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가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이는 EU보다 탄소 배출 규제가 약한 국가에서 생산된 제품을 EU로 수입할 때, 해당 제품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량에 대해 EU의 배출권거래제(ETS)와 연동된 가격을 부과하는 제도다. 사실상의 ‘탄소 관세’인 CBAM은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력, 수소 등 6개 품목에 우선 적용되며, 향후 유기화학물질, 폴리머 등으로의 확대 또한 논의되고 있다.
한국은 대(對)EU 수출 의존도가 높은 만큼, 특히 철강과 알루미늄 등 주력 수출 산업에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당장 2025년까지의 전환기간을 거쳐 본격적인 비용 부담이 현실화되는 2026년을 앞두고, CBAM은 한국 수출기업에 피할 수 없는 위기이자 동시에 새로운 기회라는 평가가 교차하고 있다.
1. 배경 및 동향: 거스를 수 없는 흐름, ‘탄소중립’ 무역 시대의 개막
EU가 CBAM을 도입한 표면적인 이유는 ‘탄소 누출(Carbon Leakage)’ 방지다.
EU 역내 기업들이 높은 탄소 비용을 피해 규제가 느슨한 역외 국가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는 것을 막고, 역외 기업에도 동등한 수준의 탄소 비용을 부담시켜 공정한 경쟁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2050년 탄소중립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EU의 강력한 정책 의지와 기후변화 이슈를 글로벌 무역 규범의 핵심으로 끌어오려는 전략적 포석이 깔려있다.
CBAM은 2023년 10월부터 2025년 12월까지 전환기간을 거친다. 이 기간 동안 수출기업은 EU 수입업자를 통해 분기별로 제품의 탄소 배출량을 보고해야 할 의무만 있다. 그러나 2026년 1월부터는 실제 탄소 배출량에 상응하는 ‘CBAM 인증서’를 구매하여 제출해야만 한다.
인증서 가격은 EU-ETS 주간 평균 경매 가격에 따라 결정되는데, 최근 EU-ETS 탄소배출권 가격이 톤당 60~80유로 수준임을 고려하면 국내 기업의 부담은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정부는 203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한다는 상향된 목표(NDC)를 제시하고, 2015년부터 국내 배출권거래제(K-ETS)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배출권 가격은 톤당 1만 원 내외(약 7유로)로 EU와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CBAM은 한국에서 이미 지불한 탄소 비용을 공제해주지만, 이 가격 차이만큼은 고스란히 추가 비용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는 우리 기업들이 생산 공정의 근본적인 탈탄소화를 이루지 못하면 가격 경쟁력에서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2. 주요 원인 및 영향: 위기론의 실체, ‘비용 상승’과 ‘행정 부담’
CBAM이 한국 수출기업에 위기로 다가오는 가장 큰 이유는 직접적인 비용 부담 증가다. 특히 철강, 알루미늄 산업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구체적인 피해 규모는 미래 탄소 가격, 환율, 정책 변화 등 여러 가정(시나리오)에 따라 변동 폭이 크므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일부 연구기관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최악의 경우 국내 주력 산업에서 연간 수천억 원대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고 수출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수준의 추정치가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비용 증가는 EU-ETS와 K-ETS의 탄소 가격 격차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톤당 탄소 배출량이 동일한 제품을 생산하더라도 EU 기업이 80유로의 탄소 비용을 부담할 때 한국 기업은 7유로만 내고 있었다면, EU 수출 시 그 차액인 73유로를 CBAM 인증서 구매를 통해 추가로 지불해야 하는 셈이다. 이는 곧바로 수출 제품의 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저탄소 생산 체계를 갖춘 다른 국가의 제품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복잡한 행정 부담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위협 요인이다. 수출기업은 제품 생산에 소요된 전력 사용량까지 포함하는 간접 배출량을 포함한 총 탄소 배출량을 EU가 요구하는 엄격한 기준에 따라 측정, 검증하고 보고해야 한다. 이는 상당한 전문 인력과 시스템 구축을 요구하며, 특히 자체적인 대응 역량이 부족한 중소·중견기업에게는 큰 장벽이 될 수 있다.
정부가 합동 헬프데스크 운영, 컨설팅 지원 등의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개별 기업이 느끼는 부담은 여전하다.
