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플라스틱 오염 정부 간 협상 위원회(INC)의 추가 협상 회의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결렬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당초 2024년 말까지 법적 구속력 있는 플라스틱 오염 종식 국제 조약을 마련하기로 했지만, 핵심 쟁점에 대한 국가 간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협상이 난항에 부딪힌 것이다.
이번 유엔 플라스틱 조약 협상 결렬은 플라스틱 오염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면서도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각국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끝없는 플라스틱 오염 속, 해답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하는 유엔 플라스틱 조약 협상. 각국의 이기적인 대립으로 인해 지구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사진 = 코리아비즈니스리뷰 DB]
이번 회의에서는 협상 위원회 의장이 제안한 새로운 초안이 많은 국가로부터 거부당하며 교착 상태에 빠졌다. 특히 플라스틱 생산량 감축과 유해 화학물질 규제 등 핵심 의제에 대한 이견이 첨예했다.
플라스틱 생산에 의존하는 석유 생산국들을 중심으로 한 '유사 입장 그룹(like-minded group)'은 생산량 감축에 반대하며 폐기물 관리에 초점을 맞춘 협약을 주장했다. 반면, 유럽연합(EU)과 많은 개발도상국들은 플라스틱의 '전체 생애주기'를 포괄하는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며 맞섰다.
이처럼 국제 플라스틱 조약 협상이 연이어 결렬되면서 전 세계가 직면한 플라스틱 오염 위기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매년 4.6억 톤 이상의 플라스틱이 생산되고 있으며, 이 중 약 50%는 일회용으로 사용된 후 버려지고 있다.
이러한 막대한 양의 플라스틱 폐기물은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고, 미세플라스틱으로 분해되어 먹이사슬을 교란하는 등 심각한 환경 문제를 초래한다.
이번 협상 결렬은 단순한 외교적 실패를 넘어, 플라스틱 오염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구적 위기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있다.
유엔 플라스틱 조약 협상, 반복되는 실패의 원인과 배경
유엔 플라스틱 조약 협상이 반복적으로 합의 도출에 실패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플라스틱 생산 및 소비를 둘러싼 이해관계의 충돌에서 비롯된다.
이번 제네바 회의에서 특히 두드러졌던 '유사 입장 그룹'은 석유화학 산업에 기반을 둔 경제 구조를 가진 국가들로, 플라스틱 생산량에 대한 법적 구속력 있는 규제 도입에 강력히 반대해 왔다. 이들은 협약의 초점을 플라스틱 폐기물 관리, 즉 재활용과 순환 경제 촉진에만 맞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국가와 환경 단체들은 플라스틱 생산 자체를 규제하지 않고서는 오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플라스틱 생산량 감축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플라스틱 생산은 대부분 화석 연료에서 비롯되며, 이는 기후 변화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전문가들은 플라스틱 생산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고 지적하며, 플라스틱 전반의 생산과 소비를 줄이는 것이 기후 위기 대응에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이번 협상에서는 의사결정 방식에 대한 문제점도 부각되었다.
만장일치 합의를 요구하는 기존의 의사결정 규범은 소수의 반대만으로도 협상 전체를 좌초시킬 수 있는 약점을 드러냈다.
피지 대표단은 "만약 합의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면 가치 있는 것이지만, 과정을 지연시킨다면 그렇지 않다"고 비판하며, 보다 효율적인 의사결정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의사결정 구조적 문제는 국제 플라스틱 조약의 야심찬 목표 달성을 가로막는 주요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국제 협약 결렬이 가져올 영향과 미래 전망
이번 플라스틱 협상 결렬은 전 세계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법적 구속력을 가진 글로벌 협약 없이 각국의 자발적인 노력에만 의존하게 되면, 효과적인 규제와 관리가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해양 플라스틱 오염과 같은 국경을 넘는 환경 문제는 개별 국가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 불가능하다. 투발루 대표단은 "수백만 톤의 플라스틱 폐기물이 계속해서 우리 바다에 버려질 것"이라고 경고하며, 조약 실패의 심각성을 역설했다.
반면, 일부 환경 단체들은 이번 협상 결렬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약한 조약보다는 무조약이 낫다'는 입장이다.
만약 생산 규제나 유해 화학물질 규제 등 핵심 내용이 빠진 채 협약이 체결되었다면, 그 효용성은 크게 떨어졌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이번 실패를 교훈 삼아 다음 협상에서는 보다 강력하고 효과적인 규제 방안을 담아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플라스틱 문제 해결을 위한 향후 과제는 명확하다. 다음 협상에서 교착 상태를 해소하고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의사결정 방식의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플라스틱 산업의 이해관계를 가진 국가와 환경 보호를 우선시하는 국가들 간의 간극을 좁힐 수 있는 외교적 노력이 절실하다.
유엔환경계획(UNEP) 사무총장은 "이 문제는 멈추지 않을 것이므로, 우리의 노력도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협상 재개 의지를 밝혔다.
한국의 역할과 나아가야 할 방향
이번 플라스틱 협상에서 한국은 작년 부산에서 개최된 INC-5.1의 개최국으로서 당사국 간의 입장 차이를 좁히기 위한 건설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
특히 플라스틱의 순환 경제 전환과 관련된 정책적 노하우를 공유하며 협상 기반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협상 결렬이라는 결과는 우리 정부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은 글로벌 플라스틱 위기 해결을 위한 국제 공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앞으로도 중재자 역할을 지속해야 한다.
[인사이트 박스]
KBR경영연구소는 이번 유엔 플라스틱 조약 협상 결렬 사태를 단순히 외교적 실패로 볼 것이 아니라, 기업과 소비자가 함께 변화를 모색해야 할 중요한 신호로 해석한다. 특히 국내 기업들은 법적 규제에 앞서 ESG 경영을 강화하고, 플라스틱 대체재 개발 및 재활용 기술 혁신에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기업이 플라스틱 폐기물 감축을 위한 자발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제품 생산 단계에서부터 친환경적인 설계를 도입하는 등 선제적인 노력을 기울인다면, 이는 단순한 환경 보호를 넘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또한 소비자들도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재활용을 생활화하는 등 의식 있는 소비 행동으로 변화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민간 부문의 자율적이고 적극적인 참여가 국제 사회의 공조를 이끌어내는 중요한 동력이 될 수 있다.
결론: 플라스틱 없는 미래를 위한 지속적인 노력의 필요성
유엔 플라스틱 조약 협상이 결렬된 것은 인류가 직면한 환경 문제의 복잡성과 난이도를 다시 한번 보여주는 사례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더 강력하고 포괄적인 플라스틱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앞으로의 협상에서는 플라스틱 생산 단계부터 폐기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는 실질적인 규제가 포함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각국의 적극적인 의지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단순히 플라스틱 오염을 막는 것을 넘어,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순환 경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환경과 인간의 건강을 동시에 보호하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이번 실패를 좌절이 아닌, 더 나은 해결책을 모색하는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