맞춰진다. 시장 점유율을 단번에 역전시킬 신기술 개발에 전사적 역량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조직의 운영 방식은 소수의 스타 플레이어, 즉 '영웅'에게 과도한 권한과 보상을 집중시키며, 단기 성과 목표 달성을 위해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와 치열한 내부 경쟁을 용인한다.
이 전략의 장점은 만약 성공할 경우, 시장의 판도 자체를 바꾸는 '퀀텀 점프'가 가능하다는 데 있다. 하지만 그 단점은 치명적이다.
실패 시 감수해야 할 리스크가 막대하며, '모 아니면 도' 식의 접근은 조직의 안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설사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조직 전체가 공황에 빠지기 쉽고, 기적적으로 성공하더라도 그 성과를 유지하고 발전시킬 '기초 체력', 즉 운영 역량이 부족하여 모든 것이 사상누각이 될 위험이 크다.
B 시나리오: '집 짓기' 중심의 견고한 조직을 선택한 리더는 '지속가능성'과 '점진적 개선'의 가치를 무엇보다 강조한다.
이 조직의 전략 방향은 화려한 신사업보다는 기존 핵심 비즈니스의 경쟁력을 끊임없이 강화하는 데 자원을 우선 배분한다.
린(Lean) 방식이나 카이젠(Kaizen)과 같은 점진적 혁신 철학을 바탕으로, 비효율적인 프로세스를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고객 만족도를 높이는 데 집중한다. 조직의 운영 방식 역시 개인의 역량보다는 시스템과 프로세스에 기반하여 안정적으로 운영된다.
예컨대 갤럽(Gallup)의 Q12 조사 등에서 그 중요성이 강조되는 '구성원 몰입'과 '심리적 안정감'을 조직 문화의 핵심으로 삼으며, 투명한 협업과 지식 공유를 장려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재를 육성한다. 이러한 전략의 장점은 조직이 안정적이며 외부 충격에 대한 회복탄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시장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으며, 꾸준한 성과 개선을 통해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다. 반면 단점은 단기간에 폭발적인 성과를 내기 어렵고, 때로는 외부의 시각에서 '지루하고' '혁신이 부족하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KBR경영연구소가 분석한 결과, 수많은 성공한 CEO들은 압도적으로 B 시나리오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물론 그들은 '묘수'의 유혹을 경계하면서도, B(핵심 사업의 안정)를 기반으로 A(신규 사업의 탐색)의 기회를 탐색하는 '양손잡이 경영(Ambidextrous Organization)'을 능숙하게 구사했다. 즉, 그들은 견고한 '집'이 확보되어야만 비로소 묘수를 시도할 '여력'도 생긴다는 것을 본질적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CEO가 지금 당장 '포석'해야 할 5가지 전략
그렇다면 CEO는 '집 짓기' 경영 전략을 위해 지금 당장 바둑판에 어떤 '포석(布石)'을 두어야 하는가? 실무적으로 즉시 적용 가능한 5가지 핵심 전략을 제안한다.
첫째는 전략적 명료성(Strategic Clarity)을 확보하고 '집'의 청사진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는 '집 짓기'의 가장 중요하고도 시급한 첫 수다. 우리 회사가 궁극적으로 짓고자 하는 '집'이 무엇인지, 즉 조직의 미션과 비전, 그리고 핵심 가치를 명확하게 정의해야 한다.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명확한 청사진을 조직의 최말단 구성원까지 명확히 이해하고 깊이 동의하도록 끊임없이, 그리고 진정성 있게 소통해야 한다. 이 청사진이 확립되어야만 비로소 조직의 모든 '한 수', 즉 모든 의사결정이 이 청사진에 부합하는지 여부로 판단될 수 있는 강력한 기준이 선다.
둘째는 '돌'과 '돌'을 연결하는 프로세스의 고도화(Process Refinement)다.
바둑에서 개별의 돌들이 연결되지 못하고 따로 노는 '비효율'이 패배로 직결되듯, 경영 역시 마찬가지다.