KBR Insight
"CBAM은 단순한 환경 규제를 넘어, 글로벌 공급망의 경쟁 규칙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게임 체인저’이다. 단기적으로는 탄소 배출량 측정 및 보고, 인증서 구매 등 추가적인 비용과 행정 부담이 수출 기업의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위기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고로(高爐) 중심의 생산 구조를 가진 국내 철강업계의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저탄소 생산 기술과 역량을 갖춘 기업에게는 새로운 시장 기회를 창출하는 촉매제가 될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기 위한 선제적이고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3. 업계 반응 및 기업 전략: 위기 속 기회를 찾는 움직임
위기론이 팽배한 가운데, 국내 산업계는 CBAM을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고 위기 속에서 기회를 모색하는 전략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대기업의 선제적 투자와 기술 혁신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국내 철강 대기업들은 CBAM 대응을 위해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수소환원제철은 석탄 대신 수소를 환원제로 사용해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기술로, 상용화에 성공할 경우 CBAM 규제를 넘어 글로벌 친환경 철강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꿈의 기술’로 불린다. 또한,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기술을 도입하고, 전기로 비중을 높이는 등 단기적인 탄소 감축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알루미늄 업계 역시 재생 알루미늄 사용 비중을 높이고, 공정 효율화를 통해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는 등 탄소 발자국 감축에 사활을 걸고 있다. 세아베스틸과 같은 특수강 전문 기업은 이미 EU의 요구에 맞춰 탄소배출량 산정 및 보고 체계에 대한 제3자 검증을 완료하며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우수 사례를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기업들의 움직임은 CBAM을 단순한 비용 부담이 아닌, 저탄소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고 친환경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기회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부 지원과 중소기업의 대응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CBAM 대응 기업 지원단’을 구성하고, 배출량 산정 컨설팅, 시설 개선 자금 융자, 기술 개발 R&D 지원 등 다각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대기업에 비해 정보와 자본,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 기업에게는 정부의 실질적이고 맞춤화된 지원 확대가 절실하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력하는 공급망 차원의 공동 대응 체계 구축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4. 향후 전망 및 시사점: ‘탄소 경쟁력’이 기업의 미래를 결정한다
EU의 CBAM은 시작에 불과하다. 영국, 캐나다 등 다른 주요국들도 유사한 제도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어, ‘탄소 가격’을 반영한 무역 규제는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더 이상 탄소 감축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선택의 문제가 아닌, 생존과 성장을 위한 핵심 경쟁력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CBAM을 단기적인 위기로만 치부하고 소극적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 이는 한국 산업계 전체가 저탄소 경제 체제로 전환하는 거대한 변곡점이자, 새로운 성장의 모멘텀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다.
첫째, 과감한 R&D 투자와 기술 혁신이 시급하다. 수소환원제철, CCUS, 그린 수소 생산 등 탈탄소 핵심 기술에 대한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투자를 통해 기술 초격차를 확보해야 한다. 한국은 이미 배터리, ICT 등 기후 기술 분야에서 세계적인 특허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CBAM 관련 산업에서도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
둘째, 국내 탄소 가격 제도의 현실화가 필요하다. EU와의 현격한 탄소 가격 차이는 우리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핵심 요인이다. 국내 배출권거래제(K-ETS)의 유상할당 비중을 점진적으로 확대하고, 필요하다면 탄소세 도입 등 보다 근본적인 제도 개편을 사회적 합의를 통해 논의해야 한다. 이를 통해 확보된 재원은 기업의 저탄소 전환 지원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EU CBAM은 한국 수출기업에 분명한 위협이다. 단기적인 비용 상승과 행정적 부담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저탄소 기술과 생산 체계를 갖춘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나아가 한국 경제가 지속가능한 성장 모델로 나아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한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열쇠는 결국 ‘탄소 경쟁력’ 확보를 위한 우리 기업과 정부의 선제적이고 혁신적인 노력에 달려있다.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2026년 본격 시행됨에 따라, EU로 향하는 우리 수출 기업의 철저한 대비가 요구된다.[사진 = 코리아비즈니스리뷰 자료 사진]](https://epzvqcvbpcduaglyoici.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news-images/legacy-cgi/2025/08/11/1754871310_91449.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