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가 격동하는 세계 경제의 한복판에서 '지속가능한 내일'을 향한 중대한 이정표를 세웠다. 최근 대한민국 경주에서 막을 내린 2025 APEC 정상회의는 '경주선언(Gyeongju Declaration)'의 만장일치 채택으로 그 정점을 찍었다.
'지속가능한 내일을 만드는 우리의 길(Building a Sustainable Tomorrow)'이라는 주제 아래, 21개 회원국 정상들은 연결(Connectivity), 혁신(Innovation), 번영(Prosperity)이라는 3대 핵심 축에 기반한 공동의 미래 청사진에 합의했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다. 전례 없는 지정학적 긴장, 팬데믹 이후 재편되는 글로벌 공급망, 그리고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 위기 속에서, APEC이 인공지능(AI)이라는 강력한 엔진을 장착하고 지구(환경) 문제 해결을 위한 상호협력의 고삐를 바짝 죄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다.
코리아비즈니스리뷰 심층분석에서는 이번 경주선언의 핵심 의제인 AI, 지구(환경), 그리고 상호협력의 내용을 심층 분석한다.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APEC
APEC은 지난 수십 년간 역내 무역 자유화와 경제 통합을 이끌며 세계 성장의 엔진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지금 아태지역이 직면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미·중 갈등으로 대표되는 지정학적 긴장은 글로벌 공급망의 불안정성을 키웠고,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회원국 간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라는 새로운 불평등을 야기했다.
여기에 기후 변화는 더 이상 미래의 위협이 아닌, 당장의 현실적 피해로 다가왔다.
2023년 샌프란시스코 APEC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골든 게이트 선언'이 지속가능성과 포용성, 회복력 있는 미래를 강조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그리고 2025년 경주선언은 이러한 논의를 한층 더 구체화하고 실행력을 담보하기 위한 로드맵을 제시한 것이다. 특히 AI 기술의 폭발적인 성장은 APEC에게 위기이자 기회로 작용했으며, 이를 어떻게 활용하고 규제할 것인지가 핵심 화두로 떠올랐다.
'경주선언'의 3대 축: AI, 지구, 그리고 연결
이번 경주선언의 3대 축인 '혁신', '번영', '연결'은 사용자가 주목한 AI, 지구(환경), 상호협력의 의제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APEC은 이 세 가지 요소를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아태지역의 복합 위기를 돌파하려 한다.
1. 혁신(Innovation): AI 주도 디지털 전환과 격차 해소
가장 주목받은 분야는 단연 '혁신'이다. APEC은 AI와 디지털 기술을 통한 생산성 향상과 혁신 생태계 구축에 공동으로 협력하기로 했다. 이는 APEC 역사상 최초로 채택된 'AI 이니셔티브'에 명확히 드러난다.
주요 내용은 AI 기술의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으며 포용적인 활용을 위한 원칙을 공유하고, AI가 가져올 경제·사회적 변화에 공동 대응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특히 미국과 중국만의 'AI 리그'로 고착화될 경우 나머지 국가들이 '디지털 소외'를 당할 수 있다는 우려(2025년 APEC 재무·구조개혁장관회의)가 컸던 만큼, 이번 이니셔티브는 역내 디지털 격차 해소에 방점을 찍었다.
구체적인 움직임도 포착된다. 아마존웹서비스(AWS)는 2028년까지 APEC 14개 경제체에 400억 달러(약 52조 원) 이상을 투자해 AI 에이전트 확산에 나서겠다고 밝혔으며, 한·미 양국은 이번 정상회의를 계기로 AI, 양자, 바이오 분야에서 포괄적 협력을 강화하는 '기술번영협정(TPD)'을 체결, 공동 AI 생태계 조성에 합의했다. 이는 APEC 회원국 간 양자 협력이 다자 협력의 기반이 되는 선순환 구조를 보여준다.
2. 번영(Prosperity): 기후 위기 대응과 지속가능한 성장
'번영'의 축은 '지구(환경)' 문제와 직결된다. APEC 정상들은 기후 위기가 역내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임을 재확인하고, 에너지와 식량 안보 강화 및 기후 위기 공동 대응을 '번영'의 핵심 의제로 다뤘다.
이는 2024년 페루에서 열린 APEC 기후심포지엄의 논의가 확장된 것이다. 당시 APEC 기후센터(APCC)는 엘니뇨/라니냐 현상(ENSO) 대응을 통한 '지속가능하고 회복력 있는 사회 구현'을 주제로 기후 정보의 활용 극대화를 논의했다.
이번 경주선언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청정 및 저탄소 수소 정책지침' 채택을 통해 수소 에너지 공급망 협력을 강화하는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됐다.
