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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EC 양자협력, '경제안보'가 좌우했다: 9개 핵심 파트너국 협력 방향성 분석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의 무대는 더 이상 '관세 인하'와 '자유 무역'이라는 고전적인 구호만 울려 퍼지는 곳이 아니다. 2024년 페루 APEC 정상회의를 기점으로, APEC은 '경제 안보(Economic Security)'라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치열한 '양자 외교의 각축장'으로 변모했다.

박소유 기자입력 2025년 10월 31일수정 2026년 5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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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경주 APEC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이재명 대통령의 모습. [사진 = 대통령실 캡처]
2025 경주 APEC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이재명 대통령의 모습. [사진 = 대통령실 캡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의 무대는 더 이상 '관세 인하'와 '자유 무역'이라는 고전적인 구호만 울려 퍼지는 곳이 아니다. 2024년 페루 APEC 정상회의를 기점으로, APEC은 '경제 안보(Economic Security)'라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치열한 '양자 외교의 각축장'으로 변모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의 무대는 더 이상 '관세 인하'와 '자유 무역'이라는 고전적인 구호만 울려 퍼지는 곳이 아니다.

2024년 페루 APEC 정상회의를 기점으로, APEC은 '경제 안보(Economic Security)'라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치열한 '양자 외교의 각축장'으로 변모했다. '푸트라자야 비전 2040'이 제시한 디지털, 공급망, 지속가능성이라는 다자적 목표 아래, 실제적인 경제 협력의 방향성은 정상회의장 안팎에서 이루어지는 1:1 양자회담에서 결정되고 있다.

팬데믹, 지정학적 갈등, 그리고 기술 패권 경쟁은 '효율성'의 세계화에서 '안정성'의 블록화로 경제 패러다임을 전환시켰다. 21개 회원국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유일무이한 플랫폼으로서, APEC은 이러한 핵심 파트너 국가들과의 경제 협력 수준을 심화시키고 구체적인 협력 의제를 논의하기 위한 '골든 타임'을 제공한다.

특히 2025년 경주 APEC 정상회의 의장국인 한국에게, APEC 무대에서 논의된 양자 협력의 '합의' 사항들은 향후 10년의 경제 영토를 결정짓는 중요한 방향타가 될 것이다.

코리아비즈니스리뷰는 APEC을 계기로 한국이 이번 회기에서 중점을 둔 9개 주요 협력 대상국 (미국, 중국, 일본, 캐나다, 호주,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등)과 구체적으로 어떤 경제 협력을 '추진하기로 합의'했으며, 정책협력 및 실무단계 논의를 통해 경제 효과가 기대되는 기반을 어떻게 조성하고 있는지 심층 분석한다.

 

다자주의의 이상과 양자협력의 현실


APEC은 본질적으로 '자발적 비구속적' 협력체이다. 이는 강력한 법적 강제력보다는 회원국 간의 합의와 자발적 이행을 중시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미중 전략 경쟁이 심화되면서 APEC 전체의 '하나된 합의'를 도출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한 다자협력의 교착 상태 속에서, APEC은 역설적으로 '양자협력의 허브'로서의 기능이 극대화되고 있다. 모든 주요국 정상이 한자리에 모이기 때문에, 이 기회를 활용해 동시다발적인 양자회담을 개최하고 실질적인 현안 타결을 '시도'하는 '실리 외교'의 장이 열리는 것이다.

2024년 페루 APEC에서 논의된 '녹색 공급망', '디지털 전환' 등의 의제는, 곧바로 한-미, 한-호주, 한-아세안 간의 구체적인 양자 협력 프로젝트 '논의'로 이어졌다.


 

1. 북미 & 오세아니아: '경제안보·자원 동맹' 고도화를 위한 기반 마련 (미국·캐나다·호주)


가장 두드러진 성과는 북미와 오세아니아의 핵심 자원 부국들과의 협력이다. 이는 전통적인 안보 동맹을 넘어 '경제 안보' 및 '기술 동맹'으로 관계를 격상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에 합의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한국-미국: IPEF 기반 '첨단기술 공급망' 구축 협의

미국과의 양자 협력은 APEC의 핵심 의제인 '공급망'과 '디지털' 분야에 정확히 일치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는 APEC의 다자적 논의를 구속력 있는 협정으로 구체화하는 역할을 한다.

APEC을 계기로 한미 양국은 IPEF의 4개 필러(무역, 공급망, 청정경제, 공정경제) 전반에 걸친 협력을 재확인했다. 특히 주목할 성과는 '공급망 필러' 관련 합의이다.

