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도입 그 이후, 기업은 무엇을 기준 삼아 움직이는가
[AI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기업의 나침반, 핵심가치. 기술 혁신의 급류 속에서도 조직이 지켜야 할 불변의 가치는 지속가능한 성장의 토대가 된다.(이미지 : 코리아비즈니스리뷰)]
2025년 현재, AI는 업무 효율성을 넘어서 전략 수립, 고객 접점, 운영 자동화 등 전사적 영역으로 확대되며 기업 활동의 핵심 기반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기술의 도입 여부 자체는 이제 차별화 요인이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 기술을 조직이 어떤 철학과 가치에 따라 운용하고 있는가 하는 지점이다.
이제 기업은 다음 질문에 명확한 답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왜 이 기술을 도입하는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이 질문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질문은 바로, "우리 조직은 어떤 원칙과 가치 위에서 일하고 있는가?"다. 기술은 실행의 수단일 뿐이며, 방향과 기준은 결국 조직이 공유하는 핵심가치(Core Values)에서 비롯된다.
핵심가치란 무엇인가: 실무와 전략을 관통하는 '일의 기준'
▸ 핵심가치의 실무 정의와 전략적 역할
핵심가치는 조직이 변화와 혼란 속에서도 일관된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비가역적 기준이자 행동철학이다. 경영학자 짐 콜린스(Jim Collins)와 제리 포라스(Jerry Porras)는 『Built to Last』에서 핵심가치를 "환경 변화와 무관하게 조직의 본질을 지탱하는 신념체계"라고 정의했다. 이는 단순한 슬로건이나 PR 문구가 아닌, 실무 전반의 일처리 방식, 의사결정 우선순위, 리더십 스타일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핵심 구조다.
핵심가치는 사명과 비전과 더불어 전략을 뒷받침하는 ‘조직의 존재 이유’를 형성하며, 특히 AI 기반 기술처럼 정량성과 자동화로 대표되는 도구의 도입 시에는 이 가치 기반이 없다면 기술은 혼란을 증폭시키는 요소가 될 수 있다.
▸ 전략적 가치와의 구분: 지속성과 판단력의 기준
하버드비즈니스스쿨의 크리스토퍼 바틀렛 교수는 전략은 외부 환경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되어야 하지만, 핵심가치는 변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핵심가치가 전략적 유연성의 출발점이자 경계선 역할을 수행함을 의미한다. 즉, AI와 같은 첨단 기술을 도입할 때에도 “이 기술이 우리의 가치와 부합하는가?”라는 질문 없이는 지속 가능성이 담보되지 않는다.
▸ 조직문화 이론에서의 핵심가치
에드가 샤인(Edgar Schein)은 조직문화를 구성하는 세 가지 층위 중 가장 깊은 층인 ‘암묵적 가정(Underlying Assumptions)’을 핵심가치와 동일한 개념으로 보았다. 이 층위는 외부에서 쉽게 보이지 않지만, 실제 행동과 의사결정을 지배하며, 새로운 기술이 조직에 유입될 때 그 수용성과 활용 수준을 결정짓는 기준이 된다.
핵심가치 없는 AI 도입: 자동화된 혼란을 야기한다
AI 기술의 효율성과 자동화 능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것은 ‘어떻게’를 해결해주는 도구일 뿐, ‘왜’와 ‘무엇을 위해’에 대한 해답은 주지 않는다. 이 공백은 조직 내부에 명확한 핵심가치가 부재할 경우 치명적 혼란으로 이어진다.
실제 사례에서, AI 기반 채용 시스템이 성별이나 특정 배경에 따라 차별적 결과를 도출했던 경우, 이는 알고리즘의 결함이 아니라 핵심가치 부재의 문제다. 고객 응대 챗봇이 위기 상황에서 기계적인 반응만 내놓고 고객 신뢰를 무너뜨린 사례 역시, ‘고객 중심’이라는 가치를 제품 설계와 운영 시스템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술은 자동화를 제공하지만, 가치 없는 자동화는 조직을 비인간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상태로 전락시킨다.
실무 기반 사례: 핵심가치 기반 운영이 실질 성과를 만든다
▸ Google: 개방성과 투명성의 가치, 시스템으로 구현하다
Google은 조직 전반에 걸쳐 '개방성(Open Communication)'과 '투명성(Transparency)'을 중심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설계된 전사 협업 시스템(TGIF 회의, OKR 공유, Google Workspace 내 실시간 협업 등)은 조직 내 정보 격차를 해소하고, AI 기반 의사결정이 신뢰를 바탕으로 수용될 수 있도록 한다.
▸ 클리블랜드 클리닉: 공감의 가치를 AI 응대 시스템에 설계
AI 챗봇 도입으로 고객 응답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들었지만, 병원이 진정한 성과로 평가한 것은 '환자 만족도 15% 향상'이었다. 이 성과는 AI 시스템에 '공감 기반 언어 시나리오'를 학습시키고, 핵심가치로 규정된 ‘환자 존중’을 프로세스에 일관되게 반영한 결과다.
▸ 카카오: 윤리적 기술 활용 문화 내재화
카카오는 '포용과 책임'을 핵심가치로 규정하고, 전사 차원의 AI 알고리즘 윤리 교육을 의무화하고 있다. 이는 기술 설계 초기 단계에서부터 '이 알고리즘이 사회적 신뢰를 해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도록 만들며, AI 기술을 비즈니스 확장 수단이 아닌, 브랜드 신뢰 구축 도구로 전환시키는 기반이 된다.
