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는 전 세계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창의성과 상상력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기업이다. 하지만 이 놀라운 브랜드의 역사는 단순히 성공과 성장만으로 채워져 있지 않다. 2000년대 초, 레고는 파산 직전의 심각한 위기를 겪었다. 당시 레고의 문제는 단순히 매출 감소가 아니었다.
기업 내부의 조직 문화와 경영 시스템이 창의성을 억누르는 구조적인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과도한 확장을 통한 사업 다각화, 비효율적인 제품 개발 프로세스, 그리고 고객과 단절된 경영 방식은 레고를 깊은 수렁에 빠뜨렸다.
그러나 레고는 이 위기를 기회 삼아 조직의 근본적인 혁신을 단행했고, 그 결과 창의성을 시스템적으로 관리하고 촉진하는 독특한 조직 문화를 구축했다.
본 인사이트4.0 은 레고가 어떻게 창의성을 '자유'에 맡기지 않고, '관리'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혁신을 이끌어냈는지에 대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위기의 시작: '창의적 혼돈'과 경영의 실패
레고의 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창의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데서 시작되었다.
1990년대 후반, 레고는 디지털 기술의 부상과 비디오 게임의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테마와 제품 라인을 무분별하게 확장했다. 레고랜드 테마파크, 레고 시계, 의류 등 레고의 정체성과 거리가 먼 사업들에 손을 대면서 핵심 역량을 잃어갔다.
당시 경영진은 '창의성'을 독려한다는 명분 아래 디자이너들에게 제약 없는 자유를 부여했고, 이는 곧 비용 효율성과 제품의 품질 관리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
디자이너들은 매년 수많은 새로운 브릭을 고안해냈고, 이로 인해 브릭의 종류가 12,000개 이상으로 급증했다. 이는 생산 비용의 급증과 재고 관리의 복잡성으로 이어졌다.
수많은 테마가 난립하면서 고객들은 혼란을 느꼈고, 레고 특유의 '시스템적 상호 호환성'은 약해졌다.
레고의 본질인 '어떤 브릭이든 서로 연결할 수 있다'는 철학이 무너진 것이다. 2003년, 레고는 창립 이래 최악의 적자를 기록하며 파산 위기에 내몰렸다. 이는 '창의성'이 경영의 시스템과 분리될 때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턴어라운드의 시작: '레고다움'의 재정의와 경영 혁신
2004년, 요르겐 비그 크누드스토르프(Jørgen Vig Knudstorp)가 CEO로 취임하면서 레고의 대대적인 쇄신이 시작되었다.
그는 '창의성'을 단순히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관된 시스템 안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으로 재정의했다.
그의 첫 번째 과제는 복잡하게 얽힌 조직을 해체하고, 레고의 핵심 역량에 다시 집중하는 것이었다.
크누드스토르프는 불필요한 사업들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브릭의 종류를 절반 이상(13,000개에서 6,500개로) 줄였다. 또한, 제품 개발 프로세스를 효율화하고, 비용 관리를 강화했다. 이는 창의성을 억압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흩어져 있던 창의적 에너지를 하나의 목표로 모으는 작업이었다.
그는 레고가 가장 잘하는 것, 즉 '블록을 조립하는 즐거움'에 다시 집중하는 전략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조직의 의사결정 과정을 단순화하고, KPI(핵심성과지표)의 가짓수를 줄여 직원들이 핵심 과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경영 혁신은 단순히 비용을 절감하는 차원을 넘어섰다. 이는 창의성이 무분별한 자유 속에서 표류하지 않도록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리더십의 표본이었다.
크누드스토르프는 '레고다움'이라는 본질적 가치를 회복함으로써 조직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견고한 토대를 마련했다.
창의성을 시스템화하다: 고객과 함께하는 공동 창작 플랫폼
레고가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금 창의성의 아이콘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동력은 '레고 아이디어(LEGO Ideas)' 플랫폼이었다. 이는 경영 혁신의 결과물이자 창의성을 시스템으로 편입시킨 대표적인 사례다.
레고 아이디어는 고객들이 직접 만든 창작물을 제안하고, 다른 사용자들의 투표를 통해 1만 표 이상을 받으면 레고의 공식 제품으로 출시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플랫폼의 성공은 단순히 크라우드소싱을 넘어선다. 이는 레고가 고객을 단순히 소비자가 아닌, 공동 창작자이자 혁신의 파트너로 인식했음을 보여준다.
레고는 레고 아이디어를 통해 외부의 창의적 에너지를 조직 내부로 흡수하는 파이프라인을 구축했다. 이를 통해 레고는 시장의 트렌드와 고객의 니즈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었고, 혁신의 속도를 가속화할 수 있었다.
레고 아이디어는 조직 문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디자이너들은 고객의 아이디어에 영감을 받고, 그들의 피드백을 직접 반영하는 과정을 통해 창의적 역량을 더욱 강화할 수 있었다. 이처럼 고객과의 협업은 레고의 조직 문화에 '개방성'과 '피드백 기반의 성장'이라는 새로운 DNA를 심어주었다.
혁신의 연속: 디지털과 스토리를 결합한 새로운 창의성
레고는 단순히 블록이라는 물리적 한계에 갇히지 않았다.
경영 위기를 겪으면서도 디지털 혁신에 대한 투자를 멈추지 않았던 경험은 새로운 성장의 발판이 되었다. 특히, 마인드스톰(Mindstorms)과 같은 프로그래밍 가능한 로봇 시스템을 개발한 경험은 레고가 블록 놀이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하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레고는 '바이오니클'(Bionicle) 시리즈를 통해 '스토리텔링'이라는 새로운 창의성의 영역을 개척했다. 이는 단순히 블록을 조립하는 것을 넘어, 스토리, 영화, 게임 등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레고 세계관을 확장하는 시도였다. 이처럼 레고는 창의성을 제품 자체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콘텐츠와 플랫폼으로 확장하는 전략을 펼쳤다.
최근에는 레고 히든사이드(Hidden Side)처럼 증강현실(AR)을 접목한 제품을 출시하며 디지털 기술을 통해 블록 놀이의 재미를 극대화하고 있다.
이는 레고의 창의성이 단순히 물리적 블록에 머무르지 않고, 디지털 세계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론: 창의성의 '자유'를 '시스템'으로 담아내는 조직의 힘
레고의 사례는 창의성이 무분별한 자유 속에서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경영 목표와 견고한 시스템 위에서 꽃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레고는 파산 위기라는 극적인 경험을 통해 '창의적 혼돈'을 '창의적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경영자에게 레고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첫째, 핵심 역량을 재정의하고, 불필요한 것은 과감하게 정리하는 단순화 전략이 창의성의 근간을 마련한다.
둘째, 고객을 단순히 소비자가 아닌 공동 창작자로 끌어들여 개방형 혁신을 추구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성장의 열쇠다.
셋째,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핵심 비즈니스를 확장하고, 새로운 창의적 경험을 제공하는 데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
레고는 창의성을 조직의 DNA로 만드는 데 성공했고, 이는 곧 지속 가능한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창의성은 단순히 개인의 재능에 맡겨둘 문제가 아니라, 조직 전체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시스템인 것이다.

![레고 의 위기 극복 과정은 창의성 이 무분별한 자유가 아닌, 명확한 경영 목표와 시스템 위에서 꽃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팀원들이 함께 창의적 문제 해결 에 참여하며 혁신 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레고 의 조직 문화 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진 = 코리아비즈니스리뷰 DB]](https://epzvqcvbpcduaglyoici.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news-images/legacy-cgi/2025/09/23/1758611032_89937.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