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를 둘러싼 미국 정부의 행보, 비트코인을 전략자산으로 편입하려는 변화를 시사한다. [이미지 = 코리아비즈니스리뷰 DB]
암호화폐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과거에는 투기 자산으로 치부되던 암호화폐가 이제는 한 국가의 안보와 경제를 좌우하는 핵심 전략자산으로 부상할 조짐을 보인다. 특히 세계 경제의 패권을 쥐고 있는 미국에서 이러한 변화의 움직임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과거 바이든 행정부가 암호화폐 규제 강화에 초점을 맞췄던 것과 달리, 새로 출범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를 적극적으로 포용하고 이를 국가의 전략적 자산으로 활용하겠다는 파격적인 정책을 내세우면서 시장에 큰 파장을 일으킨다.
이는 단순히 시장의 변화를 넘어,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근본적인 재편을 예고하는 중대한 신호탄으로 분석된다.
트럼프 정부, 암호화폐의 ‘전략자산화’ 논의 본격화
최근 미국 정치권과 금융 업계에서는 암호화폐를 '전략적 자산'으로 편입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이는 단순히 새로운 투자 상품의 출현을 넘어, 암호화폐가 가진 탈중앙화, 국경 없는 송금, 그리고 희소성이라는 특성이 국가 경제 및 안보에 기여할 수 있다는 인식의 확산에 기인한다. 특히 트럼프 정부는 2025년 3월 행정명령을 통해 '전략적 비트코인 비축(Strategic Bitcoin Reserve)'을 공식 수립하면서, 미 정부가 압류·몰수한 20만 개 이상의 비트코인을 '준비자산(Reserve Asset)'으로 장기 보관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비트코인 외 이더리움, XRP(리플), 솔라나, 카르다노 등 몰수된 디지털 자산 스톡파일 역시 동일하게 정부 비축 자산군으로 언급됐다.
이러한 정책적 변화는 여러 요인에 의해 가속화되고 있다.
먼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디지털 금융 혁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의도가 있다. 암호화폐 기술, 즉 블록체인 기술을 선점하고 관련 산업을 육성함으로써 미래 금융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둘째, 지정학적 리스크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금과 같은 전통적인 안전자산을 보완하거나 대체할 새로운 가치 저장 수단에 대한 수요가 커진다. 비트코인은 ‘디지털 금’으로 불리며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셋째, 미국의 강력한 달러 패권에 도전하는 국가들의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비트코인 비축 법안과 시장의 기대
미국 정부의 암호화폐 전략자산화 논의는 구체적인 법안 발의로 이어진다.
일례로, 루미스 상원의원에 의해 발의된 비트코인 법(BITCOIN Act)안은 향후 5년간 미국 정부가 최대 1백만 개 비트코인을 비축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항을 담고 있었다. 이 법안은 현재 의회에서 심사 중으로 아직 입법화되지 않았다.
실제 정부의 비축은 새로운 예산 투입 없이 압류·몰수된 현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또한, 텍사스 등 일부 주 정부 차원에서 비트코인 비축 법안이 통과되거나 논의되고 있지만, 애리조나, 플로리다, 몬타나와 같이 거부되거나 실패한 사례도 혼재하는 등 주별로 정책적 차이가 크다.
이러한 정책적 변화는 암호화폐 시장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무엇보다 규제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기관 투자자들의 진입이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비트코인 현물 ETF의 승인은 이러한 흐름의 정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또한,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명확한 규제 프레임워크가 마련되면서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디지털 금융의 혁신을 도모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2025년 트럼프 정부와 의회에서는 '지니어스법(GENIUS Act, 스테이블코인 규제)', '클레러티법(Clarity Act, 암호화폐를 디지털 상품으로 규정)', '반CBDC법(Anti-CBDC Act, 미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발행 금지)' 등 암호화폐 산업 중심의 입법 패키지가 진행되었다.
'클레러티법'은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주요 암호화폐를 '증권'이 아닌 '디지털 상품'으로 분류하여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업계 간의 오랜 분쟁을 완화하는 데 기여했다. 다만, 일부 법안(특히 반CBDC법)은 아직 상원에서 최종 통과되지 않았다.
[KBR Insight]
조지메이슨대학 경제학 교수이자 블룸버그 칼럼니스트인 타일러 코웬(Tyler Cowen)은 미국이 비트코인을 매수하면 글로벌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지위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는 비트코인 ETF가 이미 활성화되어 있는 만큼 향후 미 정부의 비트코인 투자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비트코인이 금을 대체하는 새로운 가치 저장 수단으로 부상할 경우, 미국이 이를 선점함으로써 금융 패권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도권 편입의 가속화
미국 정부의 암호화폐 전략자산화 움직임에 따라, 금융 기업을 포함한 여러 업계에서도 발 빠른 대응을 보인다.
골드만삭스, JP모건 등 전통적인 금융기관들은 암호화폐 관련 투자 상품을 출시하거나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금융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선다.
테슬라, 페이팔, 스퀘어와 같은 대기업들은 이미 비트코인 및 기타 암호화폐를 상품 및 서비스에 대한 결제 수단으로 허용하며 암호화폐의 주류 경제 편입을 가속화하고 있다. 또한, 스테이블코인을 기반으로 한 국경 간 결제 시스템 도입을 위해 비자, 아마존 등 글로벌 기업들이 협력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암호화폐가 단순히 투기 자산을 넘어 실제 금융 거래에서 사용되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다.
반면, 이러한 변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암호화폐 시장의 높은 변동성과 투기성이 금융 시스템의 불안정성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정부가 비트코인과 같은 특정 암호화폐를 전략자산으로 지정할 경우, 시장 왜곡을 초래하고 개인의 금융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러한 우려는 미국 일리노이주가 트럼프 정부의 연방 차원 친암호화폐 기조와 별개로 '디지털자산 및 소비자 보호법(DACPA)' 등 엄격한 투자자 보호 중심 주법을 2025년 8월 통과시켜, 연방과 주 정책이 분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향후 전망 및 시사점: 미래 금융 패권 경쟁의 서막
미국 정부의 암호화폐 전략자산화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주목해야 할 중요한 이슈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가 금이나 외화처럼 국가의 공식적인 자산으로 인정받게 된다면, 이는 단순히 시장 규모를 키우는 것을 넘어 전 세계 금융 질서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비트코인은 이미 2025년 초 기준으로 역대 최고치에 근접하며 주요 자산군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적 의지가 강력한 만큼, 앞으로도 규제 완화와 제도권 편입은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장밋빛 미래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암호화폐 시장은 여전히 해킹, 사기, 기술적 결함 등 다양한 리스크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투자자 보호를 위한 명확하고 강력한 법적 규제 프레임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 미국의 움직임은 다른 국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미 중국은 디지털 위안화를 통해 달러 패권에 도전하고 있으며, 유럽연합(EU) 또한 자체적인 디지털 유로화를 추진하는 등 디지털 통화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한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는 이러한 국제적 흐름을 면밀히 분석하고, 자국의 상황에 맞는 합리적인 규제와 산업 육성 정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암호화폐는 이제 더 이상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전략적 요소로 자리 잡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