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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과 책임(R&R)’의 모호함이 조직을 잠식하는 방식

‘이 일은 누가 책임져야 합니까?’, ‘제 역할은 어디까지인가요?’ 조직 내에서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이 질문들은 단순한 궁금증을 넘어, 조직의 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위험 신호일 수 있다. 많은 기업들이 성장통을 겪거나,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역할과 책임(Roles and Responsibilities, 이하 R&R) 의 명확한 정의를 놓치곤 한다.

최수진 기자입력 2025년 10월 1일수정 2026년 5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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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기업의 CEO가 조직 내 R&R을 점검하고 있는 모습. 불명확한 R&R이 초래하는 조직 내 비효율과 갈등을 막기 위해서는, 각 구성원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정의하고 공유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사진 = 코리아비즈니스리뷰 DB]
한 기업의 CEO가 조직 내 R&R을 점검하고 있는 모습. 불명확한 R&R이 초래하는 조직 내 비효율과 갈등을 막기 위해서는, 각 구성원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정의하고 공유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사진 = 코리아비즈니스리뷰 DB]

‘이 일은 누가 책임져야 합니까?’, ‘제 역할은 어디까지인가요?’ 조직 내에서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이 질문들은 단순한 궁금증을 넘어, 조직의 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위험 신호일 수 있다. 많은 기업들이 성장통을 겪거나,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역할과 책임(Roles and Responsibilities, 이하 R&R) 의 명확한 정의를 놓치곤 한다.

‘이 일은 누가 책임져야 합니까?’, ‘제 역할은 어디까지인가요?’


조직 내에서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이 질문들은 단순한 궁금증을 넘어, 조직의 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위험 신호일 수 있다.

많은 기업들이 성장통을 겪거나,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역할과 책임(Roles and Responsibilities, 이하 R&R) 의 명확한 정의를 놓치곤 한다. 이는 마치 잘 짜인 교향곡의 악보 없이 각자의 악기만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와 같다.

결국 불협화음이 조직 전체를 뒤덮고, 서서히 침몰하게 만드는 ‘침묵의 암살자’가 되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실적 악화나 부서 간의 잦은 충돌, 혹은 핵심 인재의 갑작스러운 퇴사 이면에는 바로 이 ‘R&R의 모호함’이라는 근본적인 원인이 도사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본 인사이트 4.0에서는 R&R의 불명확성이 어떻게 조직에 치명적인 문제들을 야기하는지, 학술적 연구와 실제 기업 사례를 바탕으로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기업의 리더와 HR 담당자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고자 한다.

1. 업무 중복과 누락의 늪: 비효율의 극대화


R&R이 불명확할 때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은 업무의 중복과 누락이다.

A팀과 B팀이 동일한 시장 조사를 각각 진행하여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는가 하면, ‘누군가는 하겠지’라는 생각에 정작 중요한 고객 클레임 처리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는 단순히 실무자의 부주의 문제가 아니다. 다수의 경영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역할 모호성(Role Ambiguity)은 구성원의 직무 스트레스를 높이고 직무 만족도를 떨어뜨려 궁극적으로 조직 성과 저하로 이어지는 핵심 요인으로 검증되었다.

역할의 ‘회색 지대(Gray Area)’가 넓어질수록 직원들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향을 보이며, 이는 조직 내 사일로(Silo) 현상을 더욱 심화시킨다.

각 부서는 자신의 역할만 방어적으로 수행하려 하고, 부서 간 협업은 요원해진다.

이는 결국 조직 전체의 민첩성을 떨어뜨리고, 급변하는 시장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없는 경직된 구조를 만들게 된다.

2. 갈등의 일상화: 책임 소재를 둘러싼 끝없는 전쟁


"이건 제 일이 아닌데요.", "그건 A팀에서 담당해야 할 문제입니다."

R&R의 경계가 모호할수록 문제 발생 시 책임 소재를 둘러싼 갈등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성공의 열매는 서로 자신의 공이라고 주장하지만, 실패의 책임은 서로에게 떠넘기는 ‘핑퐁 게임’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러한 책임 전가는 개인 간의 감정적인 갈등을 넘어 부서 전체의 불신과 반목으로 이어진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arvard Business Review)의 여러 아티클에서 지적하듯, 이러한 현상은 ‘책임의 진공상태(Accountability Vacuum)’를 만들어낸다.

