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린 대한민국 경주는, 다자외교의 무대를 넘어 한미 동맹의 주요 현안을 조율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APEC 본회의에 앞서 2025년 10월 29일 열린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은, '관세 협상'과 '핵추진잠수함' 등 양국의 경제·안보 분야 핵심 의제들을 포괄적으로 논의하는 자리가 되었다.
KBR경영연구소는 이번 회담이 양국이 안보와 경제라는 복합적 현안에서 '상호 호혜적 접근'을 통해 실리를 모색한 '실용주의 외교'의 결과로 분석하였다.
대한민국은 30년 숙원인 핵추진잠수함(SSN) 보유를 위한 협의의 중대한 진전을 이루는 한편, '아메리카 퍼스트' 기조의 트럼프 행정부와 대규모 경제 협력 및 투자 계획에 합의점을 찾았다.
이번 심층분석에서는 경주 APEC에서 도출된 한미정상회담의 성과를 균형 잡힌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조명하고, 합의 이면에 남겨진 현실적 과제들을 냉철하게 진단한다.
'안보'와 '경제'가 교차한 경주의 담판
2025년 경주 APEC 정상회의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열리는 가장 큰 규모의 다자 정상회의였다.
모든 회원국의 시선은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양국 정상이 어떤 경제적 메시지를 내놓을지에 쏠렸다. 하지만 한국에게는 APEC을 계기로 열리는 '한미 양자회담'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회담 모두발언에서부터 승부수를 띄웠다. 그는 "북한과 중국 잠수함 추적에 디젤 잠수함은 한계가 명확하다"며 "미군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핵추진잠수함 연료 공급을 결단해달라"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개 요청했다. 이는 '한미 원자력협정'의 족쇄를 풀고 '원자력 주권'을 회복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사는 다른 곳에 있었다. 바로 '미국 내 일자리'와 '무역 적자 해소'다. 그는 회담 전부터 한국의 대미 투자 확대와 관세 장벽 문제를 거론하며 압박 수위를 높여왔다.
결국 안보적 자산(핵잠수함)을 원하는 한국과, 즉각적인 경제적 실리(투자, 일자리)를 원하는 미국의 이해관계가 경주에서 정면으로 충돌하며 거대한 '패키지 딜'의 서막이 올랐다.
'빅딜'의 세부 청구서와 현실적 한계
트럼프 대통령의 화답은 신속하고 극적이었다. 그는 10월 30일(한국시간) 소셜미디어를 통해 "한국이 구식 디젤 잠수함 대신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하도록 승인했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는 최종 실무 허가가 아닌, 관련 협상 착수를 알리는 '정치적 청신호'에 가깝다. 그리고 이 '청신호'의 대가로 한국이 약속한 '선물 보따리'의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이 훨씬 더 복잡하다.
1. 1500억 달러 투자의 실체 (펀드 및 분할 집행) 가장 크게 부각된 '1500억 달러 투자'는 실제로는 현금 일괄 집행 방식이 아니다. 이는 '대규모 조선업 협력펀드(MASGA 프로젝트 등)'를 통한 분할 투자, 금융 보증, 대출을 포함하는 복합적 금융 방식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한화오션의 필리조선소 활성화가 핵심이며, 단기 일괄 집행이 아닌 수년간 여러 산업 프로젝트로 나눠 조성된다. 업계에서는 당장 실제 투자되는 금액은 연 100억~200억 달러 수준으로, 향후 집행 시기와 규모가 조정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2. 미국산 제품 구매 (LNG, 항공기) 트럼프 행정부가 즉각적인 성과로 내세울 수 있는 부분이다.
한국은 보잉 항공기 103대 구매 약속과 더불어 연간 330만 톤의 미국산 LNG(액화천연가스) 추가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미국 내 고용 창출 및 무역수지 적자 개선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조치다.
3. 관세 인하의 한계 (부분 적용 및 FTA와 무관) '자동차 관세 25%에서 15%로 인하'라는 보도는 가장 큰 경제적 성과로 보이지만, 여기에도 한계는 명확하다.