양국은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핵심 산업의 공급망 안정을 위해, 실무적 조기경보체계(EWS) 구축 및 정보 공유 플랫폼 연계를 위한 단계별 협상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즉각적인 시스템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향후 시범사업 및 실무 협의를 통해 구체화될 장기적 과제이다.

한국-캐나다: '핵심광물' 공급망 다변화 추진 합의

캐나다와의 양자 협력 성과는 APEC의 '공급망 안정화' 논의에 있어 가장 구체적인 협력 의지를 확인한 사례로 평가된다. 캐나다는 리튬, 니켈, 코발트 등 2차전지 핵심 광물 매장량이 풍부한 국가이다.

APEC을 계기로 양국은 '핵심광물 공급망 협력 MOU'를 기반으로 실질적 협력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는 특정 국가에 편중된 한국의 핵심광물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경제 안보'의 핵심 전략의 기반을 닦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한국 배터리 3사 및 소재 기업들은 캐나다 광물 기업들과 직접적인 장기 공급 계약 체결을 논의하거나 합작법인(JV) 설립 추진을 위한 초기 투자 조건 협의 단계에 들어섰다.

한국-호주: '수소·핵심광물' 2대 청정 공급망 구축

호주 역시 캐나다와 더불어 한국의 '경제 안보'에 필수적인 파트너이다. 호주는 리튬, 희토류 등 핵심 광물뿐만 아니라 '청정수소' 분야의 최대 잠재 생산국이다.

APEC은 양국이 '청정 경제' 의제에 맞춰 협력을 심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첫째, '핵심광물' 분야에서 기존의 원자재 수입을 넘어, 정·제련 및 가공 분야에서의 기술 협력과 공동 투자를 확대하기로 논의했다.

둘째, '그린 수소' 분야에서 대규모 협력 기반이 마련되었다. 포스코, 한화 등 한국 기업들은 호주의 풍부한 태양광·풍력 자원을 활용한 그린 수소 생산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며, APEC은 이러한 장기적 공급망 구축을 위한 양국 정부의 정책적 지원 의지를 재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다.

 


2. 동북아: '갈등 관리'와 '실리'의 공존 모색 (중국·일본)


지정학적으로 가장 민감한 동북아 역내에서는 '갈등 관리'와 '경제적 실리'라는 두 가지 목표가 APEC 양자회담에서 동시에 추진되었다.

한국-중국: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소통 채널 확대

미중 경쟁 구도 속에서도 중국은 한국의 제1 교역국이다. APEC은 양국 정상이 자연스럽게 만나 경제 현안을 논의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다자 무대이다.

양국 간의 최대 현안은 '공급망의 예측 가능성' 확보다.

APEC을 계기로 한중 양국은 공급망 안정 논의를 위한 실무 협의체 채널을 단계적으로 복원하고, 정보 교환을 확대하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는 완전한 구속력을 갖춘 협력체의 복원이라기보다, 주요 경제 현안에 대해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가는 고위급 소통의 필요성을 재확인한 것이다.

한국-일본: 반도체·수소 '미래 공급망' 공동 구축 논의

한일 관계 정상화 이후, APEC은 양국의 경제 협력을 미래 지향적 파트너십으로 발전시키는 논의의 장이 되었다.

가장 큰 성과 방향은 '반도체 공급망' 협력이다.

한국의 강점인 메모리 반도체 및 파운드리(생산)와 일본의 강점인 소재·부품·장비(소부장)를 결합하는 공동 R&D 및 협력 체계 구축이 논의되었다. 또한, APEC의 '청정 경제' 의제에 발맞춰 양국은 글로벌 '수소' 시장에서 표준을 선점하고, 청정수소의 생산·저장·운송 분야에서 공동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공급망을 구축하기로 원칙적인 합의를 이루었다.

 

3. 아세안: '신(新)시장' 개척과 '핵심 공급망 기지' 구축 (베트남·인도네시아·필리핀·태국)


아세안(ASEAN)은 '기회의 땅'이자 한국의 핵심 경제 파트너이다. APEC은 아세안 주요국들과의 양자 협력을 통해 '디지털' 및 '인프라', 그리고 '핵심 소재' 시장 진출을 확대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한국-베트남: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의 내실화 협의

베트남은 APEC 회원국 중 한국의 제3위 교역국이자 최대 생산 기지이다.

APEC을 계기로 양국은 '디지털 경제'와 'R&D 협력' 분야의 확대를 합의했다. 한국은 베트남의 디지털 정부 전환 및 스마트시티 구축 사업에 핵심 파트너로서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으며, '한-베트남 과학기술연구원(VKIST)'을 중심으로 공동 R&D 협력 방안을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

한국-인도네시아: 'EV 배터리 동맹'과 인프라 협력

인도네시아는 세계 1위의 니켈 매장국으로, 한국의 'EV 배터리 공급망' 전략에 있어 핵심 중의 핵심 국가이다. APEC은 양국 간의 경제 협력 의지를 재확인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핵심 성과는 'EV 배터리' 분야이다.

