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의 인공지능 전략이 기술 주권 상실과 미국 기술 기업에 대한 종속성 심화라는 심각한 논쟁에 휩싸였다.
영국 정부는 AI를 활용하여 공공 서비스 효율을 높이고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으나, 비판론자들은 이러한 정책이 오히려 영국의 공공 인프라와 데이터를 미국 AI 모델의 시험대와 데이터 공급원으로 전락시킬 위험이 크다고 경고하고 있다.
특히 국민건강보험(NHS)과 같은 핵심 공공 부문 데이터가 해외 거대 기술 기업의 소유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기술 주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던져지고 있다. AI 기술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막연한 낙관론에 가려진 영국의 현실과 과제를 심층적으로 들여다본다.
기술 주권 상실의 징후들
영국 정부가 AI 전략을 통해 공공 부문 효율성 증대와 생산성 향상이라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여러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다.
먼저, 영국은 자체적인 클라우드 생태계가 부재하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는 공공 데이터를 포함한 중요 정보가 미국 소유의 클라우드 컴퓨팅 네트워크에 의존하게 만드는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이러한 구조는 공공 데이터가 영국 국민이 아닌, 해외 기업의 수익 창출에 활용될 수 있다는 비판을 낳고 있다. 즉, 영국의 공공 인프라가 미국 AI 모델의 학습장 역할을 하게 되는 '추출주의(extractivism)'적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영국 정부는 NHS와 지방 정부 등에서 수집된 방대한 데이터를 해외 기업이 구축하고 학습시킨 AI 모델에 활용하도록 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데이터로부터 창출되는 가치는 모델 개선이나 제품 개발로 이어지지만, 그 이익은 영국 국민이 아닌 미국 주주들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이는 단순한 기술 의존을 넘어, 국가적 자산인 데이터를 해외에 넘기는 행위로 비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AI 도입으로 인한 일자리 창출 효과를 강조하지만, 데이터센터 구축과 같은 AI 인프라는 자본 집약적이고 에너지 소모가 많으면서도 소수의 인력만을 고용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는 AI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기보다는 기존 일자리를 대체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MIT의 경제학자 다론 아세모글루 교수가 주장한 것처럼, 현재의 AI 발전은 노동력 보강이 아닌 노동력 대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분석이 이를 뒷받침한다.
AI 전략의 배경과 원인: 상상력의 부재와 맹목적 효율성 추구
영국 정부의 이러한 AI 전략은 단기적인 효율성 극대화에만 초점을 맞추고, 장기적인 기술 주권과 사회적 파급효과에 대한 깊은 고민이 부족하다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정부가 AI를 단순히 "아웃소싱을 통한 효율성 증대"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짙다. 자체적으로 공공 클라우드를 구축하거나, 오픈소스 AI 모델을 지원하는 등 기술 발전의 방향을 사회적 목표에 맞게 주도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거대 기술 기업의 솔루션을 도입함으로써 당장의 행정적 편의와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이는 영국의 디지털 기술 발전 역량을 스스로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또한, 앨런 튜링 연구소와 같은 영국의 주요 AI 연구기관들이 겪고 있는 내분과 혼란은 정부의 AI 전략이 얼마나 명확한 계획과 방향성 없이 추진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이는 영국이 기술 개척자(tech pioneer)가 되기보다는, 다른 나라의 디지털 제국에 속한 잘 관리된 고객 국가(well-governed client state)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는 지적에 힘을 싣는다.
다론 아세모글루 교수는 AI가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인 파급효과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를 제시한다. 그는 골드만삭스의 예측과 달리 AI가 창출할 경제적 이득이 기대치에 훨씬 못 미칠 것이며, 그 이득의 대부분은 미국 빅테크 기업이 독점할 것으로 분석했다.
이러한 전문가들의 견해는 영국 정부가 추구하는 AI 전략의 경제적 효용성에도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영향 및 전망: 노동 시장 양극화와 기술적 종속 심화
영국 정부의 현재 AI 전략이 지속된다면, 다음과 같은 중대한 영향들이 예상된다.
먼저, 노동 시장의 양극화가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AI가 노동력 보강이 아닌 대체에 초점을 맞춘다면, 저숙련 노동자들의 일자리는 빠르게 사라지고, AI 기술을 활용하는 고숙련 전문가들의 임금은 상승할 것이다. 이는 사회 전체의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 영국 정부가 제시한 생산성 향상 목표가 결국은 더 적은 일자리와 더 나은 서비스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둘째, 기술적 종속성이 고착화될 것이다. 자체적인 AI 인프라와 기술 생태계를 구축하지 않고 해외 기업에 의존하게 되면, 영국의 공공 및 민간 부문은 해당 기업의 정책 변화나 기술적 방향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이는 단순한 경제적 손실을 넘어, 국가 안보와 주권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심각한 문제이다.
셋째, 혁신의 동력이 약화될 위험이 있다. 정부가 대형 기술 기업에 의존하며 자체적인 연구개발이나 스타트업 생태계 육성을 소홀히 할 경우, 장기적으로 영국은 혁신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잃게 될 것이다. 이는 미래 성장을 위한 핵심 동력을 잃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디지털 주권 확보를 위한 전환적 사고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고 진정한 AI 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영국 정부의 AI 전략에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우선, 디지털 주권 확보를 최우선 목표로 설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공 데이터의 활용과 보호에 대한 명확한 원칙을 수립하고, 공공 부문 전용 클라우드 인프라를 구축하여 데이터 주권을 확립해야 한다. 또한, 오픈소스 AI 모델 개발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여 특정 기업에 종속되지 않는 기술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둘째, AI의 사회적 가치를 고려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AI가 노동력을 대체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역량을 보강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기술이 발전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AI 기술을 활용한 교육 및 재훈련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AI 도입으로 인한 일자리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셋째, 국가적 차원의 AI 거버넌스를 강화해야 한다. 앨런 튜링 연구소와 같은 핵심 기관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정부 부처 간 협력을 통해 일관성 있고 장기적인 AI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학계, 산업계, 시민 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AI 기술이 사회 전체의 이익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
결론: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비전과 실천
영국은 AI 기술의 급부상 속에서 기술 주권을 상실하고 해외 기업에 종속될 수 있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현재의 AI 전략은 단기적인 효율성과 비용 절감에 치우쳐 있으며, 장기적인 국가 경쟁력과 사회적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진정한 AI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디지털 주권을 확보하고 AI를 사회적 가치 증진의 도구로 활용하겠다는 명확한 비전과 이를 뒷받침하는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AI 인공지능 기술이 노동 시장의 불안정성을 야기하고 기술적 종속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정부가 맹목적인 기술 낙관론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하고 주체적인 AI 정책을 펼쳐나가야 한다. 이는 단순히 영국의 미래뿐만 아니라, 기술 패권 시대의 다른 국가들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영국의 국기인 유니언 잭을 배경으로 한 남성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데이터와 인공지능을 상징하는 디지털 입자들이 흩뿌려져 있다. 이는 영국 정부의 AI 전략이 가져올 기술적 미래와 동시에,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데이터 주권 상실 및 기술 종속성에 대한 깊은 고민과 우려 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진 = 코리아비즈니스리뷰 DB]](https://epzvqcvbpcduaglyoici.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news-images/legacy-cgi/2025/08/20/1755646280_56418.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