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폰', '프라다폰' 등으로 글로벌 피처폰 시장을 호령했던 거인. 한때 세계 3위의 휴대폰 제조업체였던 LG전자가 2021년 7월 31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26년간 이어온 휴대폰 사업의 전면 철수는 단순히 한 기업의 사업 실패를 넘어, 한국 IT 산업의 한 시대가 저물었음을 상징하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수많은 언론과 전문가들이 실패 원인을 분석했지만, 대부분 표면적인 현상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 결정을 ‘실패’라는 단 하나의 단어로 규정하는 것은 사건의 본질을 놓치는 것이다.
LG전자의 사업 철수는 실패의 결과물이자, 동시에 미래 생존을 위한 가장 냉철하고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이는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기업, 혹은 새로운 성장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모든 조직에 값비싼 교훈을 던져준다.
샌드위치 전략의 함정: 프리미엄과 가성비 사이에서의 표류
LG전자 MC(Mobile Communications) 사업본부의 몰락을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키워드는 바로 ‘샌드위치 신세’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은 크게 두 개의 전장으로 나뉜다.
하나는 강력한 브랜드 충성도와 혁신 기술로 무장한 애플과 삼성전자가 양분하고 있는 프리미엄 시장이고, 다른 하나는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업체들(화웨이, 샤오미, 오포, 비보 등)이 장악한 중저가 시장이다. LG전자는 이 두 전장 사이의 어중간한 위치에서 길을 잃었다.
프리미엄 시장에서 LG전자의 스마트폰은 애플의 감성적인 브랜드 경험과 강력한 iOS 생태계, 그리고 삼성전자의 압도적인 마케팅 및 부품 수직계열화 역량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소비자들은 100만 원이 넘는 돈을 지불하면서 ‘LG 스마트폰’을 선택해야 할 명확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브랜드 파워의 열세는 곧 제품 가치의 하락으로 이어졌고, 이는 판매 부진의 악순환을 낳았다.
반면, 중저가 시장에서는 중국 업체들의 가격 공세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동일한 성능에 훨씬 저렴한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LG전자의 입지는 급격히 좁아졌다. 결국 프리미엄 시장에서는 브랜드에 밀리고, 중저가 시장에서는 가격에 치이는 ‘샌드위치’ 신세가 고착화되었다. 이는 MC사업본부가 2015년 2분기부터 2021년 1분기까지 23분기 연속 영업적자를 기록하고, 누적 적자가 5조 원에 달하는 처참한 결과로 이어졌다.
생존을 위해서는 이 출혈을 멈추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LG전자는 사진 속 제품과 같이 준수한 디자인과 성능을 갖추고도, ‘G5’, ‘LG 윙’ 등 기술 과시에 가까운 혁신에 치중하다 결국 소비자 가치 창출에 실패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사진 = 코리아비즈니스리뷰 DB]
혁신의 딜레마: 시대를 너무 앞서간 실험들
"LG전자는 혁신이 없어서 망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혁신을 시도하다 길을 잃었다."라는 평가는 곱씹어볼 만하다.
LG전자는 누구보다 먼저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세계 최초의 모듈형 스마트폰 'G5', 두 개의 화면을 활용하는 'V50 ThinQ 듀얼 스크린', 화면이 회전하는 'LG 윙', 그리고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한 '롤러블폰'까지.
이 제품들은 기술적으로 시장의 주목을 받기엔 충분했지만, 정작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하는 ‘고객 가치’를 창출하는 데는 실패했다.