현대자동차 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이 합작한 현지 배터리셀 공장 가동을 시작으로, 니켈 원광 확보부터 제련, 소재, 셀, 완성차 생산에 이르는 '배터리 동맹'을 공고히 하기 위한 실무 협의가 진행 중이다. 또한 인도네시아 신(新)수도 이전 사업, 자카르타 MRT 등 대형 인프라 사업에 한국 기업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실무 논의를 진전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한국-필리핀: FTA 이행 및 '방산·인프라' 협력 확대 논의

필리핀과의 관계에서는 2023년 말 체결된 '한-필리핀 FTA'가 APEC을 계기로 안정적 이행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더불어, APEC의 '포용적 성장' 의제와 연계하여 한국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활용한 필리핀 인프라(교량, 도로) 구축 사업 참여 확대를 위한 논의가 진행되었고, 'K-방산' 수출 논의를 확대·지속하기로 했다.

한국-태국: 'EV 생태계' 및 '바이오 헬스' 협력 추진 합의

태국은 아세안 내 EV(전기차) 생산 허브로 도약하고 있다.

APEC을 계기로 한-태국 양국은 전기차 생산 및 충전 인프라 구축, 배터리 기술 협력 등 'EV 생태계' 전반에 걸친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공동 사업 추진에 합의했다. 또한, 양국의 강점인 '바이오 헬스' 및 의료 관광 분야에서의 협력 확대 가능성을 확인하고 관련 논의를 진전시키기로 했다.

[KBR Insight] APEC의 새로운 역할: '경제 리스크 관리' 포트폴리오


APEC 무대에서 드러난 한국의 양자 협력 성과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리스크 분산'이다. 이는 마치 투자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 것과 같다.

미국·캐나다·호주와 '기술·광물' 안보 강화를 추진하는 동시에, 중국과는 '원자재' 리스크 관리 논의를 지속한다.

일본과는 '미래 기술'에 공동 투자를 모색하고, 아세안(베트남·인도네시아 등)과는 '신시장'과 '핵심 소재 공급망'이라는 성장 자산 확보를 위한 기반을 닦는다.

APEC은 더 이상 단일한 자유무역지대를 꿈꾸는 이상적 포럼이 아니라, 불확실성의 시대에 각국이 자국의 '경제 안보 포트폴리오'를 점검하고 최적화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중요한 플랫폼으로 진화했다.

 


결론: APEC 2025 경주, '양자 합의' 이행과 '다자 공감대' 형성의 시험대


APEC 2024 페루 회의까지의 성과를 종합하면, APEC의 실질적인 경제적 가치는 '다자적 합의'가 아닌, 이를 지렛대로 활용한 '양자 협력의 총합'을 이끌어내기 위한 기반에서 나오고 있다.

한국은 APEC이라는 다자 무대를 활용하여 미국, 캐나다, 호주와는 핵심광물 및 청정 에너지 공급망 확보를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중국, 일본과는 공급망 리스크 관리 논의를 시작하고 미래 기술 협력의 기반을 다졌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등 아세안과는 FTA 이행 및 인프라·방산·디지털·배터리 공급망이라는 실질적인 경제 영토 확대를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다.

실질적인 경제 효과는 향후 이러한 협력 수준 및 개별 사업의 이행 여부에 따라 본격화될 예정이며, 현재는 구체적 계약 및 사업 실행을 단계적으로 추진 중인 상태이다.

이제 공은 2025년 의장국인 한국으로 넘어왔다. 2025년 경주 APEC 정상회의는 한국이 이러한 개별적인 양자 협력 합의 사항들을 진전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APEC 역내 공감대를 형성하려 노력할 중요한 기회이다.

다만, APEC은 비구속적 다자 협의체라는 점을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

한국의 양자 협력 성과가 APEC 전체 21개국의 '표준'이나 '원칙'으로 자동 격상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 공식적인 다자 규범으로 확산하기 위해서는 의장국으로서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한 추가적인 회원국 간 협상과 이행 체계 확보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연결, 혁신, 번영'이라는 APEC 2025의 주제 아래, 한국이 주도하여 디지털 무역 규범, 회복력 있는 공급망 표준, 청정 에너지 전환 로드맵 등에서 얼마나 많은 회원국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느냐가 아태지역 경제 질서 논의를 주도하려는 진정한 '글로벌 중추 국가'로 도약하는 결정적 이정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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