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 외로운 싸움, 한 명의 의사에게 수많은 아이들의 생명이 달려있는 위태로운 소아 필수의료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진 = 코리아비즈니스리뷰 자료 사진]
우리 아이가 아플 때, 수술받을 병원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 현실화되고 있다.
소아청소년과 인력난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가운데, 그보다 더 심각한 ‘소아외과’의 위기는 우리 사회 필수의료 시스템의 근간을 흔드는 명백한 신호다.
이는 단순히 의사 수가 줄어드는 문제를 넘어, 아이들의 생명과 직결된 ‘골든타임’을 위협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술이 지연되어 위험에 처하는 아이들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저출산 시대의 대한민국에 또 다른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사라지는 소아외과 의사들
대한민국에서 소아외과 수술을 집도할 수 있는 의사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2024년 기준, 실제 진료 중인 소아외과 전문의는 약 44명이며, 학회 등록 인원은 약 50명 수준으로 추정된다. 이는 인구 100만 명당 1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심각한 인력 부족 상태를 보여준다.
상황은 해가 갈수록 악화일로다. 최근 5년간 배출된 소아외과 세부 전문의는 연평균 2~3명에 그쳤으며, 이마저도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
전공의들의 소아외과 기피 현상은 이미 위험 수위를 넘었다.
2025년도 상반기 전공의 모집 결과에서 소아청소년과 지원율은 17.4%로, 정원 대비 채용률이 역대 최저 수준이었다. 외과계열 역시 정원 미달 사태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고난도 분야인 소아외과를 지망하는 젊은 의사를 찾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이러한 인력 공백은 곧바로 진료 공백으로 이어진다. 지방에서는 소아 중증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기 어려운 ‘의료 사막화’가 가속화된 지 오래다.
급한 수술이 필요한 아이를 데리고 몇 시간씩 수도권 대형 병원을 찾아 헤매는 ‘원정 진료’는 일상이 되었다.
어렵게 서울의 대형 병원에 도착하더라도 한정된 전문의에게 환자가 집중되면서 수술 대기가 길어지고, 제때 치료받지 못해 병을 키우는 안타까운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왜 소아외과는 위기인가?
소아외과 위기의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그 근간에는 구조적인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첫째, 높은 업무 강도와 낮은 수가 문제다.
소아 환자는 성인과 달리 예기치 못한 변수가 많고, 수술은 고도의 집중력과 섬세함을 요구한다. 신생아부터 청소년까지 다양한 연령대를 다루므로 수술의 난이도는 매우 높다. 하지만 이에 대한 보상 체계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정부가 책정한 의료 수가는 소아외과 의사들의 노고와 위험 부담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병원 경영진 입장에서 소아외과는 수익성이 낮은 진료과로 인식되고, 의사들 역시 지원을 기피하는 구조적 악순환이 반복된다.
둘째, 의료 소송에 대한 과도한 부담감이다.
아이의 생명을 다루는 만큼, 수술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법적 분쟁에 휘말릴 위험이 크다. 선의의 의료 행위였음에도 불구하고 거액의 배상 판결이 나오는 사례가 알려지면서, 젊은 의사들은 위험 부담이 큰 필수의료 분야를 외면하고 있다.
셋째, 저출산으로 인한 미래의 불확실성이다.
합계출산율 0.7명 시대에 진입하면서 소아 환자 자체가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은 소아외과의 미래를 더욱 불투명하게 만든다. 이는 단순히 환자 수 감소를 넘어, 진료과 자체의 존립 기반을 위협하는 심각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정책과 현장의 괴리
의료계와 정부도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일선 병원들은 소아외과 전문의를 확보하기 위해 높은 수준의 연봉을 제시하고 있지만, 지원자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부 병원들은 소아 관련 진료과를 통폐합하며 운영 효율화를 꾀하고 있으나,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정부 역시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정부가 2024년부터 소아·응급 등 필수의료 수가를 단계적으로 인상했으나, 현장의 체감 개선은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수가 인상 폭이 높은 업무 강도와 위험 부담을 상쇄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기대를 모았던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은 2025년 5월 기준 제정이 사실상 무산되고, 정부는 기존 의료분쟁조정법 개정 방향으로 선회했다. 이로 인해 의사들이 진료에만 전념할 수 있는 안정적인 환경 구축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KBR Insight]
한 대학병원 소아외과 교수는 "단순히 수가를 일부 조정하는 것만으로는 현재의 위기적 상황을 해결하기 어렵다. 소아외과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사명감만으로 버티기에는 현실의 장벽이 너무 높다"고 전했다. 그는 "의사들이 소신껏 진료하고 수술할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 보호 장치를 실질적으로 마련하고, 국가가 소아 필수의료를 책임진다는 명확한 정책 신호를 주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미래를 위한 정책 재설계
현재의 위기 상황을 방치할 경우, 대한민국에서 고난도 소아 중증 외과 수술을 받는 것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소아외과 의사 한 명을 양성하는 데 최소 1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의 정책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정책적 보완이 시급하다.
1. 실효성 있는 수가 체계 개편 정부는 중증 소아외과 수술에 대한 연령·중증도별 수가를 신설할 방침이며, 행정예고 단계에서 상대가치 점수 개편도 병행 중이다. 이러한 정책이 현장에서 실질적인 보상으로 이어지도록 정교하게 설계하고, 신속하게 집행하는 것이 관건이다.
2. 의료사고 법적 안정망 재설계
제정이 무산된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을 대신하여, 기존 의료분쟁조정법 개정 등 대안적인 법적 안정망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고의나 중과실이 없는 의료행위에 대한 의사의 부담을 실질적으로 완화하는 방향으로 재설계가 시급하다.
3. 국가 중앙 책임기관 역할 강화 국립중앙의료원 등을 중심으로 소아 필수의료를 전담하는 국가 책임기관의 역할을 강화하고, 권역별 어린이병원과의 연계를 통해 진료 협력체계를 구축하여 지역 의료 격차를 해소해야 한다.
4. 전공의 수련 환경의 질적 개선 과도한 업무 부담을 줄이고, 교육과 수련의 질을 높일 수 있는 표준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젊은 의사들이 필수의료 분야로 유입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5. 사회적 인식 개선과 지원
소아 필수의료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헌신하는 의료진에 대한 존중과 신뢰 문화를 정착시키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소아외과 인력난은 단순히 하나의 진료과가 겪는 어려움이 아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미래 세대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낼 수 있는지에 대한 시험대와 같다. 정부와 의료계, 그리고 사회 전체가 함께 지혜를 모아 실효성 있는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