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 'AI 기반 의사결정', '데이터 드리븐 경영'. 현대 경영학의 키워드는 모두 '정확한 답'을 찾는 여정으로 수렴된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데이터를 손에 쥐고 있으며, 분기별 실적과 KPI(핵심성과지표)는 조직의 모든 행동을 정량화하려 시도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기업 리더들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은 최고조에 달해 있다.
팬데믹, 지정학적 위기, 그리고 AI가 촉발한 산업의 근본적 해체 앞에서, 과거의 데이터가 제시하는 '정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영은 본질적으로 '미래'를 다루는 학문이며, 미래는 불확실성을 내포한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조직은 이 불확실성(Uncertainty) 자체를 '제거해야 할 문제'로 규정한다.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고 성급하게 '알고 있는' 과거의 정답으로 회귀하려는 경향.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가장 값비싼 실수를 저지르는 순간이다.
지금 우리 경영계가 근본적으로 놓치고 있는 것은 '더 나은 답을 찾는 기술'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바로 '답이 없는 상태를 견디는 힘'이다.
코리아비즈니스리뷰(KBR)는 오늘 인사이트 4.0에서 19세기 시인에게서 빌려온 이 역설적인 능력, '네거티브 케이퍼빌리티(Negative Capability)'가 왜 21세기 경영의 핵심 역량으로 주목받아야 하는지 심층 분석한다.
'익숙한 정답'의 함정: 코닥과 노키아의 복합적 교훈
우리는 종종 거대 기업의 몰락을 '혁신 실패'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하지만, 그 이면은 훨씬 복잡하다.
코닥(Kodak)의 사례는 '디지털 발명을 묻어버렸다'는 단순한 이야기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다르다. 1975년 세계 최초의 디지털카메라를 발명한 것은 코닥의 엔지니어 스티브 새슨(Steve Sasson)이었다. 경영진은 이 발명품을 보고받았고, 실제로 코닥은 디지털카메라 사업을 실시했다.
진짜 문제는 그들의 '소극적 전략'과 '전략적 지연(Strategic Delay)'에 있었다.
당시 필름 시장에서 90%의 압도적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던 코닥에게, 디지털이라는 '모호하고 불확실한' 미래는 '확실한 현재 이익'을 위협하는 존재였다. 경영진은 기존 필름 사업의 막대한 이익을 보호하려는 조직적 관성에 갇혔고, 디지털 사업에 전력투구하는 대신 필름 사업의 이익을 방어하는 데 집중했다. 그들은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필름이 여전히 정답'이라는 과거의 결론에 매달렸고, 디지털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결정적 시기를 놓쳤다.
노키아(Nokia)의 몰락 역시 '통화 품질과 배터리'에만 집착했다는 단순한 해석을 넘어선다. 아이폰이 등장했을 때 노키아는 이미 터치스크린과 모바일 운영체제(OS) 기술을 부분적으로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노키아는 하드웨어 중심의 사고와 자체 OS인 심비안(Symbian)에 대한 과도한 의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더 치명적인 것은, 스마트폰 시대의 핵심이 '기기'가 아닌 '플랫폼과 생태계(Ecosystem)'임을 간파하지 못한 점이다.
경영진은 앱스토어를 중심으로 한 플랫폼 전환의 모호함을 견디지 못했다. 내부적으로는 느린 의사결정 과정과 부서 간 협업 부족이 발목을 잡았고, 외부적으로는 앱 개발자들을 끌어들이는 생태계 구축에 완전히 실패했다.
경영적 근시안: 단순한 회피가 아닌 복합적 결과
이 두 거인의 몰락은 '경영진의 조급함'이나 '단순한 불확실성 회피'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이는 '경영적 근시안(Managerial Myopia)'의 전형적인 사례이며, 그 이면에는 다음과 같은 복합적 요인이 작용했다.
1. 기존 사업의 이익 보호(Profit Protection)
현재의 막대한 현금흐름을 포기하고 불확실한 신사업에 투자하는 것은 어떤 경영진에게도 어려운 결정이다.