책임의 진공상태에 빠진 조직은 문제 해결이라는 본질보다 책임 회피에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중요한 의사결정은 계속해서 지연되고, 누구도 총대를 메려 하지 않기 때문에 혁신적인 시도나 과감한 도전은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과거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가 겪었던 ‘잃어버린 10년’의 사례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모바일 혁명 대응 실패의 원인을 단순히 R&R의 문제로만 단정할 수는 없다. 당시의 경직된 조직 문화, 시장 변화에 대한 전략적 오판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결과다.

하지만 당시 부서 간의 극심한 경쟁과 불분명한 역할 경계가 부서 이기주의를 낳고, 전사적인 협력을 저해하여 혁신의 속도를 현저히 떨어뜨리는 데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점은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하는 바다.

3. 공정한 평가와 보상의 실종: 동기부여 저하와 핵심 인재 이탈


직원들이 조직에 기여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노력과 성과가 공정하게 평가받고 있다는 믿음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R&R이 불명확하면 공정한 성과 평가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다. 무엇을 기준으로, 어떤 성과를 측정해야 할지에 대한 객관적인 잣대가 없기 때문이다.

평가자는 주관적인 인상이나 목소리가 큰 직원의 의견에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 높고, 직원들은 ‘일을 잘하는 것’보다 ‘일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더 집중하게 된다. 이는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며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 ‘조용한 전문가’들의 사기를 꺾고, 조직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실제로 다수의 메타분석 연구는 역할 모호성이 높을수록 직무 만족도와 조직 몰입도가 감소하며, 이는 이직 의도를 높이는 주요 변수임을 확인했다. 즉, 불명확한 R&R은 핵심 인재가 조직을 떠나는 여러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구글(Google)OKR(Objective and Key Results)이라는 목표 관리 시스템을 통해 전사적인 목표와 개인의 역할을 명확하게 연결하고, 이를 투명하게 공유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명확한 역할 정의와 그에 따른 성과 측정이 공정한 평가와 보상의 기반이 되며, 이는 곧 동기부여인재 유지의 핵심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4. 리더십의 위기: 불명확한 지시와 신뢰 상실


R&R의 모호함은 팀원들뿐만 아니라 리더에게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자신의 팀이 정확히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고, 어떤 목표를 책임져야 하는지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리더는 명확하고 구체적인 업무 지시를 내릴 수 없다. 지시는 추상적이고 모호해지며, 팀원들은 리더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불필요한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알아서 잘 해봐", "이거 중요하니까 신경 써서 처리해"와 같은 불명확한 지시는 결국 리더십에 대한 신뢰 상실로 이어진다.

여러 실증 연구에서 밝혀졌듯, 구성원의 역할과 목표를 명확히 정렬하는 것은 리더의 핵심 역량 중 하나다. 이것이 이뤄지지 않을 때 팀원들은 리더가 방향을 제시해주지 못한다고 느끼며, 업무 추진에 있어 혼란과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세계 최대의 스트리밍 기업 넷플릭스(Netflix)의 ‘자유와 책임(Freedom and Responsibility)’ 문화는 이러한 노력의 정수를 보여준다.

넷플릭스는 직원들에게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부여하는 대신, 각자가 자신의 역할과 책임 영역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되어 명확한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한다. 이는 리더가 명확한 R&R의 틀 안에서 팀원들을 신뢰하고 권한을 위임할 때, 비로소 조직 전체의 역량이 극대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결론: R&R, 조직의 미래를 결정하는 설계도


R&R의 명확화는 단순히 업무 분장을 잘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설계도를 그리는 작업이며, 조직의 효율성, 안정성, 그리고 지속가능성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불명확한 R&R은 단기적으로는 비효율과 갈등을 낳고, 장기적으로는 조직의 경쟁력을 잠식하고 인재 유지에 어려움을 초래하는 보이지 않는 위험 요소다.

이제 리더와 HR 담당자들은 우리 조직 내에 존재하는 ‘역할의 회색 지대’를 명확히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

지금 당장 조직의 R&R 매트릭스를 점검하고, 구성원들과의 충분한 소통을 통해 각자의 역할을 명확히 재정의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투명하고 명확한 R&R이라는 단단한 반석 위에 세워진 조직만이 거친 비즈니스 환경 속에서 흔들림 없이 성장하며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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