이는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가 주창한 ‘혁신의 딜레마(The Innovator's Dilemma)’ 이론의 전형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LG전자는 하드웨어 중심의 파괴적 혁신에 집착했지만, 정작 스마트폰 시장의 경쟁 패러다임이 하드웨어를 넘어 ‘소프트웨어와 플랫폼 생태계’로 넘어갔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G5의 ‘프렌즈’라 불리는 모듈 액세서리 생태계는 조악했고, LG 윙의 스위블 모드를 활용할 만한 킬러 콘텐츠나 앱은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LG전자의 혁신은 ‘기술 과시’에 그쳤을 뿐, 사용자 경험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거나 강력한 플랫폼 록인(Lock-in) 효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는 기업의 R&D 방향이 시장의 실제 수요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뼈아픈 교훈이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도 그것이 소비자의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시장에서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결정적 단절: '매몰비용의 오류'를 끊어낸 용기
경영학에는 ‘매몰비용의 오류(Sunk Cost Fallacy)’라는 개념이 있다. 이미 투자한 시간, 노력, 돈이 아까워서 미래가 불투명한 사업을 계속 끌고 가는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의미한다.
5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누적 적자와 26년의 역사, 그리고 수많은 인력과 기술 자산은 LG전자에게 거대한 매몰비용이었다. 일반적인 기업이라면 이 매몰비용 때문에 사업 철수라는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
하지만 당시 CEO였던 권봉석 부회장의 결단은 달랐다. 그는 더 이상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행위를 멈추고,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했다.
이는 단순히 실패를 인정하는 것을 넘어, LG전자의 미래 성장 동력에 자원을 재분배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스마트폰 사업에 투입되던 막대한 R&D 비용과 마케팅 인력을 회사의 미래로 점찍은 전장사업(VS), 인공지능(AI), 로봇, B2B 솔루션 등으로 전환함으로써 ‘선택과 집중’ 전략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실제로 LG전자의 VS(Vehicle component Solutions) 사업본부는 스마트폰 사업 철수 이후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전기차, 자율주행차 시장의 개화와 맞물려 LG의 인포테인먼트, 전기차 파워트레인 등의 기술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만약 스마트폰 사업이라는 거대한 적자의 늪에 계속 발이 묶여 있었다면, 이러한 미래 사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LG전자의 사례는 리더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아름다운 퇴장이 남긴 유산: 미래를 위한 교훈
LG전자는 사업을 철수하는 과정에서도 시장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기존 구매 고객들을 위해 사업 종료 이후에도 최대 3년간 운영체제(OS) 업그레이드를 지원하고, 서비스센터를 통한 AS를 지속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단기적인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고객과의 신뢰, 즉 LG 브랜드 전체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책임감 있는 결정이었다. ‘팔고 나면 끝’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시장에서 이는 이례적인 행보였고, ‘아름다운 퇴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결론적으로 LG전자의 휴대폰 사업 철수는 표면적으로는 ‘실패’이지만, 그 이면에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경영학적 인사이트를 담고 있다.
첫째, 시장의 경쟁 구도와 자사의 역량을 냉철하게 분석하여 승산 없는 싸움은 과감히 포기할 줄 아는 전략적 의사결정의 중요성이다.
둘째,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나 막대한 매몰비용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 성장 가능성에 자원을 집중하는 ‘선택과 집중’의 원칙이다.
셋째, 혁신은 기술 자체에 있지 않고, 그것이 어떻게 고객 가치와 플랫폼 생태계로 연결되는지에 성패가 달려있다는 교훈이다. 넷째, 실패를 하더라도 끝까지 고객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통해 브랜드 신뢰라는 무형의 자산을 지켜낼 수 있다는 점이다.
LG전자는 스마트폰을 잃었지만, 대신 미래를 얻었다.
그들의 고통스러운 결정은 불확실성의 시대를 항해하는 수많은 기업과 리더들에게 ‘무엇을 버려야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LG전자의 사업 철수가 단순한 실패 사례가 아닌, 위대한 전략적 후퇴로 기록되어야 할 이유다.

![LG전자가 휴대폰 사업을 뒤로하고 미래 성장 동력인 전장사업과 로봇으로 나아가겠다는 전략적 방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진 = 코리아비즈니스리뷰 자료 사진]](https://epzvqcvbpcduaglyoici.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news-images/legacy-cgi/2025/10/14/1760416433_52847.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