2. 조직적 관성(Organizational Inertia)
성공 방정식이 강할수록 조직 전체는 새로운 방식을 받아들이는 데 저항한다.
3.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
조직 내부의 다양한 이견, 단기 실적과 장기 비전 사이의 갈등, 외부 시장 변화에 대한 엇갈린 해석 등이 신속한 대응을 방해했다.
핵심은, 이 모든 복잡성(Complexity)과 모호함 속에서 '불편한 진실(모호한 미래)'을 견디며 근본적인 쇄신을 감행하는 대신, '익숙한 과거(확실한 현재 이익)'에 머무르는 결정을 내렸다는 점이다.
시인 존 키츠의 통찰, '네거티브 케이퍼빌리티'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 복잡성과 모호함을 다루는 힘은 무엇인가? 답은 의외의 장소에 있다.
19세기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John Keats)는 1817년 그의 형제에게 보낸 편지에서 "셰익스피어가 가진 위대함의 핵심"이라며 한 가지 개념을 제시한다.
"사실과 이성에 성급하게 도달하려 하지 않고, 불확실성, 미스터리, 의심 속에 머무를 수 있는 능력." (The capability of being in uncertainties, mysteries, doubts, without any irritable reaching after fact and reason.)
키츠는 이를 '네거티브 케이퍼빌리티(Negative Capability)'라 불렀다.
이는 전통적인 경영학이 강조하는 '포지티브 케이퍼빌리티(Positive Capability)'와 정반대 지점에 있다.
포지티브 케이퍼빌리티가 문제를 분석하고, 데이터를 수집하며, 명확한 해결책을 도출하고, 신속하게 실행하는 '행동하는 능력'이라면, 네거티브 케이퍼빌리티는 당장의 답을 내리지 않고, 모호함과 역설을 '견디는 능력'이다.
정신분석학자 윌프레드 비온(Wilfred Bion)은 이를 "해결되지 않은 문제 앞에서 좌절하지 않고 '모르는 상태'를 인내하는 능력"으로 발전시켰다. 즉, 정보가 불충분하고 상황이 복잡할 때, 즉각적인 반응이나 방어적인 결론으로 뛰어들지 않고, 그 긴장과 불안을 감내하며 더 깊은 통찰이 떠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정신적 태도다.
'견디는 리더'가 '회피하는 리더'를 이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부활
네거티브 케이퍼빌리티의 부재는 조직에 '방어적 루틴(Defensive Routines)'을 확산시킨다.
리더가 '답이 없는 상태'를 불안해하면, 구성원들은 "모르겠습니다" 또는 "문제가 복잡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대신 그들은 리더가 듣고 싶어 하는 '안전한 답'이나 '과거의 성공 데이터'만을 보고하게 된다. 집단사고(Groupthink)가 만연하고, 조직은 쇄신할 기회를 잃는다.
반면, 이 능력을 갖춘 리더는 조직의 차원을 바꾼다. 가장 극적인 사례는 사티아 나델라(Satya Nadella) 취임 이후 **마이크로소프트(MS)**의 부활이다.
스티브 발머 시절의 MS는 '윈도우즈'와 '오피스'라는 강력한 '정답'에 매몰되어 있었다.
'윈도우즈 퍼스트' 전략은 코닥의 필름, 노키아의 심비안 전략과 유사했다. 하지만 나델라는 2014년 취임 직후 '모바일 퍼스트, 클라우드 퍼스트'를 선언했다. 이는 MS의 핵심 정체성을 부정하는, 지독히도 '불확실한' 선언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접근 방식이었다. 그는 즉각적인 답을 제시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공감(Empathy)'을 핵심 가치로 내세웠다. 공감은 본질적으로 상대방의 의도를 '내가 안다'고 단정 짓지 않고, '모르는 상태'에서 귀를 기울이는 태도다. 그는 MS 내부의 적이었던 리눅스(Linux)를 끌어안았고, 경쟁사인 애플의 iOS와 안드로이드에 MS 오피스를 출시했다.
