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워싱 논란과 중소기업 소외 속에서 진정한 지속가능경영 실현 과제 점검
ESG 경영의 다양한 요소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이미지. 환경(Environment), 사회, 지배구조(Governance)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진정한 지속가능경영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사진 = 코리아비즈니스리뷰 자료 사진)
ESG 열풍 속 감춰진 민낯: 실질 vs 형식의 갈림길
2025년 현재, 한국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글로벌 ESG 규제가 강화되고 투자자들의 요구가 커지면서 국내 기업들의 ESG 도입은 양적으로 급속히 확산됐지만, 질적 수준과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한국ESG기준원이 발표한 2024년 ESG 평가 결과에 따르면, 상장기업 1,001사 중 중위권 기업의 점수는 상승했지만 최상위권과 최하위권 기업 수준은 정체됐다. 하위권 등급 기업이 여전히 상당한 비중을 차지해 ESG 경영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더 심각한 문제는 형식적 ESG 경영과 그린워싱 논란이다. 2024년 ESG 채권 총 발행액이 47.2조원에 달하는 등 관련 금융상품은 급증했지만, 일부 에너지·중공업 기업들의 녹색채권 발행이 늘어나면서 실질적인 환경 개선 효과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ESG 평가의 현주소: 중위권만 상승하는 기형적 구조
2024년 한국ESG기준원 평가 결과는 한국 기업들의 ESG 경영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A등급 비중은 2.2% 포인트 증가했으나, A+등급 이상 기업 수는 전년 대비 1곳 증가에 그쳤다. 중위권 기업들의 개선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ESG 경영 수준은 여전히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ESG기준원 관계자는 "기후공시 및 사회책임경영 활동 정보 공개 확대로 중위권 기업의 등급이 상승했지만, 국제기준에 상응하는 문항 대응 부족으로 최상위권 개선이 미흡하다"고 분석했다.
공공기관의 ESG 경영 도입은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 2024년 기준 공기업의 경우 전년에 이어 100% ESG 전략을 수립했으며, 준정부기관도 2023년 61.2%에서 2024년 100%로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민간 기업 특히 중소기업과의 격차는 여전히 크다.
한편, 의무 ESG 공시는 당초 계획과 달리 2026년 이후로 연기되어 현재는 자율공시 체계가 유지되고 있다. 이로 인해 기업들의 ESG 정보 공개 수준과 품질에 편차가 크게 나타나고 있다.
그린워싱의 그림자: 껍데기만 친환경인 가짜 ESG
한국 기업들의 ESG 경영에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그린워싱이다.
2023년 이니스프리의 종이병 포장재 논란은 대표적 사례다. 친환경을 내세운 종이 포장지 안에 플라스틱 용기가 들어있는 구조로, 실질적인 환경 개선 효과 없이 친환경 이미지만 부각시킨 전형적인 그린워싱 사례로 비판받았다.
글로벌 ESG 펀드의 그린워싱 실태도 심각하다. 일부 ESG 펀드들이 실제로는 화석연료 기업에 투자하면서도 ESG 투자를 표방하는 사례들이 발견되고 있다. 이는 ESG 투자 시장 전체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2024년 들어 그린워싱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23년 9월 '환경 관련 표시·광고에 관한 심사지침'을 개정했고, 환경부도 '친환경 위장 표시·광고 예방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그린워싱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져 2024년부터는 오히려 기업들이 친환경 성과를 숨기는 '그린허싱'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중소기업 ESG의 사각지대: 의지는 있으나 여력은 없다
한국 ESG 경영의 가장 큰 사각지대는 중소기업이다.
대기업들은 상당한 규모의 ESG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반면, 중소기업들은 ESG 전담 부서 마련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인력과 자금 부족으로 ESG 경영 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해 가장 큰 ESG 현안으로 40.3%가 '공급망 ESG 실사 대응'을 꼽았다. 대기업들이 협력업체에 ESG 기준을 요구하면서 중소기업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중소기업들이 ESG 경영의 중요성은 인지하고 있지만 실행할 자금과 인력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정부의 지원 사업도 대부분 진단과 방향 제시 수준에 그쳐 실질적 개선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시행으로 수출 중소기업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2024년 10월부터 시범 도입되어 2026년 본격 시행될 예정인 CBAM은 철강, 시멘트, 비료 등 주요 수출품목에 탄소 배출량 보고를 의무화하고 있다.
글로벌 규제 강화 vs 국내 대응 역량: 갈수록 벌어지는 격차
글로벌 ESG 규제는 빠르게 강화되고 있지만, 국내 기업들의 대응 역량은 아직 부족하다.
EU는 2023년 5월 그린워싱 방지를 위한 '그린 클레임 지침'을 채택했고, 영국 금융감독청도 2024년 5월부터 지속가능성 공시 규칙을 적용하고 있다. 미국도 11년 만에 '그린 가이드'를 업데이트하며 친환경 마케팅 클레임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반면 한국은 K-ESG 가이드라인과 녹색분류체계를 마련했지만, 글로벌 기준과의 정합성이나 실효성 측면에서 아직 개선의 여지가 많다. 특히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참여의 경우, 2023년 기준 한국은 34개 기업이 참여해 상당한 성장을 보였으나, 주요 선진국(미국, 일본, 영국)에 비해서는 아직 개선 여지가 있다.
정부는 2027년까지 그린스타트업 1,000개, 예비 그린유니콘기업 10개 육성 방침을 발표했다. 하지만 실행 과정에서 중소기업들이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지원 체계의 보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제금융센터는 "최근 미국 대형은행들의 NZBA(탄소중립은행연합) 탈퇴 등 글로벌 ESG 정책에 역풍이 불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요구가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진정한 ESG 경영을 위한 3대 과제
한국의 ESG 경영이 형식을 넘어 실질적 변화를 이루려면 세 가지 핵심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첫째, 평가 체계의 표준화와 투명성 강화가 필요하다. 2026년 이후 시행될 의무 ESG 공시를 앞두고 국제기준에 부합하면서도 국내 실정을 반영한 표준화된 평가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 현재 여러 평가기관이 서로 다른 기준으로 평가하면서 기업과 투자자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둘째, 중소기업 ESG 지원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현재의 컨설팅 위주 지원에서 벗어나 ESG 설비 투자 자금 지원, 전문 인력 양성, 대기업과의 상생 협력 체계 구축 등 실질적 지원책이 필요하다. 특히 CBAM 등 글로벌 규제에 대응할 수 있는 중소기업 지원 체계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셋째, 그린워싱 방지를 위한 엄격한 감시와 처벌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허위·과장 ESG 정보 공시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제3자 검증 의무화 등을 통해 ESG 정보의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 2023년 강화된 그린워싱 규제를 실효성 있게 운영하는 것이 핵심이다.
ESG 경영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하지만 형식적 도입과 겉치레만으로는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2026년 의무 ESG 공시 시행을 앞둔 지금, 진정한 지속가능경영을 위한 근본적 변화가 시작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