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모빌리티 강자 vs 한국 시장 접근 불가...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한국엔 못 오는 이유
베트남에서 승차공유, 음식배달, 결제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그랩(Grab) 슈퍼앱의 모습. 동남아 8개국에서 서비스되는 그랩은 한국에서만 "서비스 지역이 아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이용할 수 없다. [사진=코리아비즈니스리뷰]
베트남에서 승차공유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로 성장한 그랩(Grab)이 유독 한국 시장에만 진입하지 못하고 있어 주목된다.
2025년 현재 싱가포르,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8개국에서 승승장구하는 그랩이지만, 한국에서는 앱을 실행해도 "서비스 지역이 아니므로 우버를 사용하라"는 메시지만 뜬다. 전 세계 600여 개 도시에서 서비스되는 모빌리티 혁신의 상징이 유독 한국에서만 발을 들이지 못하는 배경에는 까다로운 규제와 기득권 보호 정책이라는 높은 벽이 가로막고 있다.
베트남 모빌리티 시장의 치열한 경쟁 구도
급변하는 시장 점유율과 경쟁 심화
베트남 승차공유 시장에서 그랩의 지위는 최근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일본 시장조사업체 라쿠텐인사이트가 2024년 상반기 내놓은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베트남 전국 차량호출 이용자 중 62%는 그랩을, 32%는 Xanh SM을 이용했다고 답했다.
그러나 2024년 하반기 들어 시장 구도가 크게 바뀌었다. 2024년 4분기 기준으로 Xanh SM이 37.41%로 1위에 올라섰고, 그랩은 36.62%로 2위로 밀려났다. 이는 베트남 현지 경쟁사 Xanh SM(구 GSM)의 급속한 성장에 따른 것으로, 그랩의 '독주 체제'가 무너졌음을 의미한다.
그랩베트남의 알레한드로 오소리오 상무는 최근 열린 현지진출 10주년 기념행사에서 "그랩은 지난 10년간 베트남 사업을 통해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시장 입지를 구축한 상태"라고 밝혔다. 현재 베트남에서 서비스 항목은 15개, 커버리지는 50개 지방에 이르며 매달 수천만건의 거래가 체결되고 있다.
수익성 과제와 지속적인 적자
그랩의 베트남 사업은 시장 점유율과 별개로 수익성 문제를 안고 있다. 그랩 베트남 법인은 누적 적자 4.3조 동(VND)을 기록하고 있어, 급성장에도 불구하고 지속가능한 수익 모델 구축이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경쟁사 철수에도 새로운 강자 등장
그랩의 베트남 시장 진출 초기에는 경쟁사들의 연쇄 철수가 유리하게 작용했다. 배민은 2019년 5월 베트남 현지 배달 플랫폼 비엣남엠엠을 인수하며 베트남 시장에 진출했지만, 시장 점유율 50%가 넘는 국내 배달앱 업계 선두주자임에도 베트남에선 후발주자였다.
시장조사업체 모멘텀워크스에 따르면 베트남 배달앱 시장은 지난해 기준으로 그랩과 쇼피푸드가 각각 45%와 41%를 점유하고 있는 반면, 배민베트남 점유율은 12%에 그쳤다. 결국 배민은 진출 4년 만인 2023년 베트남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인도네시아 기반 고젝(Gojek)도 2024년 베트남시장에서 철수했다. 그러나 해외 경쟁사들의 철수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현지 업체인 Xanh SM의 급부상으로 그랩의 시장 지위는 오히려 위협받고 있다. 현재 그랩의 주요 경쟁사는 승차공유시장에서 Xanh SM과 비(Be), 음식배달시장에서 비와 쇼피푸드 등으로 압축되어 있으며, 특히 Xanh SM은 2024년 말 기준 시장 1위로 올라서며 그랩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한국 시장 진입을 가로막는 규제의 벽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의 높은 장벽
한국에서 그랩과 같은 승차공유 서비스가 불가능한 근본적 이유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상 제34조와 제81조를 위반하기 때문이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제81조(자가용 자동차의 유상운송 금지)」에 따라 일상적인 승차공유를 일절 허용하지 않고 있다.
우버가 2014년에 한국에서 시도했던 승차공유 서비스 '우버X'는 택시 면허가 없는 일반 기사들과 승객들을 연결해 주는 서비스로 애초부터 한국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제34조(유상운송의 금지 등)' 위반이다. 특히 택시기사들의 극렬한 저항으로 결국 2015년에 우버는 한국 시장을 포기하고 철수했다.
국내 시도들의 연쇄 좌절
한국형 승차공유 서비스를 시도한 국내 기업들도 연이어 좌절을 겪었다. '차차크리에이션(이하 차차)'은 렌터카와 대리운전 기사를 동시에 제공하는 우회로를 선택했으나, 국토교통부 유권해석을 거쳐 2016년 8월에는 사업 특허도 받았지만 택시업계의 반발로 어려움을 겪었다.
또다른 승차공유 업체 '풀러스'는 출퇴근 시간에만 카풀이 가능한 예외 조항을 근거로 출퇴근 시간 선택제를 도입하려다 규제의 역화살을 맞았다. 대표가 사임하고, 대대적인 구조조정까지 해야 했다.
한국의 차량공유서비스는 우버 퇴출이후 정책 측면과 산업 측면에서 둘다 후퇴하고 있으며 한국은 차량공유서비스 글로벌 시장과 산업에서 완전히 소외돼 있다.