부서 간의 견고한 사일로(Silo)를 허물고, 조직 내 정보가 막힘없이 원활하게 흐르며, 의사결정이 군더더기 없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는 '프로세스'를 반드시 구축해야 한다. 이러한 시스템은 거창한 구호가 아닌, 일상적인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작은 개선'에서 시작된다.
이미 검증된 도요타의 사례처럼, 현장의 가장 작은 문제점이라도 즉시 공유하고 전사적으로 개선하려는 문화가 정착될 때, 이는 조직이라는 '집'을 지탱하는 가장 견고한 기둥이 된다.
셋째는 '집'을 지을 사람, 즉 '인재 밀도(Talent Density)'에 투자하는 것이다.
모든 견고한 집은 결국 양질의 재료로 지어지는 법이며, 기업에서 그 재료는 단연 '인재'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단순히 외부의 '스타 플레이어'를 비싼 값에 영입하는 것을 넘어, 조직의 청사진에 깊이 공감하고 함께 '집'을 지어갈 헌신적이고 역량 있는 인재들의 '밀도'를 높이는 것이다. 이는 단기적인 채용 전략뿐만 아니라, 기존 구성원들의 잠재적 역량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성장시키는 장기적 인재 육성 시스템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
넷째는 '집'의 주인이 원하는 곳에 짓도록 하는 '고객 집착(Customer Obsession)'이다.
아무리 웅장하고 훌륭한 집을 지었다 한들, 그 집의 주인인 고객이 외면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의 '집', 즉 우리가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가 고객의 어떤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있으며,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가치를 제공하고 있는지 시장의 최전선에서 끊임없이 확인해야 한다.
고객의 가장 사소한 피드백이라도 겸허히 수집하고 데이터로 분석하여 '다음 한 수'에 즉각 반영하는 이 과정이야말로, '집 짓기'의 방향을 잃지 않게 하는 가장 중요한 나침반이다.
다섯째는 우리가 둔 '수'들을 냉철하게 평가하는 데이터 기반 '복기(復棋)'다.
모든 바둑 고수들은 대국이 끝나면 승패와 관계없이 반드시 '복기'의 시간을 갖는다. 자신이 둔 수와 상대가 둔 수를 처음부터 다시 놓아보며 잘한 점과 치명적인 실수를 분석한다. 경영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CEO는 과거에 내린 주요 의사결정, 즉 우리가 둔 '수'들이 실제로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직감이나 변명이 아닌 객관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냉철하게 '복기'해야 한다. 특히 성공한 '묘수'의 요인을 분석하는 것보다, 실패한 '악수(惡手)'의 원인을 철저히 분석하여 이를 조직의 학습 자산으로 삼는 문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결론: 당신의 '한 수'가 조직의 '집'을 만든다
시장은 여전히 불확실성의 안개에 휩싸여 있고, 생존을 위한 경쟁은 나날이 치열해지고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묘수'에 대한 유혹은 앞으로도 계속, 어쩌면 더욱 강하게 리더들을 흔들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리더는 그 거센 유혹 속에서도 '집 짓기'라는 경영의 본질적인 중요성을 결코 잊지 않는다.
경영은 결승점이 정해진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끝없이 이어지는 치열한 바둑 대국과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대국의 최종 승리는 언제나 화려한 묘수 한 방이 아니라, 묵묵히 쌓아 올린 견고한 '집'에서 나온다.
CEO와 임원진은 매일 자신이 무심코 두는 '한 수'가 과연 10년 뒤, 20년 뒤 우리 조직의 '집'을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엄중히 자문해야 한다.
오늘 당신의 조직이 놓은 그 '한 수'는 과연 10년 뒤 어떤 모습의 '집'을 만들고 있는가?
지금 당장 당신 조직의 모든 전략을 '집 짓기'라는 근원적인 관점에서 재점검하고, 견고한 미래를 위한 '정수(正手)'를 묵묵히 두기 시작하라.

![한 기업의 CEO와 임원이 바둑을 두며, 전략을 고민하고 있는 모습. 기업의 승부는 한 수의 화려함이 아니라 견고한 ‘집’에서 결정된다. [사진 = 코리아비즈니스리뷰 DB]](https://epzvqcvbpcduaglyoici.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news-images/legacy-cgi/2025/11/05/1762303044_5727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