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는 더 이상 먼 미래의 환경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기업의 재무제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핵심 경영 리스크'가 되었다.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2026년 본격 시행(2027년 인증서 구매 의무화)을 앞두고 있고, 주요국(EU, 영국, 일본 등)의 기후 관련 재무정보공개 태스크포스(TCFD) 보고서 의무화, 그리고 2025년부터 강화된 기준(15년 이내 재생자산만 인정)이 적용되는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압박은 이제 '환경 경영'을 기업 생존의 필수 조건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진정한 '퍼스트 무버(First Mover)' 기업들은 이러한 변화를 방어적인 '규제 대응'이나 '비용 지출'로만 보지 않는다. 이들은 기후 위기 대응을 R&D 혁신, 신사업 발굴, 그리고 핵심 비즈니스 모델 전환의 '결정적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과거의 기업 사회공헌(CSR)이나 '그린워싱(Greenwashing)' 수준에 머무른 기업은 시장에서 도태될 위기에 처했다.
KBR경영연구소는 기후 위기를 비즈니스 혁신의 동력으로 삼아 시장을 선도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전략을 심층 분석하고, 국내 기업 실무자들이 즉시 현업에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행 인사이트를 제시한다.
'석유 기업'에서 '글로벌 1위 풍력 기업'으로: 외르스테드(Ørsted)의 전략적 대전환
기후 위기 대응을 비즈니스 모델 혁신으로 연결한 가장 극적인 사례는 덴마크의 '외르스테드(Ørsted)'다. 외르스테드의 전신은 '덴마크 석유 및 천연가스(DONG, Dansk Olie & Naturgas)'라는 이름의 국영 에너지 기업이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들의 수익 85% 이상은 화석연료에서 나왔다.
전환의 시작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유럽의 강력한 탄소 배출 규제와 천연가스 가격 급락으로 인한 경영 위기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CEO였던 헨릭 폴센(Henrik Poulsen)은 생존을 위해 '선택과 집중'을 결단했다. 그는 미래 성장성이 불투명한 화석연료 사업을 과감히 매각하고, 초기 단계였던 해상풍력 사업에 모든 자원을 집중하는 2009년 발표한 'Vision 85/15' 전략을 선언했다.
[외르스테드의 성공 전략]
1. 과감한 자산 매각 및 재투자 (Divest-Invest) 석유·가스 탐사 및 생산 부문을 매각한 자금(약 13억 달러)을 전액 해상풍력 기술 개발과 인프라 구축에 재투자했다. 이는 단순한 사업 다각화가 아닌, 기업의 정체성을 바꾸는 '전략적 피벗(Pivot)'이었다.
2. '규모의 경제'를 통한 비용 절감 초기 해상풍력은 발전 단가가 매우 높았다. 외르스테드는 대규모 단지 개발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터빈 대형화, 설치 공법 혁신 등 지속적인 R&D를 통해 2012년 대비 2020년 발전 원가를 60% 이상 절감(Annual Report 2020 기준 약 63% 하락)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해상풍력이 석탄 발전을 대체할 수 있는 경제성을 갖추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3. 정부·지역사회와의 파트너십 국영 기업의 강점을 살려 정부의 재생에너지 정책 수립에 적극 참여했으며, 지역 어민 및 주민들과의 이익 공유 모델을 구축해 사업의 '사회적 수용성'을 확보했다.
그 결과, DONG Energy는 2017년 화석연료 사업을 매각한 뒤, 2017년 10월 30일 임시 주주총회 결의에 따라 사명을 Ørsted로 변경하며(2017년 11월 6일 공식 발효) 화석연료 시대와의 완전한 결별을 선언했다.
외르스테드는 2020년 기준 유럽 해상풍력 신규 설치 용량의 약 26%, 누적 기준 약 17%를 보유한 세계 최대 개발사로 평가된다.(Statista, 2024) 또한 2020년 Corporate Knights의 Global 100 Index에서 전 세계 가장 지속가능한 기업 1위로 선정돼, 사상 최초로 에너지 기업이 1위를 차지했다.
이는 기후 위기 대응이 어떻게 새로운 시장의 '지배적 사업자'가 되는 기회가 될 수 있는지 명확히 보여준다.