이는 '윈도우즈가 답'이라는 과거의 확신을 버리고, '소프트웨어와 클라우드가 공존하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라는 거대한 '모호함'을 견뎌냈기에 가능한 결정이었다.
나델라는 네거티브 케이퍼빌리티를 통해 조직 전체가 '모르는 것'을 탐색하도록 이끌었고, 그 결과 MS는 AI 시대를 선도하는 가장 혁신적인 기업 중 하나로 완벽하게 부활했다.
어떻게 '모르는 상태'를 견디는 조직을 만들 것인가?
네거티브 케이퍼빌리티는 타고나는 기질이 아니라, 의식적인 훈련과 조직문화(Organizational Culture) 설계를 통해 개발될 수 있다. 기업과 리더, 그리고 정책입안자들이 시도해야 할 3가지 경영 인사이트는 다음과 같다.
1. '정답'이 아닌 '질문'을 보상하라
대부분의 조직은 '좋은 답'을 가져온 구성원을 보상한다. 하지만 혁신(Innovation)은 '좋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리더는 "그래서 답이 뭡니까?"라고 묻는 대신,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가정이 틀렸다면 어떨까요?", "이 두 가지 모순되는 현상을 어떻게 동시에 설명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야 한다.
성급한 결론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 있는 탐색 과정을 인정하고 보상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2. 의사결정 과정에 '탐색적 공백'을 설계하라
문제 발생 즉시 해결책(솔루션)을 찾는 '솔루셔닝(Solutioning)' 함정을 경계해야 한다.
중요한 전략적 의사결정일수록 '즉각적인 결론 도출 금지 기간' 즉, '탐색적 공백(Exploratory Pause)'을 두는 것이 유용하다.
이 시간 동안 조직은 문제 자체를 재정의하고, 반대 의견을 의무적으로 청취하며(레드팀 운영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결론 없이' 탐색해야 한다. 이 '견디는 시간'이 더 나은 결정의 질을 보장한다.
3. '심리적 안전감'을 조직의 제1원칙으로 삼아라
구성원이 "잘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는 조직에서는 네거티브 케이퍼빌리티가 발현될 수 없다.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은 단순히 편안한 분위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불확실성 앞에서의 취약성(Vulnerability)을 드러내도 불이익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조직적 신뢰다. 리더가 먼저 자신의 '모름'을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할 때, 조직 전체의 불확실성 수용력은 극대화된다.
결론: '답'이 아니라 '질문'에서 시작되는 미래 경영
우리는 '답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답' 속에서 길을 잃고 있다. 과거의 성공 방정식, 경쟁사의 벤치마킹, 넘쳐나는 데이터 분석은 모두 그럴듯한 '답'을 제시하지만, 그것이 '미래'의 정답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진정한 경영 인사이트는 모든 것이 명확해지는 순간이 아니라, 모든 것이 불명확한 안갯속에서 성급하게 후퇴하지 않고 그 모호함을 직시하며 버티는 순간에 탄생한다.
물론 네거티브 케이퍼빌리티가 모든 산업, 모든 경영 상황에서 유일한 정답이라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 안정적인 운영과 효율성이 극도로 중요한 산업 분야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변동성이 크고(VUCA), 모든 것이 비선형적으로 변화하는(BANI) 불안정한 환경에서, 이 역량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네거티브 케이퍼빌리티는 불확실성을 사랑하라는 말이 아니다. 불확실성 앞에서 도망치지 말고, 그 불안과 긴장을 창조적 에너지로 전환하는 리더십의 핵심 역량이다. 이제 미래의 리더는 '가장 빨리 정답을 외치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오래 모호함을 견디며 가장 깊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될 것이다.

![불확실성 시대의 경영진은 데이터가 제시하는 '정답'을 맹신하는 대신, 모호함 속에서 깊은 질문을 던지고 다양한 관점을 탐색하며 미래를 위한 통찰을 찾아야 한다. [사진 = 코리아비즈니스리뷰 DB]](https://epzvqcvbpcduaglyoici.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news-images/legacy-cgi/2025/10/29/1761708575_60444.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