관세 인하 효과는 자동차, 반도체 등 일부 품목에만 대상이 되며, 이는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로 인해 기존 0% 무관세 혜택을 복원하는 것이 아닌, 부분 개정일 뿐이다. 또한 미국 현지 생산분에 대해서는 추가 관세가 제외되는 등 다양한 조건이 병행되므로, 실제 업계가 체감하는 실효성에는 일부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한화·현대차 '환호' 속, 복잡해진 셈법
경주발(發) '빅딜' 소식에 국내 산업계의 희비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가장 큰 환호성을 지른 곳은 단연 한화그룹(한화오션)이다. 지난해 필리조선소를 인수하며 미국 상선 및 방산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한 한화오션은, 이번 '협상 개시' 선언만으로도 향후 핵잠수함 건조 사업의 핵심 플레이어로 부상할 가능성을 높였다.
현대자동차그룹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FTA 체제 복원은 아니지만, 25% 고율 관세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하고 일부 품목이라도 15% 수준의 인하를 이끌어낸 것은 분명한 성과다. 이는 미국 내 전기차(EV) 투자 전략의 불확실성을 상당 부분 걷어내는 효과가 있다.
반면, 막대한 규모의 미국산 LNG 도입과 보잉 항공기 구매는 관련 업계의 셈법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에너지 업계는 이미 포화 상태인 LNG 도입 물량 관리에 부담을 안게 되었으며, 항공 업계 역시 수십조 원에 달하는 항공기 구매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지 재무 전략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KBR Insight: "거래적 외교 시대, '투자'가 곧 '안보'다"
2025 경주 APEC 한미정상회담은 '거래적 외교(Transactional Diplomacy)'가 뉴노멀이 되었음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과거처럼 혈맹이라는 가치에만 의존하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 동맹 유지는 '숫자'로 증명되어야 한다.
이번 딜의 핵심은 '안보 비용의 경제화'다.
트럼프 행정부는 핵잠수함이라는 전략적 자산을 '승인'하는 대신, '미국 내 일자리 창출'과 '제조업 부흥'이라는 구체적인 경제적 이익을 요구했다. 한화오션의 필리조선소를 중심으로 한 '조선 협력 펀드'는 이 요구에 대한 가장 완벽한 화답이었다.
이는 한국 기업들에게도 새로운 과제를 던진다.
이제 기업의 '해외 투자'는 단순한 시장 확대를 넘어, 국가 안보와 국익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전략적 자산'으로 기능하게 되었다. 기업의 비즈니스 전략이 곧 국가의 외교 전략이 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향후 전망 및 시사점: '협상 착수' 이후의 현실적 난관
자동차 관세 일부 인하라는 '단맛'과 핵잠수함 협상 개시라는 '선물'을 동시에 받았지만, 외교와 비즈니스의 세계는 냉정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승인' 선언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며, 실제 핵잠수함 건조까지는 겹겹이 쌓인 난관을 넘어야 한다.
가장 큰 장벽은 단연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잠수함 승인 발표 이후에도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이라는 국제적, 국내적 난관이 남아 있다. 현행 협정은 핵연료의 군사적 전용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어, 잠수함 추진용 연료(20% 이상 고농축 우라늄)를 공급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협정 개정이라는 지난한 후속 외교 협상이 필요하다.
실제 잠수함 건조를 위한 연료 공급 및 운영에는 미국 의회의 동의와 국제 비확산 체제(NPT) 내에서의 추가 외교 절차가 필요하며, 이 과정에서 미국 의회 내 비확산론자들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또한, 수십조 원에 달하는 핵잠수함 건조 및 운영·유지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 재원 마련 방안도 구체화되어야 한다.
1500억 달러 규모로 발표된 대미 투자가 국내 산업 공동화에 미칠 영향과, 중국·러시아 등 주변국의 군사적 반발이라는 외교적 부담 역시 우리가 감내해야 할 '청구서'의 일부다.
결국 2025 경주 APEC은 한국 외교와 경제에 중대한 전환점을 제시했다.
안보와 경제는 더 이상 분리될 수 없는 '패키지'이며,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과감한 '경제적 투자'가 가장 강력한 '안보적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30년 숙원 사업의 첫발을 내디딘 대한민국이, 앞으로 날아들 더 복잡한 '청구서'들을 어떻게 처리해 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재명 대통령(오른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주 한미정상회담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 대통령실 홈페이지 캡처]](https://epzvqcvbpcduaglyoici.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news-images/legacy-cgi/2025/10/30/1761807891_64713.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