'탄소 네거티브'를 선언한 거인: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의 기술 기반 접근법
기후 혁신은 제조업이나 에너지 기업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MS)는 2020년, 2030년까지 '탄소 네거티브(Carbon Negative, 배출량보다 많은 탄소를 제거)'를 달성하고, 2050년까지는 창사 이래 배출한 모든 탄소를 지구에서 제거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발표했다.
MS의 전략이 주목받는 이유는 그 '구체성'과 '기술 연계성'에 있다.
1. 전방위적 스코프(Scope) 관리
MS는 자사 운영(스코프 1, 2)뿐만 아니라, 가장 통제하기 어려운 공급망 및 제품 사용(스코프 3)까지 포함한 모든 탄소 배출을 관리 대상으로 삼았다. 이는 전체 배출량의 75% 이상을 차지하는 스코프 3를 외면하는 기업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2. 내부 탄소세(Internal Carbon Fee) 강화
2012년부터 도입한 '내부 탄소세'를 스코프 3까지 확대 적용했다. 각 사업부는 자신이 발생시킨 탄소 배출량(스코프 1, 2, 3)에 대해 톤당 15달러의 비용을 '지속가능성 펀드'에 지불해야 한다. 이 펀드는 재생에너지 구매, 에너지 효율 개선, 탄소 제거 기술(DAC, Direct Air Capture 등) 개발에 재투자된다. 이는 전사 모든 조직이 탄소 감축을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게 만드는 강력한 내부 동기부여 장치다.
3. 기술을 통한 솔루션 제공 (AI for Earth)
MS는 자사의 핵심 역량인 AI와 클라우드 기술을 기후 문제 해결에 접목한다. 'AI for Earth' 프로그램을 통해 전 세계 연구기관과 NGO들이 기후 변화, 생물 다양성, 수자원 관리 등을 연구할 수 있도록 데이터 분석 플랫폼(Planetary Computer)과 클라우드 자원을 제공한다. 이는 기후 대응을 사회적 책임 이행인 동시에, 자사의 클라우드(Azure) 비즈니스를 확장하는 기회로 활용하는 전략이다.
'버리는 것'에서 '가치'를 찾다: 순환 경제(Circular Economy) 모델
기후 위기 대응의 또 다른 핵심 축은 '자원 고갈' 문제를 해결하는 순환 경제다. '채취-생산-소비-폐기'로 이어지는 기존의 선형 경제 모델은 막대한 탄소를 배출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Patagonia)는 'Worn Wear(헌 옷)' 프로그램을 통해 이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했다.
고객이 입던 파타고니아 옷을 매장으로 가져오면, 이를 수선하여(Repair) 중고 제품으로 재판매(Resale)한다. 이는 '새 옷을 덜 만들고(Reduce), 기존 옷을 오래 입자(Reuse)'는 브랜드 철학을 비즈니스 모델로 구현한 것이다.
놀라운 점은, 이 Worn Wear 프로그램이 신제품 판매를 잠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브랜드 충성도를 극대화하며 새로운 수익원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다.
가구 공룡 이케아(IKEA) 역시 '순환 경제'를 핵심 전략으로 채택했다.
이케아는 2030년까지 모든 제품을 100% 재활용 또는 재생 가능한 재료로 만들고, 제품 수명 연장을 위한 수리·재판매·기부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가구 환매(Buy-back)'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고객이 사용하던 이케아 가구를 매장으로 가져오면 상태에 따라 크레딧을 지급하고, 이 제품은 수리 및 정비를 거쳐 '자원순환 허브(Circular Hub)'에서 할인된 가격으로 재판매된다. 이는 폐기물을 줄여 탄소 배출을 감축할 뿐만 아니라, 중고 시장이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을 창출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국내에서도 SK케미칼의 '화학적 재활용' 플라스틱(코폴리에스터) 개발, 롯데케미칼의 플라스틱 자원 선순환 프로젝트 'Project LOOP' 등 대기업을 중심으로 순환 경제 모델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KBR Insight] 실무자를 위한 4가지 핵심 실행 방안 (Actionable Insights)
그렇다면 국내 기업의 ESG 및 전략 담당자들은 이러한 글로벌 트렌드를 어떻게 현업에 적용해야 할까?
KBR경영연구소는 다음과 같은 4가지 구체적 실행 방안을 제시한다.