▸ SKT: 기술을 통한 사회적 연대 실현
노인 및 치매 환자 대상 AI 돌봄 시스템은 기술적 완성도뿐 아니라, 위기 대응성과 사회적 배려라는 철학이 설계 단계에 녹아 있다. '살려줘'라는 단어 한 마디에 기반한 자동 호출 시스템은 '인간 존엄 보호'라는 가치를 구체적으로 구현한 사례다.
실천적 이론 기반: VBM(Value-Based Management)과 조직 운영
▸ VBM 이론의 실용적 전개
가치 중심 경영(Value-Based Management)은 조직의 재무적, 운영적, 기술적 의사결정 전반을 핵심가치에 기반해 구조화하는 방식이다. 이는 전통적인 성과 지표 중심 경영에서 탈피해, 조직의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책임성을 동반하는 실천적 시스템으로 진화하고 있다.
예컨대, AI 시스템 설계 시 단기 성과 극대화보다 '윤리성, 포용성, 사회적 기여도'를 함께 고려하는 것은 VBM 이론이 실무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이다.
▸ 피터 드러커의 경고: 기술의 앞에 철학을 세워라
피터 드러커는 일찍이 "조직은 할 수 있는 일보다,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AI를 포함한 첨단 기술이 조직 전반에 침투하는 지금, 다시금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기술이 가능케 하는 것’보다 ‘조직이 가치로 지켜야 할 것’이 먼저 결정되어야만, 기술은 조직의 성장을 가속화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
실무 적용을 위한 5대 실행 전략
AI 시대에 핵심가치를 조직의 중심축으로 삼는다면, 그 가치를 어떻게 실천적으로 조직 내에 구현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다음은 실제 기업이 실무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구체화한 5대 실행 전략이다.
1. 핵심가치 재정립: 기술보다 앞서 가치체계를 선포하라
AI 기술을 조직에 도입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작업은 조직의 철학과 방향성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경영진과 리더 그룹을 중심으로 핵심가치를 재정의하는 전략 세션을 개최하고, 조직 전반에 걸쳐 ‘우리가 어떤 원칙을 중심으로 기술을 선택하고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핵심가치가 명확해질 때, 이후의 기술적·전략적 선택이 일관성과 정합성을 확보할 수 있다.
2. 가치-기술 정합성 검증: 기술 도입 전, 조직의 철학과의 상충 여부를 점검하라
AI 시스템이나 디지털 도구를 도입할 때에는 단순히 기능이나 비용 효율성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 해당 기술이 조직의 핵심가치와 일치하는지, 또는 충돌 가능성은 없는지를 사전에 점검하는 ‘가치 기반 기술 검토 프로세스’를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AI 설계 초기 단계에서 '포용성', '투명성', '신뢰성'과 같은 조직 고유의 가치와 상충하지 않는지를 점검하는 체크리스트를 개발하고, 시스템 도입 검토 단계에서 이를 의무화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3. 조직문화 교육 강화: 중간 관리자를 중심으로 가치 중심 사고를 훈련하라
핵심가치가 선언문에만 머무르지 않고 실무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특히 중간 관리자층을 대상으로 한 체계적인 가치 중심 의사결정 교육이 필요하다. 월 1회 이상의 정례 회의 또는 사례 기반 워크숍을 통해, 실제 조직 내에서 발생했던 의사결정 사례들을 핵심가치와 연결하여 분석·토론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좋다. 이를 통해 관리자는 일상적 판단에서도 '무엇이 옳은가'를 가치 기준으로 점검하게 되고, 궁극적으로 조직 내 문화가 변화하기 시작한다.
4. 알고리즘 윤리 내재화: AI 기술에도 조직의 철학을 심어라
조직의 가치체계는 단지 사람이 하는 일에만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채용, 고객응대, 마케팅 추천 등 AI 기반 자동화 시스템이 의사결정을 수행하는 모든 영역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각 기술별 알고리즘 설계 단계에서 가치 기반 의사결정 로직을 사전에 설계하고, 이를 검토·관리하는 윤리위원회를 운영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는 AI 기술이 조직 외부에 미치는 사회적 신뢰를 관리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5. 성과평가 시스템 정비: 가치 실천 행동을 평가 기준에 통합하라
핵심가치가 조직에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인사 평가와 성과 관리 지표에도 이를 명확히 반영해야 한다. 단순한 KPI나 매출 성과만이 아니라, 핵심가치에 부합하는 행동이나 의사결정을 수행한 구성원을 인정하고 보상할 수 있도록 평가 시스템을 재설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협업', '책임', '투명성' 등 조직의 가치에 따른 KPI 가중치 시스템을 설계하여, 성과 평가의 기준이 숫자 중심에서 ‘가치 중심 행동’으로 확장되도록 해야 한다.
결론: 기술보다 먼저 가치가 있어야 한다
AI는 미래를 설계하는 도구이지만, 그 미래의 방향과 의미는 조직이 어떤 가치를 중심에 놓느냐에 따라 전혀 달라질 수 있다. 핵심가치는 단순한 윤리적 지침이 아니라, 기술 선택과 활용, 조직 운영 전반을 관통하는 실천적 기준이다.
기술은 빠르게 조직을 바꾸지만, 그 변화의 질은 핵심가치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진정한 경쟁력은 "어떤 기술을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그 기술을 어떤 철학으로 운용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이제 조직은 다음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의 조직은 어떤 기준으로 기술을 선택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기준은, 핵심가치로부터 출발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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