카카오 모빌리티의 독점 체제
현재 한국 모빌리티 시장은 택시 호출 플랫폼 시장 점유율 95%를 장악하고 있는 카카오모빌리티가 압도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우티는 현재 우버가 51%, 티맵모빌리티가 49%의 지분을 갖고 있으나 만년 2위에 머물고 있다.
이러한 시장 구조 하에서 신규 진입자들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글로벌 모빌리티 혁신에서 소외된 한국
세계적 성장세와 대조되는 한국 현실
세계 공유 모빌리티 시장 규모는 2030년까지 6,753억 6,000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며, 2023-2030년 연평균 14.8%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공유 모빌리티 시장 규모는 2024년 2,946억 9,000만 달러로 추정되며, 2029년 6,633억 9,00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며, 예측 기간 중 CAGR은 17.62%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현재 약 40조원인 글로벌 차량 공유 시장이 2030년엔 320조원까지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미 미국의 우버와 중국의 디디추싱은 세계 1·2위 유니콘 기업으로, 이들의 몸값은 각각 70조원, 60조원에 이른다.
규제로 인한 혁신 생태계 위축
우리나라에서는 승차공유 플랫폼 서비스에 대한 법적 판단기준 및 제도가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고, 택시 영업과 유사한 서비스의 제공을 원천 봉쇄하는 폐쇄적 정책으로 인해 자국의 승차공유 플랫폼 서비스마저 제대로 정착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차량공유 서비스 가운데 관련업체가 보유한 차량을 짧게는 시간 단위로 대여하는 초단기 렌터카 서비스의 시장은 전세계적으로 확장추세인 반면, 한국에선 올해 업계가 조성된 지 10년째 접어들었음에도 눈에 띌 만큼 성장하지 못한 상황이다.
한국 벤처기업협회는 "산업혁명을 선도했던 영국은 기존 마차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증기자동차의 운행을 제한하는 적기조례를 제정했지만 이로 인해 영국 자동차산업은 암흑을 걸었고, 이후 경쟁 국가를 따라잡는데 근 한 세기가 소요됐다"고 강조했다.
그랩의 한국 투자자 확보와 우회 전략
한국 주요 기업들의 그랩 투자 확대
그랩은 직접 진입이 어려운 한국 시장에서 대신 주요 기업들의 투자를 적극 유치하고 있다. KB금융지주는 2,200억원 규모 동남아시아 지역 모험자본 펀드인 KB글로벌플랫폼펀드를 결성하고 첫 투자처로 그랩을 결정했다.
그랩의 주요 한국 주주는 현대차, SK그룹, 네이버(미래에셋그로쓰펀드) 등이 있다. 지난해 현대자동차가 2억7,500만 달러 규모 투자를 결정했고 미래에셋과 네이버의 아시아그로쓰펀드가 1억5,000만 달러 투자를 집행했다.
한국인 전문가 영입으로 교두보 마련
특히 최근엔 한국 출신 IB 인사가 그랩의 한국 투자자 담당 기업금융부서로 이동하면서 그랩의 한국 투자자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CS, 리만, 노무라, 씨티에서 IB 업무를 담당한 척 킴(Chuck Kim)이 디렉터급으로 그랩 본사에 채용됐다.
VC 업계 관계자는 "그랩이 올 초부터 국내서 투자유치를 진행하며 다양한 한국 기관들을 만나왔다"며 "한국 주주들 확대와 한국인 인사 채용 등으로 향후 동남아시아 모빌리티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역할이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 모빌리티 시장의 변화 가능성
과거 정부의 소극적 자세
민간 차량공유 업체가 국내 서비스망을 확장하느라 고군분투하는 반면 정부는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차량공유 서비스의 특성은 최근 정부가 미래차 관련 정책의 궁극적 목표로 내세운 교통체증 완화, 친환경 규제 달성 등을 달성할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지만 논외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중재해야 할 정부가 뒷짐 지는 사이, '우버'의 기업 가치는 80조 원, 중국 로컬업체라는 이점을 이용해 발빠르게 사세를 중국 전역에 확보한 '디디추싱'은 60조 원으로 늘었다.
카카오택시 제휴를 통한 간접 진입
현재 그랩은 카카오모빌리티와 그랩이 제휴해 베트남에서 카카오T 앱 사용이 가능해졌다. 별도 설치 없이 베트남에서 카카오T 앱을 실행한 후, '차량호출' 버튼을 누르면 그랩 호출 화면으로 자동 전환된다는 형태로 한국 이용자들에게 간접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결론: 규제 혁신 없이는 모빌리티 후진국 고착화
베트남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성장한 그랩이 한국에 진입하지 못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과도한 규제와 기득권 보호 정책이 혁신적 모빌리티 서비스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구글·테마섹·베인&컴퍼니가 공동조사해 지난해 발표한 '2024년 동남아 디지털경제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기준 베트남의 승차공유 및 음식배달 시장 규모는 40억달러로 전년대비 12% 증가했으며, 오는 2030년 9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베트남에서는 그랩과 Xanh SM 같은 기업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며 서비스 혁신과 시장 발전을 이끌고 있다. 반면 한국은 전 세계가 모빌리티 혁신 경쟁에 뛰어드는 동안 규제의 늪에 빠져 혁신 생태계가 위축되고 있다. 새로운 가치와 기술로 인한 새로운 법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관련 법률과 규정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하며, 이러한 문제를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준비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그랩과 같은 글로벌 플랫폼이 한국에 진입할 수 있도록 규제 혁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한국은 모빌리티 후진국으로 고착화될 위험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소비자 편익과 산업 혁신, 그리고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정부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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