또한 원전, 재생에너지와 같은 무탄소 에너지원(CFE)을 활용한 탄소 중립 달성 방안이 심도 있게 논의되며, 아태지역의 '녹색 전환(Green Transition)'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한국과 페루가 체결한 기후변화 협력 협정처럼, 회원국 간의 양자 협력이 APEC 전체의 기후 대응 역량을 끌어올리는 동력이 될 것이다.
3. 연결(Connectivity): 공급망 재편과 상호협력 강화
'연결'은 '상호협력'을 위한 물리적, 제도적 기반이다. APEC은 공급망 불안과 기술 격차의 도전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무역·투자 자유화 원칙을 재확인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전자상거래 활성화와 종이 없는 무역(e-document) 확대 등 디지털을 통한 연결성 강화다. 이는 팬데믹을 거치며 중요성이 부각된 디지털 무역 규범을 APEC 차원에서 선도하겠다는 의미다.
또한, 역내 경제 통합과 '아태 자유무역구(FTAAP)' 건설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며,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이념 아래 상호보완적인 협력의 케이크를 키우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이는 단순히 물류를 연결하는 것을 넘어, 데이터와 기술, 인재가 자유롭게 교류하는 더 높은 수준의 경제 공동체를 지향함을 보여준다.
한국이 제안한 'APEC 인구구조 공동대응 프레임워크' 역시 저출생, 고령화라는 공통의 사회 문제에 상호협력으로 대응하자는 새로운 '연결'의 시도다.
빅테크의 참전과 APEC의 응답
이번 APEC 회의는 정부 주도를 넘어 민간 부문, 특히 빅테크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돋보였다.
아마존웹서비스(AWS)의 400억 달러 투자 계획은 APEC 역내 AI 인프라 구축과 생태계 확산에 대한 민간의 기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맷 가먼 AWS CEO는 APEC CEO 서밋에서 "AI 에이전트의 대규모 확산을 위해 APEC 경제체에 대한 투자를 결정했다"고 밝혔으며, 이는 APEC 회원국들이 AI 기술을 활용한 산업 혁신에 더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이는 APEC 회원국 기업들에게도 새로운 전략을 요구한다. 단순히 AI 기술을 도입하는 것을 넘어, AWS와 같은 글로벌 플랫폼과의 협력을 통해 AI 풀스택(full stack) 수출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공동의 데이터셋을 개발하는 등 보다 능동적인 전략이 필요해졌다.
KBR Insight: AI 혁신과 포용,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과제
이번 2025 경주선언은 APEC이 'AI와 환경'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정면으로 응답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특히 'AI 이니셔티브'의 채택은 기술 패권 경쟁의 장이 아닌, '협력과 공동 번영'의 플랫폼으로서 APEC의 정체성을 재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선언이 현실이 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가장 큰 과제는 'AI 격차(AI Divide)'의 해소다. 미국과 중국을 위시한 소수 국가가 AI 기술을 독점하고, 나머지 국가들이 종속되는 시나리오를 방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 APEC은 AI 윤리 기준을 마련하고, 중소기업과 개발도상국 회원국들의 AI 역량 강화를 위한 실질적인 교육 및 인프라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해야 한다.
또한, 기후 대응을 위한 '청정 수소' 개발 역시 막대한 자본과 기술 이전을 필요로 한다. 선진국들의 기술 공유와 개도국들의 규제 완화가 상호 시너지를 내야만 '지속가능한 번영'이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APEC의 미래는 AI와 환경이라는 두 날개를 얼마나 균형 있게 펼치느냐에 달려있다.
향후 전망 및 시사점: AI와 환경, '두 마리 토끼' 잡는 아태지역의 미래
2025 APEC 경주선언은 아태지역이 '아이디어의 인큐베이터'로서 AI와 인구 구조 변화라는 공통의 도전에 창의적 해법을 찾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향후 APEC은 AI 기술을 활용하여 기후 변화 예측의 정확도를 높이고(2024년 ENSO 논의처럼), 스마트 물류 시스템을 구축해 공급망 효율을 극대화하는 등 '혁신', '번영', '연결'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집중할 것이다.
물론 법적 구속력이 없는 APEC 선언의 한계는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21개 회원국이 AI 혁신, 기후 위기 대응, 그리고 상호협력이라는 방향성에 만장일치로 합의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를 지닌다.
결국 APEC은 AI라는 가장 혁신적인 도구를 손에 쥐고, '지구'라는 공동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상호협력'의 길을 선택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이 거대한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을지, 전 세계가 경주선언의 이행 과정을 주목하고 있다.

![APEC 2025 KOREA는 AI, 지구(환경), 상호협력을 바탕으로 아태지역의 지속가능한 미래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미지 = 코리아비즈니스리뷰 DB]](https://epzvqcvbpcduaglyoici.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news-images/legacy-cgi/2025/11/01/1761998910_5472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