1. '기후 데이터'를 '경영 언어'로 번역하라
가장 시급한 과제는 기후 리스크를 재무적 리스크로 환산하는 것이다. TCFD 보고서는 단순히 규제 당국 제출용 서류가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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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on: 기후 변화 시나리오(1.5°C, 2°C 등)에 따라 자사의 핵심 자산(공장, 물류센터)이 겪을 물리적 리스크(홍수, 가뭄으로 인한 조업 중단)와 전환 리스크(탄소세 도입, 저탄소 기술로의 전환 비용)를 구체적인 '금액'($)으로 추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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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 "2030년 탄소 배출 40% 감축"이라는 목표 대신, "탄소 감축 실패 시, CBAM으로 인한 추가 비용 연간 000억 원 발생" 또는 "저탄소 신제품 개발 시, 2030년 예상 매출 0조 원"과 같이 이사회와 CEO가 이해할 수 있는 '재무 언어'로 보고해야 한다.
2. 이사회(G)와 환경(E)의 '연결고리'를 강화하라
기후 대응은 더 이상 실무 부서만의 일이 아니다. 거버넌스(G) 차원에서 환경(E) 이슈를 다루지 않으면 전사적 실행력을 담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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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on: 이사회 내에 '지속가능경영위원회(또는 ESG 위원회)'를 설치하고, 위원회의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기후, 에너지, 재무 전문가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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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 핵심은 '보상 체계'다. CEO를 포함한 핵심 임원진의 성과평가(KPI) 및 보상(LTI, 장기 성과 인센티브)에 탄소 감축, 재생에너지 사용률, 용수 사용량 절감 등 구체적인 기후 관련 성과를 연동시켜야 한다. MS, 애플, 유니레버 등 선도 기업들은 이미 이를 시행 중이다.
3. '스코프 3 (Scope 3)'를 통제하는 기업이 시장을 지배한다
진정한 기후 경쟁력은 자사 공장이 아닌 '공급망'에서 나온다. 애플이 부품 협력사들에게 100%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하듯, 스코프 3(기타 간접 배출) 관리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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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on: 1차 협력사뿐만 아니라 2, 3차 협력사까지의 탄소 배출 데이터를 매핑(Mapping)하고, 고위험군 협력사를 식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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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 단순한 '감사'나 '압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협력사들이 탄소 감축 설비를 도입할 수 있도록 '그린 파이낸싱(저리 대출)'을 지원하거나, 에너지 효율 개선을 위한 기술 컨설팅을 제공하는 등 '협업적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한다. 이는 장기적으로 공급망 안정성과 원가 경쟁력 확보로 이어진다.
4. R&D의 초점을 '효율성'에서 '회복탄력성'으로 전환하라
지금까지의 R&D가 '에너지 효율성(Efficiency)' 극대화에 맞춰졌다면, 이제는 기후 변동성 속에서 생존하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에 투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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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on: 특정 지역에 편중된 원자재 조달처를 다변화하고, 가뭄이나 홍수에도 견딜 수 있는 대체 소재 개발에 R&D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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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 또한 '자연 기반 솔루션(NbS, Nature-based Solutions)'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숲, 토양, 해양 등 자연 생태계가 가진 탄소 흡수 능력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케링(Kering) 그룹이 목화 농업을 '재생 농업'으로 전환해 토양의 탄소 흡수력을 높이듯, 자사의 비즈니스 밸류체인과 연관된 NbS 투자를 통해 탄소 상쇄와 생물 다양성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결론: 기후 대응, '전략적 의지'의 문제다
기후 위기 대응은 기술이나 자본의 문제를 넘어, 리더십의 '전략적 의지' 문제다.
외르스테드가 화석연료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마이크로소프트가 스스로에게 막대한 탄소세를 부과했듯이, 기후 위기를 '비용'으로만 간주하는 기업은 생존조차 위협받을 것이다.
반면, 이를 비즈니스 모델 혁신의 '촉매제'로 삼아 전사적 역량을 결집하는 기업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확보할 것이다.
지금 당장 당신의 기업이 TCFD 보고서의 '리스크' 항목에 무엇을 적고 있는지, 그리고 '기회' 항목에 어떤 혁신을 채워 넣고 있는지 점검해야 할 때다.

![한 임원이 '기업 기후 전략' 대시보드를 기반으로 탄소 감축 및 에너지 전환 목표를 논의하고 있다. 기후 위기 대응이 기업의 핵심 경영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다. [사진 = 코리아비즈니스리뷰 DB]](https://epzvqcvbpcduaglyoici.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news-images/legacy-cgi/2025/10/21/1761032801_27014.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